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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대 총학의 복장 규제 논란을 다룬 <한겨레> 기사
 숙대 총학의 복장 규제 논란을 다룬 <한겨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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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의 선정성에 대한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대학 축제 선정성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지난 9월 17일 '2014 청파제 규정안'을 내놓았다. 의상 규정을 포함하는 이 규정안을, 많은 언론들은 '표현의 자유 vs. 규제'의 구도로 다루었다.

이는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한겨레>의 정혁준 기자는 숙대 축제의 의상 규제를 몇몇 기업들의 의상 규제에 빗대어 "쿨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숙대 축제 의상 논란에서 "'드레스코드'에 관한 데자뷔를 느꼈다"면서 "'안전하고 건전한' 축제가 되기 위해서 아랍 여인들이 쓰는 '차도르'와 '부르카'가 필요"하냐고 꼬집었다.

또한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숙대 총학에서)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도록 건전하게 입자는 결론이 났다는 것은 가부장적인 규범을 여성들이 스스로 내면화한 것"이며 "착하고 조신한 딸 콤플렉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결정이 20대의 보수화, 부모의 양육, 시대의 영향이 아닐까 우려했다.

대학 축제 선정성 논란의 핵심은 '총학생회의 규제가 옳으나 그르냐'가 아니다. 또한 숙대 총학의 축제 규정안을 "가부장적 관점을 수용한 것"이라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이 둘은 논점을 완전히 빗나간다.

숙대 총학은 '꼰대'가 아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의 '축제 의상 규제안'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축제기간동안 주점 등을 운영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상 규제안을 내놓았다. 이 규제안은 네티즌 사이에서 찬반 논란을 일으켰고, 이 논란은 다시 여러 매체에 의해 기사화되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의 '축제 의상 규제안'
ⓒ 숙명여대 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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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복장 규정은 누군가가 특정한 복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복장 규정이나 중고등학교에서의 복장 규정이 그렇다.

그런데 숙대 총학의 규정안은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 규정안은 총학생회장단이 단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총학생회와 각과 학생회장단의 논의 기구인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학생대표들 110여 명이 합의를 하여 만든 것이다. 따라서 "숙대 총학이 일방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정 기자는 "남성들의 모멸감과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는 것도 꼰대의 논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숙대 총학의 규정안에는 그러한 논리가 보이지 않는다. 규정안에 있는 '안전하고 건전한 축제'라는 문구도 그러한 논리의 근거는 아니다.

'어떠한 것을 조심하라'는 말은 '그것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 책임이 너에게 있다'는 뜻을 함축하지 않는다. '차 조심 하라'는 말은 '어떤 차가 너를 치었을 경우 그 사고는 너의 책임이다'라는 말이 아니며, '돈을 너무 많이 가지고 다니지 마라'는 말은 '누군가 그 돈을 훔쳐가도 그 원인은 너에게 있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학 축제에서 여학생을 찍은 사진을 게시했고, 여기에 성희롱적인 댓글이 달리고 있다. 이는 넓은 의미의 성폭력이다. 숙대 총학의 규정안이 이러한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며, 이러한 규정안이 피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을 함축한다고 하는 것은 억지다. "숙대 총학이 남성 중심적 시각을 받아들이는 퇴행적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도 옳지 않다.

쟁점은 규제나 노출이 아니라 자기결정권

 숙대 총학의 복장 규제 논란을 다룬 <슬로우 뉴스> 기사
 숙대 총학의 복장 규제 논란을 다룬 <슬로우 뉴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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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의상 규정은 숙대 총학의 규정안 중 일부분에 불과하며, 그것도 축제 기간 중 교내에서 축제를 즐기는 '개인의 옷차림'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나 동아리에 운영하는 주점에서 '단체로 입는 옷'을 규제한다. 김 총수의 우려와는 달리, 숙대 총학은 개인이 야한 옷을 입을 권리를 침해한 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의상은 개인의 개성표출수단"이고 "성인이 자신의 의상을 입는 것은 그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이를 제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점에서 대학생들이 옷을 야하게 입도록 몇 년 전부터 그 과나 동아리에서 정해 왔으며, 누가 무슨 옷을 입을지 선배들이 정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숙대 총학을 비판하는 진보 남성들의 전제는 "분별력 있는 성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 것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주점에서 여학생들이 선정적인 옷차림을 하고 유흥업소 같은 호객행위를 하는 것은 그 여학생들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것인가?

어떤 이들은 대학생들이 어려서부터 경쟁 교육을 받았고, 성과 위주의 분위기에 젖어있어서 성 상품화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대학생들은 주점 매상을 올리기 위해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전략을 취할까?

주점매상을 위해 획일적인 전략(성 상품화)을 취하는 것을 개성의 표출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은 테니스를 칠 때도 땅에 질질 끌리는 긴 치마를 입었다. 그들은 수많은 투쟁을 거쳐서야 겨우 반바지를 입을 수 있었다. 그들의 노출은 여성 권리 신장의 산물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의 노출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확대였다.

하지만 오늘날 걸그룹이 반쯤 입고 반쯤 벗은 채로 매체에 등장하는 것은 이전 시대보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대중예술인로서 스스로 자유롭게 의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기획사의 수익을 위해 그러한 의상을 입어야만 한다. 누군가 이에 반대하여 걸그룹 노출 규제를 주장한다면, 무조건 그것을 '엄숙주의'나 '꼰대짓'이라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표현의 자유는 자기결정권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은 상충되지 않는다. 상충되는 것은 기획사 사장의 표현의 자유와 걸그룹의 자기결정권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측면에서 볼 때, 몇몇 기업의 복장 규제는 빅토리아 시대의 규제와 비슷하고, 숙대 총학의 규제는 걸그룹에 대한 규제와 비슷하다. 걸그룹이 기획사의 수익을 위해 선정적인 의상을 입듯, 대학 축제의 학생들은 주점 수익을 위해 선정적인 의상을 입는다. 왜 학생들은 걸그룹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가.

몇몇 진보 남성들의 눈에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정 기자의 눈에는 숙대 총학의 복장 규정이 몇몇 기업의 복장 규정과 아랍에서 여성들에게 입히는 긴 옷의 데자뷔로 보였고, 김 총수의 눈에는 1970년대 미니스커트 제한과 숙대 총학의 미니스커트 제한이 비슷해 보였던 것이다.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는 정 기자의 기사를 반박하는 내용의 기사를 <슬로우뉴스>에 싣는다. 그는 "<한겨레> 보도와 달리 남성 고객을 겨냥한 복장 규제에 항의한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과 남성 고객을 겨냥한 복장 경쟁을 제한한 숙대 총학생회 사이의 공통점을 오히려 찾아야 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이는 자기결정권의 차원에서 이 두 사건을 해석한 것이다.

이에 대한 재반박 기사에서 정 기자는 복장 규제에 항의한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과 남성 고객을 겨냥한 복장 경쟁을 제한한 숙대 총학생회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것은 "'남성' vs. '여성'(아시아나 항공 승무원, 숙대 총학생회)이라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있어 "이상하다"며, "'불편하지 않게 일하고 싶은 노동자의 권리' vs. '수익을 위해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회사'"라는 프레임이 맞다고 주장한다.

정 기자는 여성성에 대한 억압과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분리해서 보지만,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으로는 대학 축제 선정성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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