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제보자>의 이장환 박사로 분한 배우 이경영.

영화 <제보자>의 이장환 박사로 분한 배우 이경영. ⓒ 메가박스㈜플러스엠


폭력의 시대였다. 인간을 살리고자 하는 과학(과 그에 대한 희망)이 일순간 부정과 야만으로 돌아선 순간을, 우리는 겪었다. 난치병 환자 치유를 위해 개발했다며 발표한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임이 드러났을 때, 누구는 황망했고, 누구는 끝까지 '종교'를 버리지 못 했다. 그렇게 진실이 조작됐다. 그 사이, 피해자들이 속출했고, 공범자들은 반성할 줄 몰랐다. 그렇게 한바탕 나라를 휩쓸고 간 역사적인 회오리를 우리는 '황우석 사태'라 기억한다.

영화 <제보자>(2일 개봉)는 그 기억을 재구성한다. 그 화법이 실로 직설적이어서 놀라울 정도다. 사려 깊지만 화끈하다. 그래서 더 부끄럽거나.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엔드 크레딧 말미 "본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픽션임을 밝힙니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것이 심히 거슬리거나 의아하지 않은 이유는 여럿이다. 어쩌면 그 '사태'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은 일정정도 '목격자'의 위치거나 '공범자' 의식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리라. 역시나 그 국민들이 관객인 <제보자>는 그래서 '우리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 중심에 '언론'이 있다. <제보자>가 이 시대와 공명할 수밖에, 아니 공명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한 PD와 한 제보자가 만나 '조작'을 폭로하기까지    

여기, 한 PD가 있다. 아내가 이유 없이 아프다는 남편의 제보를 받은 이 남자 윤민철(박해일 분)은 한 지상파 방송국의 탐사보도프로그램 <PD추적>의 PD다. 그가 본능적인 냄새를 맡고 홀로 움직인다.

그때, 진짜 제보자가 나타났다. 자신이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와 함께 줄기세포를 연구해 오던 사람이라고 밝힌 심민호 팀장(유연석 분)은 그 "줄기세포는 없다"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국익이 먼저냐, 진실이 먼저냐"고.  

그 이장환 박사는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른 상태다. 엄청난 부와 권력이 그에게로 집중돼 있고, 국민들은 물론 정부까지 그를 환영하고 있다. 그 이면에서 이장환 박사는 연구실을 그만둔 심민호 팀장과 그 가족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윤민철 PD의 취재를 방해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도 서슴지 않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은 여기서 '언론'에 집중한다. 제목은 비록 보도의 시작점이 된 <제보자>지만, 국민들에게 진실을 제보하는 자들이 '언론'이라는 메시지를 숨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윤민철 PD가 어떻게 취재를 하고 또 그 취재의 향방이 어떻게 곡해되는지, 그리고 그 취재의 결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영화적인 간결함과 스릴러적인 기법으로 단숨에 내달린다. 윤민철 PD가 이장환 박사를 인터뷰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올해의 '명장면'이다.

싸우는 언론의 사명 극적으로 보여주는 임순례의 연출력

 영화 <제보자>의 포스터.

영화 <제보자>의 포스터. ⓒ 메가박스㈜플러스엠

숨이 가쁘지만 몰입은 최고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다. 과학적 증거도 수집해야 하고, 제보자도 보호해야 하며, 언론사 안팎의 적과도 싸워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언론)가 싸운다는 데 있다.

이장환 박사는 이미 부와 명예와 권력을 다 가진 상태다. 국민들은 물론 세계 과학계까지 그의 논문을 믿고 있다. 그런 이 박사를 향해 누구도 들이밀지 않은 칼날을 정면으로 갖다 댄다는 것은 역적으로 몰리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진실'의 힘을 믿는 윤민철 PD는 증거를 수집하는 동시에 내부의 동료들을 설득하면서 일대 다수의 싸움을 벌인다. 그 과정이 실로 흥미진진하다. 편집과 연기 덕분이다. 어려운 과학적 검증 역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제보가>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요인은 두 가지다. 실제사건에서 MBC란 방송사의 광고를 마비시킬 만큼 <PD수첩>의 '황우석 보도' 전후의 파장은 막강했다. 그 기억을 안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실제 취재과정이나 모티브들을 충실히 담은 이 영화에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장환 박사를 악으로 절대화하지도 않는다. 최대한 그의 고뇌를 인간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한다. 선과 악의 구도가 주는 거부감이 덜한 대신, '제보자'인 심민호 팀장과 그 (딸이 난치병을 앓고 있는) 가족의 처지를 중간 중간 삽입한다. 심 팀장이 고민하고 고뇌하지만, 끝내 '진실'의 편에 설 때, 그 힘을 받아 윤민철이 승리할 때 <제보자>는 대중영화로서의 설득력과 감동을 획득한다. 

대신,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의 행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국익'이냐 '진실이냐'의 물음 가운데 숨겨진 것은 기실 '내 새끼, 내 가족의 미래'와 같을 것이다. 임순례 감독은 심 팀장의 위치를 딱 그 자리에 위치시키면서 <제보자>의 물음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게 만든다. 그 이기주의가 불러온 맹목적인 믿음이 지불하게 만든 사회적인 피로와 비용 말이다.

2014년의 MBC와 언론현실 개탄하게 만드는 <제보자> 속 윤민철 PD

 영화 <제보자>의 한 장면.

영화 <제보자>의 한 장면. ⓒ 메가박스㈜플러스엠


이른바, '기레기의 시대'다. 한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기억해 보자. 저 당시 언론이 얼마나 호들갑들을 떨었는지. 아마도 매체 수가 훨씬 적고 포털 집중화가 덜됐던 것만 다를 뿐,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행태나 '유병언'이란 키워드로 장사를 했던 2014년의 광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보자>는 그렇게 피로와 비용, 혹은 역사의 퇴보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인 공기로써 언론의 사명과 역할을 두고두고 강조한다. 방송사 윗선의 압박이나 광고나 방송 철회 요구, 청와대의 언질 등 영화 속에서 묘사된 갈등들은 실제로 목도했던 사실이거나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만한 것들이리라. 여기엔 진실을 왜곡해서라도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 깃들어 있다.

허나 이것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압박에 굴하지 않고 국민 여론을 반전시키는 결과를 끌어내는 주인공의 궤적을 이끌어내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서 기이하게도 이 영화의 해피엔딩은 비현실적이거나 씁쓸하게 다가온다. 윤민철 PD가 사가를 부르며 사장을 설득시키는 그 장면에 이은, 또 다른 활약을 예고하는 상업영화의 전형적인 마무리 말이다. 그 개운하지 않은 기분은 작금의 언론 현실 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을 것 같다.

황우석 스캔들에서 MBC와 <PD수첩>이 담당했던 공기의 역할을 이제 누가 대신할 것인가. 그 사이 종편은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고, MBC의 간판이었던 손석희 앵커는 JTBC로 옮겨 갔다.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의 탐사보도프로그램은 간판을 내릴 지경에 처했다. '진실이냐, 국익이냐'를 묻고 제보할 현실의 '윤민철들'이 활약할 지평이 좁아질 대로 좁아진 시대. <제보자>를 후련하게만 볼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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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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