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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대학에 홀리다>
 <세계의 대학에 홀리다>
ⓒ 마음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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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 사람들의 실제 삶이 어떤지를 보려면 대개 오래 전부터 열린 그 지역 시장을 찾으면 된다. 사람들이 있고, 오고 가는 물건이 있고, 그 지역의 오랜 건물이며 지역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세상을 알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려면 말이며 물건이며 삶을 주고받는 시장을 찾아 범위를 넓혀가며 그 지역을 발길따라 찾아보는 것이 좋다.

동네 시장과 주변을 다녀본 느낌과 추억을 글에 담듯이, 여기 각 지역(나라) 대학들을 다녀본 이들의 느낌과 추억을 담은 책이 있다. <세계의 대학에 홀리다>라는 책이다. 책 제목에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은, 이 책이 단순한 각 나라 대학 탐방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각 나라 대학 생활으로 경험한 그 나라의 느낌과 추억을 담은 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장을 통해 본 세상이 아니라 대학을 통해 본 세상을 담은 책이라고나 할까.

물론 각 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의 주요 정보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각 대륙의 대학들을 통해 본 그 나라는 어떤 모습일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을 만하다.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길은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태어나고 살아남고 다시 태어난 대학들

이 책은 "정열이 있는 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시인 체사레 파베세의 말을 통해 말문을 연다. 책에서는 미국의 뉴욕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 콜롬비아의 하베리아나 대학교, 영국의 레스터 대학교와 러프버러 대학교, 에식스 대학교, 독일의 베를린 자유대학교, 폴란드의 바르샤바 대학교, 터키의 빌켄트 대학교, 중국의 북경 대학교, 일본의 와세다 대학교를 만날 수 있다. 전 세계 11개 대학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한 10명의 저자들의 글을 통해서다. 그 글에서 우리는 각 대학의 학풍보다는 그 대학이 지닌 그 나라 문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 시내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외곽에 빌켄트(Bilkent)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빌켄트는 터키어 'Bilim Kenti'의 약자로 '과학의 지식 도시'를 뜻한다. 27년 전만 해도 황량한 벌판이었던 이곳에 생기를 불러일으킨 건 바로 빌켄트 대학교다.

솔직히 우리나라 보통 시민을 붙잡고 터키에 있는 대학 이름을 아느냐고 물으면 어설프게라도 대답할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마 다들 어깨만 으쓱이고 말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3·4위전을 치른 나라가 터키인 것이야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터키의 지성과 인재를 낳는 대학 중 한 곳이 빌켄트 대학이라는 것을 누가 얼마나 알까 싶다.

사실 빌켄트 대학교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교다. 1984년에 문을 연 빌켄트 대학교는 국가의 손길 아래에 있는 국립대학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다양하고 좋은 교육 환경 속에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재능을 지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터키 최초의 사립대학교다.

이 학교의 설립자인 이흐산 도으라마즈는 터키 10대 그룹인 테페(Tepe)그룹의 설립자이다. 그는 국립 앙카라 대학교와 국립 하제테페 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했으며 세계 보건기구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테페그룹의 계열사로 빌켄트 홀링스를 세워 빌켄트 대학교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재단 전입금이 75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빌켄트 홀딩스는 빌켄트 대학교를 위해 세운 회사로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글쓴이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대학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이나 전 세계를 전쟁의 포화로 몰아넣는 독일의 역사는 전쟁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베를린 자유 대학교도 그렇다. 이 학교의 역사는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프로이센 공국 시절이던 1810년 프리드리히 폰 훔볼트가 설립한 '훔볼트 대학'이 베를린 자유 대학교의 시초다. 그렇다고 베를린 자유대학교가 훔볼트 대학교를 그대로 이어받은 건 아니다. 여기에 바로 전쟁의 흔적이 끼어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군이 점령해 분할된 동베를린에서 훔볼트대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서베를린 지역 학생들이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 서베를린에서는 학생들의 항의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돼 서베를린 지역에 새로운 대학교를 세우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 결과, 1948년 12월 4일에 바로 베를린 자유대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 책에 실린 대학 중에는 많은 이들이 아는 대학도 있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대학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여러 대학 출신들의 학교 추억담을 듣다 보면 그 나라 역사와 삶이 보인다. 말하자면, 가벼운 산책길에서 예상치 않게 만나는 가벼운 놀라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아주 가벼운 맘으로, 그러니까 유명세를 탄 대학들의 정보를 탐색하려는 마음보다 학교라는 창으로 바라본 그 나라와 문화를 경험하려는 마음으로 이 책을 본다면 의외로 재미난 이야기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이름도 낯선 대학들에게서도 뭔가 살짝 홀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세계의 대학에 홀리다> 윤준성 외 지음. 서울: 마음의숲, 2011. 13,800원



세계의 대학에 홀리다 - 현대 지성의 요람을 찾아 떠나는 세계 대학 기행

윤준성 외 지음, 마음의숲(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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