1990년 이명세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전 직장 상사(송영창 분)와 이야기를 나누는 아내 미영(최진실 분)을 보게 된 영민(박중훈 분)은 괜한 오해를 한다.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는 미영의 모습을 보던 영민은 결국 미영의 얼굴을 짜장면 그릇에 박아버린다. 입가에 짜장을 가득 묻힌 미영은 화를 낸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2014년 임찬상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후배(서강준 분)와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내 미영(신민아 분)을 보게 된 영민(조정석 분)은 역시 괜한 오해를 한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는 미영을 보던 영민은 미영의 얼굴을 짜장면 그릇에 박으려... 하지만, 그것은 상상이다. 여전히 깨끗한 얼굴의 미영은 화를 낸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이 차이. 뿔테 안경을 쓰고 얼굴에 짜장을 잔뜩 묻힌 최진실과 아직 기미가 끼기 전인, 깨끗한 얼굴의 신민아. 24년 만에 새로 나온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 장면에서 등장한다.

짜장을 묻힌 최진실과 깨끗한 신민아의 차이

 24년만에 리메이크로 돌아온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4년만에 리메이크로 돌아온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씨네그루



잘 알려졌다시피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990년 관객은 물론 평단의 지지를 한몸에 받은 작품이다. 특히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오프닝과 말풍선을 통해 보여준 두 사람의 '동상이몽' 등은 관객들에게 신선함과 소소한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내용은 물론 24년이 지난 지금도 통하는 부분이다. 남녀가 좋아해 결혼에 성공하지만 결혼 후 과정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 속에서 다툼도 있고 화해도 있고 오해도 있고 유혹도 있다. 2014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그것을 과장되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보여주면서 젊은 관객들의 공감을 사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알아야할 것이 있다. 이 영화의 호평은 대부분 원작에 빚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원작이 가진 가장 큰 장점보다는 다분히 내용만을 따라한, '리메이크(다시 만들기)'라기보다 '흉내내기'로 일관했다.

아무리 '다르다'를 강조해도 일단 리메이크작에서 '원작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의식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결국은 원작과의 비교를 피할 수는 없고 그것이 영화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나 원작이 그 시대에 엄청난 인기를 모았고 지금도 회자되는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임찬상 감독은 그것을 일단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원작의 감성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현 시대의 청춘남녀의 모습으로 캐릭터를 수정했다. 출판사에 다녔던 영민은 시인이 되고 싶던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바뀌었고, 전업주부였던 미영은 미술학원 시간강사로 수정됐다. 꿈을 가지고 있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하는 청춘의 모습, 그 모습을 영민과 미영에게 씌운 것이다.

물론 영화는 현실의 심각함보다 원작의 달달함을 더 중요시한다. 당연한 선택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핵심은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한 삶에 있기 때문이다. 뭔가 어수룩하면서도 자상함을 잃지 않는 영민과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미영의 '케미'는 여전히 달달하다. 누구나 좋아할 만하다.

'섬세함'을 살리지 못한, 쉽게 만든 리메이크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대한 호평은 사실 원작에 상당히 빚지고 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대한 호평은 사실 원작에 상당히 빚지고 있다 ⓒ 씨네그루



내용상으로 보면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굉장히 쉬운 텍스트다. 어차피 20년이 지나도 신혼부부들의 에피소드는 꾸준히 재미를 주기에 시간의 변화에 그렇게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내용'을 따라하는 것만 생각했지 원작의 장점이었던 '섬세함'을 쳐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텍스트를 너무 쉽게 생각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명세 감독은 결혼에 대한 화두를 당시에는 새로웠던 '말풍선'과 그림으로 재미있게 담아냈다. 물론 리메이크작에도 비슷한 분위기는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하다'지 그 이상의 발전을 보이지는 못한다.

영화는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이들의 대사로 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재미는 있다. 하지만 섬세함이 주는 재미를 단순히 대사와 상황으로 만들려한 것은 리메이크작을 좋게 봐주기 어렵게 만든다.

2014년판은 아직 이전의 모습이 남아있는 서울 삼청동을 소재로 하면서 따뜻함을 담아내려한다. 여기에 영민이 존경하던 시인(전무송 분)의 등장과 그와의 우정은 세상의 온기를 담아내려는 감독의 의도가 보이기는 한다.

그런 노력에도 영화는 원작의 따뜻함을 역시나 넘지 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이가 바로 원작의 촬영을 맡은 고 유영길 촬영감독이다. 눈 내리는 골목, 다정히 걸어가는 두 부부의 모습을 담는 유영길의 카메라에는 인공적인 느낌이 없다.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그가 왜 촬영의 명인인지가 원작에 드러나 있다. 이것을 배경으로 '때우려는' 모습으로 리메이크작은 비춰졌다.

그리고 고 최진실이다. 보글머리에 안경을 쓰고 심지어 얼굴에 짜장을 묻힌 모습까지 거리낌없이 보여주던, 신혼여행지에 와서 엄마 보고싶다고 울고 혼자 라면을 먹으며 신랑 험담을 하던 최진실은 원작의 화룡점정이었다.

신민아는 아직 예쁘다. 시간이 흘러 기미가 끼기 시작해도 그는 예쁘다. 그러나 신민아는 망가지지 않는다. 얼굴에 짜장을 묻히지도 않고, 게걸스럽게 먹지도 않는다. 원작에서 병원에 입원한 미영이 영민 앞에서 수줍은(?) 소리로 방귀를 뀌는, 서로가 이제 하나가 되는 그 장면이 리메이크작에는 없다. 그것은 인위적인 장면으로 채워졌다.

이명세, 유영길, 최진실은 정말 대단했다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함을 표현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원작의 '섬세함'을 결국 살리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다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함을 표현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원작의 '섬세함'을 결국 살리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다 ⓒ 씨네그루



너무 쉽게 만들었다. 이야기가 통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만들어졌고 이는 얼핏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리메이크가 진정으로 인정받으려면 원작의 장점을 더욱 살리는 '정성'에 있다. 2014년판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정성이 드러나기보다 비슷하게 만들기에 급급한 '인스턴트 식품'으로 보여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이번 리메이크를 보면서 왜 이명세 감독이 '스타일리스트'로 인정받았는지, 왜 유영길 촬영감독의 화면에 영화인들이 감동했는지, 그리고 왜 최진실이라는 배우에 관객들이 열광하고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지가 확연히 보여졌다.

우리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여전히 흥행만을 생각한 '답습'만 했을 뿐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이것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이번 리메이크판을 썩 좋게 봐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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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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