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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한겨레>는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옛 정신문화연구원)이 2015년 광복 70돌을 맞아 펴낼 예정인 <대한민국 발전사>의 연구 및 저술 책임자를 보수 성향 학자 일변도로 채우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대한민국 발전사>는 "초중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에 현대사 서술의 근거로 제공한다"는 방침 아래 제작되는 저작물이라고 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발전사>의 연구 분야와 연구 책임자는 이배용 한중연 원장이 직접 선정한다고 한다. 이 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 교실의 자문역을 맡았다. 보수 정치색이 짙은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친일(파)에 우호적이고 독재를 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한민국 발전사>의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게 채색되지 않을까. 이를 바탕으로 서술되는 초중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발전사>가 진보-보수 간 '역사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식민사학자들의 민낯 샅샅이 파헤친 역사 비평서

작년 교학사 역사 교과서 파동 이후 역사 연구와 서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문제는 총성 없는 역사전쟁이 비단 현대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대사 분야가 특히 그렇다.

그간 고대사학계에서는 식민사학의 논리가 '통설'이라는 이름으로 지배 이론이 되고, 그 지배 이론으로 무장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학계의 주류 행세를 해 왔다. 이에 따라 식민사관은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 전체에 깊이 스며들어 역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책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은 그 식민사학자들의 민낯을 샅샅이 파헤치고 있는 역사 비평서다.

저자가 고발하는 식민사학자들의 폐해는 심각하다. 저자에 따르면 일제의 어용 역사연구단체라 할 수 있는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는 해방 후 서울대 국사학과를 장악해 제자들에게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주입시킨다. 이에 따라 이기백, 김철준, 이기동, 노태돈, 송호정 등으로 이어지는 서울대 학맥이 한국 고대사 분야 식민사학의 주류가 된다. 이는 서울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병도와 함께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던 신석호가 고려대와 성균관대 사학과에 재직하면서 여기도 또한 식민사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연세대도 해방 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용재 백낙준을 계승한 반면 일제 식민사관과 치열하게 맞섰던 위당 정인보 선생의 역사관은 방기했다. 이병도와 신석호는 국사관(현 국사편찬위원회)도 장악했고 또한 임시중등국사교원양성소도 장악해 여러 대학과 국사관에서 계승한 일제 식민사학을 교사들에게 그대로 주입시켰다. 그래서 해방 70여 년이 되도록 일제 식민사관이 사회 각계에서 주류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56쪽)

저자는 주류 식민사학자들을 조폭에 비유한다.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의 진출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행태가 조폭들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는 저자의 말처럼 일방적인 짐작에 따른 비방이 아니다. 최재석 교수는 대표적인 식민사학 논리인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꾸준히 비판한 원로 사회학자다. 그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연구 논문이 역사 관련 여러 학회와 연구소로부터 8번이나 접수를 거절당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서강대 총장을 지낸 서강대 사학과 교수 이종욱도 몇 년 동안 논문 게재를 거부당하고 책 출판도 거절당했다고 고백했다.

식민사학자들의 말 바꾸기 비판하고 나선 저자

식민사학자들의 행태는 과연 그들이 학자로서의 소양과 양심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만든다. 고대사학계의 쟁점 중 하나는 서기전 2세기 초에 설치된 한사군, 특히 낙랑군의 위치 비정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동안 식민사학자들은 중국 고대 사료가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로 비정한 것처럼 사기를 쳐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나라가 한반도 서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1차 사료는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저자는 중국 고대 사료들이 낙랑군의 위치를 일관되게 요동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식민사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아무 근거가 없는 거짓임이 밝혀지자 말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동안 식민사학자들은 고조선이 평안남도 일대에 걸쳐 있던 소국이었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평양 일대에서 시작했다가 그곳에서 망했다는 것이었다. … 그 전에도 만주 지역에서 고조선 관련 유물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고 있었지만 이는 아무 상관없었다. 조직 폭력배의 방식으로 국내 학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니 이런 사실을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문이 열리면서 만주 일대에서 고조선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워졌다. 고조선이 평남 일대의 소국이었다는 식민사학의 성스러운 구절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자 식민사학자들은 고민 끝에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이란 것을 만들어 기존 식민사학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162~163쪽)

저자에 의하면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은 단국대 역사학과 서영수 교수가 주창한 이후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영수 교수는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략으로 진번(한사군의 하나)이 요동 지역으로부터 황해도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한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평양이 아닌 요동에 있었기에 진번이 평양 남쪽 황해도로 쉽게 옮겨갔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주장이 아무런 문헌 사료적 근거도 없는 순수 창작이라고 비판한다. 서영수 교수가 논거로 끌어들이고 있는 <한서>의 어느 구절에도 진번이 황해도로 옮겼다는 진술은 없다고 한다. 서영수 교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도도 별로 높지 않은 것 같다.

서영수는 역사 사료를 찾아보는 대신 머릿속 공상에 몰두하다보니 이 시대의 요동, 즉 옛 요동의 위치가 지금의 랴오둥(요동)과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진개가 침략한 요동은 지금의 랴오둥이 아니라 베이징 부근이라는 사실 또한 알 리 없다. 이런 실력으로 평생을 우려먹으면서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기관의 국민 세금을 자신과 제자들의 식민사학 전파 용도로 마음대로 쓰면서 국고를 축내는 것이다. (167쪽)

식민사관의 어두운 이면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까닭

저자는 식민사학자들이 우리 문화 발전에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타율성론과, 우리 역사에 내적 발전이 결여되어 있는 정체성론을 집요하게 주장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사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은 우리 민족에게 근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이 없으므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타율성론은 우리에게 열등의식을 안겨주는 심리적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적폐가 매우 크다.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의 망령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적십자사 신임 김성주 총재가 2000년대 초반 인천의 한 교회에서 행한 강연에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신앙 강연을 빙자해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했다는 의심 때문이리라.

나는 당시 김 총재가 작심하고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려고 하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문제는 김 총재처럼 역사의식이 뒤틀려 있다는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식민사관의 어두운 이면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총성 없는 역사전쟁에서 식민사관의 논리가 승리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황순종 지음 / 만권당 / 2014. 9. 5 / 335쪽 / 15,000원)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황순종 지음, 만권당(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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