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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도 가끔 상상을 해요. 인조인간이 되어 나라를 구하기도 하고 엄지공주가 되어 동화 속 나라를 돌아다니기도 하지요. 그리고 외계인 친구를 만나 우주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도 해요."

최근에 출간된 장편 동화 <막난 할미와 로봇곰 덜덜>에 나오는 작가의 말이다. 그녀는 나이와 상관없이 분명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소녀인지도 모른다.

지난 4일 요즘 시와 동화를 열심히 쓰고 있는 안오일 작가를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평소에 안면이 있긴 했지만 작가와 인터뷰어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로 출발해서 동시, 청소년시, 동화를 열정적으로 쓰고 있는 그녀는 작가로서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수줍은 미소로 기자를 반겨주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요즘 신간이 나와서 바쁘실 텐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로 등단하셨는데 동시와 동화를 쓰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고 동화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성인문학작품에서 답답했던 문제들을 아동작품들에서는 아주 시원하게 말해주니까 좋았어요. 쉬우면서도 아주 깊게 한방으로 보여주는 매력이 아동문학에 있어서 끌렸던 것 같아요."

- 답답했던 문제들이라 함은?
"가족, 인간관계,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을 성인물에서는 더 복잡하게 해서 답답하게 느꼈는데 아동물에서는 아이들의 직설화법을 통해서 보여주는 거 같아요."

- 청소년시도 많이 쓰셨던데 시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으셨던 것이라도 있었나요?
"시는 어렵고 자기들 생활과는 먼 이야기라는 생각을 바꿔주고 싶었고요. 시를 통해서 자신의 꿈들이 자신의 고민들이 어떤 모습으로 놓여 있는지 느끼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더불어 자신과 맺어진 관계들의 소중함도 알려주고 싶었지요. 또한 그들의 방황을 그들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녀는 말을 잘 못한다고 하면서도 시원하게 즉답을 한다. 여리게 보이지만 강단이 있어 보인다.
인터뷰중에
▲ 안오일 작가 인터뷰중에
ⓒ 신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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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아야 했던 골목길의 꼬마 소녀
- 어린 시절을 간단히 요약하시라고 한다면?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어요. 오빠는 멀리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방학 때만 볼 수 있었고 남동생은 어렸지요. 언니들은 나이 차이가 많아 같이 놀 엄두를 못 냈고 넷째, 다섯째 언니는 둘이서만 놀러 다니고 그러다보니 혼자 남은 저는 자연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죠."

- 네, 아무래도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겠네요. 혹시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초등학교 1학년 때였죠. 내가 따라가겠다고 울며불며 매달리자 넷째 언니와 다섯째 언니는 저에게 빵 하나를 주었어요.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데리러 온다고. 저를 세워둔 곳은 우리 집과 옆집 사이에 있는 골목길이었는데 저는 다 먹기도 전에 언니들이 올까봐 얼른 빵을 먹어치웠죠. 하지만 언니들은 내가 빵을 다 먹고 한참을,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어요. 언니들은 나를 데리고 놀 생각이 없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죠. 배신감에 울다 지친 저는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가 발등으로 올라오는 개미를 보았어요. 유일하게 나를 향해 다가오는 개미가 서럽도록 반가웠지요. 그후로 저는 그 골목길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었지요."

- 주로 무얼 하고 노셨는지?
"옥상에 올라가 깨진 기왓장으로 담벼락에 만화 그림을 그리며 놀았고 개미집을 만들어 그 안에다 과자 부스러기를 넣어주었지요. 골목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숙제도 하곤 했는데 엄마도 동생도 없는 빈 집보다는 훨씬 아늑한 공간이었죠. 또 떼를 쓰다가 안 통하면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날이 저물도록 서있기에도 좋은 곳이었어요."

- 그럼, 친구들과 노는 것도 드물었나 보네요.
"네, 혼자 노는데 익숙해진 저는 커가면서도 특별한 친구를 사귀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이 많으면 어색해 했고 말을 잘 하지 않았죠. 저도 모르게 혼자 생각에 잠기기 일쑤여서 사람들한테 오해를 사기도 했구요."

- 작가에게는 그 골목길이 일종의 문학적 모태인 셈이네요.
"네, 유년 시절 그 골목길은 저에게 기다림의 공간이자 놀이터였고 하늘은 왜 파랬다가 깜깜해지는지, 땅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요런 저런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이 멀리 느껴지고 문득 외로워질 때면 그 골목길이 생각나요."

말을 듣다 보니 작가는 외로운 동굴에서 태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담벼락에는 되고 싶은 만화 주인공의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고 골목길 한쪽에는 풀과 돌멩이로 만든 소꿉놀이기구들, 개미집에서는 개미 한 마리가 하품을 하며 나온다. 그리고 신문지를 깔고 책을 읽던 아주 작은 꼬마 소녀가 나를 바라본다.

- 작품 구상은 주로 어디에서 힌트를 얻으시나요?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사는 거 보면서, 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럴 때요. 근데 아이들 직접 만날 때가 제일 구상이 잘 떠올라요. 혼자 돌아다니면서 세상 보면서 느낄 때도 많구요."

