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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여행 동지 이희복 이재희 부부와 우리 꽃차남
 오랜 여행 동지 이희복 이재희 부부와 우리 꽃차남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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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비닐봉지! 우~~어억!"

지숙 언니는 검정 비닐봉지에 토를 했다. 1초만 늦었어도 수습하는 게 힘들 뻔했다. 우리 일행은 전북 군산에서 경기도 가평까지, 거의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캠핑카를 타고 갔다. 처음에 차를 보고는 다들 열광했다. 엄마가 나흘 동안 집을 비운다고, 친구 데려와서 놀 일에 신이 난 우리 큰애도 차 안을 둘러보고는 "따라가도 돼요?"라고 물었다.

캠핑카 안에는 싱크대와 전자레인지, 냉장고가 있었다. 화장실도 있고, 벽걸이 TV까지 있었다. 운전석 위로는 2층 침대처럼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우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캠핑카를 타 보는 사람들, 들뜬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실실 쪼개며 웃었다. 여섯 살인 꽃차남만이 낯을 가리느라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얼굴에 '나는 멀미인이오'라고 쓰여 있는 은엽은 조수석으로 가서 앉았다. 차는 빠르게 군산을 벗어났다. 그 속도에 맞춰서 우리도 깨달음을 얻었다. 캠핑카는 먼 바다로 나가는 배를 탔을 때처럼 속을 뒤집는다는 것을. 원효대사 같은 위인도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하룻밤 지나서야 득도했거늘, 어떤 깨달음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깍, 몸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처음부터 2층에서 자고 있던 재희 언니 옆으로 기옥 언니가 가서 누웠다. 나머지 일행들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서 그저 견뎠다. 목이 마르지도 않고, 오줌을 누고 싶지도 않았다. "속이 너무 울렁거려" "진짜 장난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입을 여는 순간, 위 속에 있는 것들이 분비물이 되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가평의 한 펜션은 우리의 구원자. 사장님 부부가 친절하면서 시설까지 깨끗한 것은 덤이었다. 캠핑카에서 내려 방바닥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는 달달한 포도를 마구 뜯어 먹으면서 속을 가라앉혔다. 비로소 말문이 터졌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두려움, "내일부터 어떻게 캠핑카 타고 다니냐?"는 꺼내지 않았다.

"제가 관심이 많아서 그래요. 저도 캠핑카 타고 여행 다니고 싶거든요. 좋지요?"

다음 날, 일찍 짐 싸서 나오는 우리에게 펜션 사장님이 물었다. 이희복 선생님은 "진짜 좋네요, 아무리 운전을 해도 힘이 안 드네요"라고 했다. 선생님은 강원도로 여름휴가 갔을 때, 캠핑카 타고 여행하는 가족을 직접 봤다. '저 차를 운전해 보고 싶다.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에 꽂혔다. 전라북도에 한 대뿐인 캠핑카를 예약하고서 두 달을 기다렸다.   

"우아하게 걸어~ 우리를 다 부러워해!"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윤원 언니와 기옥 언니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윤원 언니와 기옥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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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 카라반 캠프. 캠핑카 멀미 때문에 고생한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카라반에서 먹고 자는 게 참 부러웠다...^^
 자라섬 카라반 캠프. 캠핑카 멀미 때문에 고생한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카라반에서 먹고 자는 게 참 부러웠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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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에서는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뮤지션들이 리허설 하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밤을 보낸 듯한 파카 입은 청년들은 느린 걸음으로 다녔다. 부모를 따라온 여자아이들은 자유롭게 뛰놀았다. 텐트 속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눈길이 오래 머문 곳은 무대와 그리 멀지 않은 카라반 캠프, 고정된 캠핑카. 매력적이었다.

이희복 선생님은 카라반 밖 탁자에서 컵라면 끓일 준비를 하는 젊은 가장에게 내부를 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러세요" 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카라반 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기 둘에 젊은 엄마가 있었다. 그 친절한 가족들은 "들어오면 생각보다 넓어요. 2층 침대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어요. 화장실 물도 잘 나와요"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춘천 구룡폭포를 보고 내려온 뒤부터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흘깃 본다는 것을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주차장에 캠핑카가 서고 그 안에서 우리가 내리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차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캠핑카 밖에 레드 카펫이 깔린 것처럼 표정 관리를 하며 걸을 필요가 있었다. 언니들이 말했다.

"우아하게 걸어. 우리를 다 부러워해. 그러니까 멀미하는 티를 내면 안 돼. 연기를 하라고."

캠핑카가 다시 출발하면, '발 연기'도 어려웠다. 기옥 언니는 그날 하루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미혼인 윤원 언니는 먹긴 먹는데 속이 메슥거려서 힘들어했다. 그저 무생물인 차 한 대가 아가씨까지 입덧하게 만들고는 초능력자 행세를 했다. 지숙 언니는 "진짜 좋다, 너무 재밌어"라고 말하면서, 아예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50여년간 민간인 출입 통제 구간이었던 두타연
 50여년간 민간인 출입 통제 구간이었던 두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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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두타연을 거쳐서 속초 가는 길은 막혔다. 우리는 둘째 날부터는 숙소 예약을 안 했다. 여차하면 캠핑카에서 자면 되니까. 그러니 단풍철이라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속초에 반드시 갈 필요는 없었다. 인제에서 민박집이 모여 있는 동네를 찾아다녔다. 예약 문화가 없던 때처럼 일일이 방을 보러 다녔다. 금방 춥고 어두워졌다. 숙소 걱정에 멀미도 좀 가셨다.

