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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는 올해 상반기 발표한 5차 보고서에서 이대로 가면 2100년 지구온도가 최소 3.7~4.8℃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폭염과 한파, 유례 없는 태풍과 기상이변, 북극의 해빙,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등 기후변화로 인한 전지구적 위협이 가속화 되고 있는 가운데 2020년 이후부터 모든 국가에 기준으로 적용될 '신기후체제(New Climate Regime)'가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서로의 눈치만을 보고 있는 상황.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에 감축 의무를 부과했던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는 본래 2012년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2020년까지 연장되었다. 그 사이 '신기후체제'는 오는 2015년 논의를 종결하여 2020년까지 개별국 비준을 마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지난 9월 23일 미국 유엔 본부에서 개최된 세계 126개국 기후정상회의에 집중되었다. 정례적인 회의는 아니었던데다 기후변화 논의를 위해 최정상들이 모인 건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이후 처음이었다.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신기후체제'

뉴욕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전세계에서 열린 '피플즈 클라이밋 마치(People's Climate March)'. 사진은 월스트리트에서 진행된 '로빈후드세 랠리'.
 뉴욕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전세계에서 열린 '피플즈 클라이밋 마치(People's Climate March)'. 사진은 월스트리트에서 진행된 '로빈후드세 랠리'.
ⓒ robin hood tax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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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상회의를 앞둔 주말이었던 9월 20일과 21일에는 각국의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세계 시민사회의 대대적인 행진인 '피플즈 클라이밋 마치(People's Climate March)'가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진행되었다.

초국적 시민 네트워크 아바즈(Avaaz)에 따르면 이번 행진에는 역사상 유례 없는 숫자인 67만5천 명이 동참했다. 미국 뉴욕에서만 80곳에서 진행된 이 공동액션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인도, 호주 등 전세계에 걸쳐 2000여 곳에서 벌어졌다.

지난 9월 19일 일본 도쿄에서는 이 행진의 일환으로 시민사회의 공동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카본 프리, 누클리어 프리(Carbon Free, Nuclear Free, 탄소로부터의 해방, 핵으로부터의 해방)'를 기치로 내건 성명서는 "해양에 고농도 방사능 유출이 아직까지 계속되는 등 우리는 2011년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라며 원자력이 기후변화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도쿄에서 진행된 '피플즈 클라이밋 마치'
 도쿄에서 진행된 '피플즈 클라이밋 마치'
ⓒ People'sClimateMarch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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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지난 9월 21일 한국 학생들로 구성된 GEYK(Green Environment Youth Korea, 기후변화 청년단체), 국제시민단체 350.org와 아바즈 등 80여명이 화력발전소 증설 중단, 온실가스 감축 공약 이행 등 한국의 책임감 있는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탑골공원까지 약 1.3㎞를 행진했다.

행진에 앞장 선 김세진 GEYK 대표는 "기후위기에 직면한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 행진을 통해 기후정상회의에 신기후체제의 성공적 합의를 이끌어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한국 청년단체인 GEYK이 나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뉴욕에서 열린 행진에 참가해 "지금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는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움직임이 기후변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동물학자 제인 구달, 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 등을 포함하여 뉴욕에서만 10만 명이 시위에 동참했다. 한편 아바즈 리킨 파텔(Ricken Patel) 사무처장은 행진에 참여 중인 반 총장에게 '100% 깨끗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200만 명의 서명을 전달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에 기후변화 행동 촉구한 박근혜, 정작 우리는...

국내 언론은 이번 유엔총회 기간 중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안보리정상회의 연설과 기후정상회의 기조연설을 맡게 된 부분을 부각했다.

박 대통령은 기후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기후변화를 새로운 기회이자 성장의 동력으로 보아야 한다"며 '창조경제'를 강조했다. 이어 "2100년에 지구 온도 상승을 2℃ 내로 하려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아래 개도국) 모두가 행동해야 한다"며 "우리의 경험을 개도국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도 아시아 최초 전국 단위 배출권거래제로 자랑스럽게 소개되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한국이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 중이라는 것과 신기술을 활용한 신산업 창출에 힘쓰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신재생에너지에 전력저장장치를 붙여 24시간 사용이 가능하게 된 것,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이용해 전기차를 작은 발전소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등을 소개하였다.

한편 신기술, 신산업으로는 탄소포집 및 저장, 제로에너지 빌딩, 가축분뇨와 음식물쓰레기를 활용한 바이오가스, 태양광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타운 등이 언급되었다. 요컨대 이러한 한국 창조경제의 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함으로써 성장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 기후변화 문제에 공동 대처할 수 없었던 개도국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만으로 국민경제의 성장을 추동하고 나아가 국민소득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른바 '창조경제'를 하고 있다는 한국도 그 경제적 성과를 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것으로써 개도국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낙관론에 불과한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구의 역량이다. 그러나 지구의 한계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성장의 욕심까지 버리지 않았다. 즉 온실가스 배출이 무한정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전제해 놓고 기후변화를 막겠다고 하는 꼴이다.