-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나요? 작품 쓰는 데 도움이 되나요?
"딸이 애니 그림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 둘이 가끔 얘기도 하고 도움이 되요. 딸은 그림도 그리고 스토리작가도 되고 싶다고. 나중에 저하고 같이 책 만들고 싶다고 하네요."

딸이 그렸다는 캐릭터들
▲ 만화, 동화의 캐릭터들 딸이 그렸다는 캐릭터들
ⓒ 김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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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앞으로 든든한 동업자가 될 것 같은데요. 작품 매기는 점수는 어떤지?
"좀 짜긴 하지만 솔직해요. 좋으면 좋다고 별로면 아니라고."

- 딸이 그림을 그린다면 본인도 솜씨가 있다는 말인데 혹시 그림이나 삽화를 그려볼 생각은?
"그려보고 싶죠. 연습 많이 해서 언젠가는 그럴 날이 있겠죠?"

가족의 응원과 격려를 얻는다는 것은 작가로서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이겠는가. 작품을 통해 가족간의 정이 더 깊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덩달아 흐뭇하고 부러워 보였다.

<막난 할미와 로봇곰 덜덜>은 어떤 이야기?

책표지
▲ <막난할미와 로봇곰 덜덜> 책표지
ⓒ 뜨인돌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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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새로 출간된 <막난 할미와 로봇곰 덜덜>에 대해 말씀을 좀 나누고 싶은데요. 간단히 소개를 좀 해주시고 한 마디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리하신다면?
"네, 독거노인인 막난 할미에게 덜덜거리는 로봇곰이 전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요.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외톨이처럼 혼자 지내는 막난 할미의 삶에 로봇곰 덜덜이 끼어들면서 귀찮고, 티격태격하는 일들이 생기지만 덜덜이 막난 할미에게 가족과 친구 같은 사랑을 전한다는 줄거리입니다. 메시지는 글쎄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네요."

- 네, 실제 노인을 위한 인형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화 속 로봇곰의 존재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 보이는군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겠어요. 주위의 평은 어떤지?
"아직 많이 들어보진 못했지만 로봇곰 캐릭터가 너무 귀엽고 막난 할머니 말투도 재미있고 주제도 좋다고 그러시네요."

- 네, 뭔가 대박이 날 징조 같은데요. 그간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동화가 있다면?
"나올 때마다 다 마음을 쏟았기 때문에 다 똑같은 거 같아요.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이게 젤 애착이 가고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그 작품이 애착이 가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막난할미와 덜덜>이 젤 애착이 가겠죠?"

- 집필 외에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시는지, 취미라든지?
"영화나 다큐 찾아서 보고 돌아도 다니고 음악 듣고 신나게 청소도 해요 머리를 비울 겸."

- 준비 중인 새 작품에 대해 조금만 소개하자면?
"초고 끝낸 동화들 수정해야 하고 지금 당장은 5.18 동화 써야 해요. 새롭게 다가서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 앞으로도 계속 아동, 청소년문학으로 나가실 것인지, 향후 계획은?
"네 시를 쓰면서 아동청소년문학은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할 거에요. 정말 그 애들이 찾아서 읽는 작품들을 쓰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아동, 청소년문학 출판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작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낼 수 있도록 주제나 표현의 수위를 좀더 열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있네요."

'눈물이 나면서도 재미있고 웃기면서도 마음 찡한 시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아이들의 진짜 마음을 보여주고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작가 안오일, 평론가 황선열의 평처럼 그녀는 청소년들의 따뜻한 감수성, 열정, 그리고 그들의 현실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는 귀한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를 나서니 밖에는 노란 은행잎들이 손짓을 한다. 작가 안오일은 안데르센을 꿈꾸는 것일까. 그녀는 시적 서정을 바탕으로 가슴이 따스해지는 현대적 현실과 휴머니즘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호기심 많고 외로웠던 골목길의 그 소녀가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래도 괜찮아

안오일

기말고사 삼 일 앞둔 오늘 저녁
아버지는 또 술에 취하시고
집 나간 엄마 대신 꿀물을 타는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푸념을 늘어놓으시고
눈치 없는 귀뚜라미는
귀뚤귀뚤 울어 대고

(중략)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만져 주었다
나를 만지듯

안오일 작가가 그동안 펴낸 책들
▲ 작가가 펴낸 책들 안오일 작가가 그동안 펴낸 책들
ⓒ 신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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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작가 안오일은 1967년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2009년 동시 '사랑하니까' 외 11편으로 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2010년 중편 동화 <그래, 나는 나다>로 한국안데르센상 우수상을
2010년 단편 동화집 <올챙이 아빠>로 눈높이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화려한 반란>(2010), 청소년시집 <그래도 괜찮아>(2010), <나는 나다>(2014), 동시집 <사랑하니까>(2011),
동화집에 장편 동화 <올챙이 아빠>(2011), <천하무적 왕눈이>(2012), <막난 할미와 로봇곰 덜덜>(2014)을 펴냈다.


태그:#안오일, #막난할미와 로봇곰 덜덜, #뜨인돌어린이, #장편동화, #신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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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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