주인집 부부와 거실과 부엌을 같이 쓰는 집에 방 두 개를 얻었다. 민박집이라는 간판은 달고 있지만 몇 해째 묵어갈 손님을 받지 않는 가정집이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친척 집에 온 것 같았다. 서먹서먹해도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군산 떡집에서 맞춰 온 찰밥에 라면을 끓여 먹고는 방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앉았다.  

"햐~ 나는 완전히 캠핑카 체질이네. 좋아. 잠을 푹 잤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어디까지라도 다니겠어."

캠핑카, 친구 자취방에 온 것처럼 누웠더니 멀미는 사라졌다.
 캠핑카, 친구 자취방에 온 것처럼 누웠더니 멀미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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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되는 날부터 캠핑카 안에서 놀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캠핑카 안에서 놀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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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밤을 내리 캠핑카에서 잠을 잔 이희복 선생님과 병용 선생님은 아침마다 더 젊어졌다. 사흘째부터는 운전자 말고는 모두 누워서 가게 침대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친구 자취방에 놀러 온 것처럼 널브러졌다. 누워서 과자를 먹고, 누워서 풍경을 보고, 누워서 깔깔거리고,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누워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누구도 멀미하지 않았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한계령. 안개비가 내리는 고개를 넘으면서 양희은의 '한계령'을 들었다. 머나먼 곳에서 그 노래를 들을 때는 사는 것이 외롭고 먹먹한 적도 있었는데 막상 한계령에서는 "와! 좋다"뿐이었다. 꽃차남은 어느새 나한테 떨어져서 놀았다. 일행들에게 각자 너구리, 물고기, 토끼, 코끼리, 닭 같은 이름을 붙여주고는 친구 먹었다.

"엄마, '이완용은 매국'인데 왜 한국을 빛낸 위인이야?"

꽃차남이 캠핑카 안에서도 즐겨 듣는 노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나는 일정에도 없는 오죽헌에 꽃차남을 데려가고 싶은 욕심이 샘솟았다. 이희복 선생님과 일행들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오죽은 생각만큼 새까맣지 않았고, 남도의 대나무처럼 우람하고 곧지 않았다. 그래도 노래에 나오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오죽헌을 본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강릉 경포대. 서해 바다가 익숙한 우리들은 상남자 같은 동해 바다에 반했다.
 강릉 경포대. 서해 바다가 익숙한 우리들은 상남자 같은 동해 바다에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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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에서 우리는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상남자' 같은 바다에 환호했다. 군산과 가까운 바다들은 갯벌을 끼고 있는 서해. 야성미가 사그라진 자리에 깃든 원숙미, 우리가 보는 서해는 그렇다. 나는 경포대에서 어릴 때 친구가 남자친구랑 심야버스를 타고 동해를 보러 간 얘기를 떠올렸다. 팔팔한 것에 사로잡히는 청춘의 시절, 경포대 바다는 '옵하' 같았겠지.

"아쉽네. 나흘은 너무 짧어~"

영월 한반도 지형
 영월 한반도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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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영월에서 한반도 지형을 보고 내려왔을 때는 10월 5일 낮 12시. 군산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병용 선생님이 운전대를 잡았다. 이희복 선생님은 식구들 먹일 일념뿐인 시골 할매처럼 배와 밤을 깎아서 누워있는 우리 입에 넣어줬다. 냉장고 기능을 시험해 본다고 멜론을 깎아서 넣어 놓았다.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쉽네. 나흘은 너무 짧어. 캠핑카를 탔으니까 더 돌아다녀야 했는데…. 저, 봐봐. 비행기처럼 위에 수납공간도 있고, 냉장고도 쌩쌩하게 잘 돌아가는데…. 우리는 제대로 쓰들 못했어."

나는 큰애 젖 떼자마자 이희복 선생님을 따라 지리산에 갔다. 지리산 골골, 강원도 동해 두타산에서 남해 사량도 지리산까지 갈 수 있었다. 지금은 큰 애와 10년 터울로 꽃차남을 낳아서 애 딸린 늙수그레한 아줌마 신세, "함께 가면 짐만 될 거예요"라고 속에 없는 말은 안 한다. "고맙습니다" 하고 따라나선다.

우리가 함께 여행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나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던 불혹도 지났다.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서른 살도 안 됐던 시절의 결심을 반복한다.

'이 다음에 나이 들면, 내가 꼭 선생님 모시고 다니면서 운전해야지'

내 오랜 여행 동지 이희복 선생님. 항상 쌩유...^^
▲ 이희복 선생님 내 오랜 여행 동지 이희복 선생님. 항상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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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하조대, 모두 고맙습니다.
 양양 하조대,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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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0월 2일부터 10월 5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캠핑카, #캠핑카 멀미, #강원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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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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