끝없는 배출 수요를 손대지 않고서 기술의 힘만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을까? 성장의 욕구 속에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너도 나도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지 않는다면 지구온도 상승은 필연적 귀결이다. 그로부터 달아날 길은 없을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변화추이 (2000~2011)
 온실가스 배출량 변화추이 (2000~2011)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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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가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했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한국도 아직 행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명확한 기준 없이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BAU(business as usual, 배출량 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지만 실제로는 위 그래프(기후변화행동연구소 자료)에서 보이는 것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2005년 배출량 대비 기준으로 이미 2011년, 2020년 감축목표의 28.5%를 초과한 상태다.

보고된 바에 따르면, 한국은 2010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7위를 기록했으며 배출량 증가 속도 또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르다. 1인당 배출량도 계속 상승해 왔으며 1인당 배출량 순위 또한 세계 상위권이다. 에너지 발전원 역시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인 화력발전의 비중이 높고 위험한 원자력을 신재생에너지에 포함시켜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연기되어 내년에 비로소 시행되는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지난 8월 전경련 등 재계의 반발로 시행 직전 또다시 좌초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무산을 면한 모양새다. 대신 2015년 도입될 예정이었던 저탄소차협력금제는 업계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2020년 이후로 시행시기가 늦춰졌다.

한편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인 탄소배출권을 증서로 만들어 거래하는 탄소배출권거래제는 국내 도입 국면에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다. 산업계를 지나치게 배려한 정책이 아니냐는 것.

2012년 정부 발표에 따르면, 배출권의 무상할당량이 1차 계획기간(2015~2017년) 100%, 2차 계획기간(2018~2020년) 97%, 3차 계획기간(2021년~2025년) 90% 이하로 비중이 매우 높은 데다, 수출주력업종과 에너지집약업종에는 계획기간에 상관없이 배출권을 100% 무상 할당할 방침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 국면에서 산업계의 눈치를 너무 심하게 본 나머지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시장의 원리를 이용하자는 본래의 취지도 살리지 못한 채 산업계에 혜택을 베풀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국제 무대 연설이 화려한 수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박 대통령은 이번 기후정상회의에서 GCF(녹색기후기금)에 대한 한국의 공여액을 기존 5천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인천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GCF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20년까지 연간 1천억 달러의 재원 조성을 목표로 설립됐지만 정작 기금은 모이지 않은 상태.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크리스티나 피구에레스(Christiana Figueres) 사무총장은 지난 5월 21일 GCF에 100억 달러의 신속한 초기 자본화를 요청했지만 재원 조성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7월 독일이 10억 달러를 약속한 데 이어 이번 기후정상회의에서 프랑스가 10억 달러, 스위스가 1억 달러를 약속하는 등 GCF 기금 공여 공약의 진전은 일부 있었으나 언제까지 어떤 성격의 돈이 어떤 방식으로 모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시민사회는 GCF 이전에 ODA 등으로 이미 공약되었거나 지출된 금액이 공약 액수에 중복되지 않는 별도의 '추가적' 재원을 통한 기금 조성을 주장해 왔으며 이익을 염두에 둔 민간섹터의 개입을 우려해 왔다. GCF 차기 보드미팅은 오는 10월 14일부터 17일까지 바베이도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피플스 클라이밋 마치' 가운데 월스트리트에서 열린 행진은 일명 '로빈후드세 랠리'로 불렸다. 로빈후드세(Robin Hood Tax)란 증권, 채권 등 금융거래에 붙이는 금융거래세(financial transaction tax)인데 주로 고수익을 올리는 기업 또는 개인에게 부과돼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 시민사회는 이것이 도입될 경우 GCF에 공여될 수 있는 수천억 달러의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로빈후드세는 독일 등을 비롯한 유럽 11개국에서 이미 지역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프랑스의 경우 이 재원을 기후변화로 영향 받고 있는 개도국을 돕는 데 사용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키스 엘리슨(Keith Ellison) 하원 의원은 "로빈후드세를 통해 급속한 기후변화로 황폐해지고 있는 곳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빈도의 위험한 거래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에서 열린 기후정상회의는 전 세계 시민사회의 행진과 함께 끝났다. 그리고 오는 12월 3일부터 14일까지 UNFCCC 제20차 당사국 총회(COP20)가 페루 리마에서 개최된다. 이후 파리 회의에서 '신기후체제'가 결정되어야 하는 만큼 내년 3월까지 각국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여를 약속해야 한다. 고로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2100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 내로 하기 위해 '지금 당장 모두가 행동하자'고 했던 박 대통령의 연설이 국제무대에서의 화려한 수사로 남지 않길 바란다.


태그:#CLIMATE MARCH, #기후정상회의, #기후정상회담, #신기후체제,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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