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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다산초당은 유배 중이던 정약용(1762~1836)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수많은 저술을 했던 곳이다. 그와 학문과 삶을 교류한 혜장스님은 백련사에 머물렀다. 이 다산초당부터 백련사에 이르는 '다산 유배길'은 지난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장려상을 탔을 정도로 훌륭한 길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정약용이 다산초당에 머물 당시 나뭇군들이나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정약용이 다산초당에 머물 당시 나뭇군들이나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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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 중 한 사람인지라 아름다운 숲 상 수상지 목록에서 다산초당을 발견하는 순간,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사정이 되지 못해 가보지 못한 채 두 해나 지났다. 못 가본 곳이었기에 더욱 아쉽게 가슴속에 찰랑대는 길이었다.

그 길을 지난 6월 다녀왔다. 그런데 갔다 온 이후 더 마음이 술렁였다. 그 길에서의 여운과, 미처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궁금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길의 유혹, 역사를 탐하다>을 통해 만난 다산 초당 그리고 다산 유배길이 무척 반가웠다.

다산 정약용과 혜장 스님의 우정이 얽힌 길

<옛길의 유혹, 역사를 탐하다>(박정원 지음 / 내안에뜰 펴냄 / 2014.08 / 1만 5000원)
 <옛길의 유혹, 역사를 탐하다>(박정원 지음 / 내안에뜰 펴냄 / 2014.08 / 1만 5000원)
ⓒ 내안에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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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정조를 받들어 수원 화성을 설계, 축성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공로와 노력은 조선시대 후기의 극심한 당파 싸움 사이에서 모두 사라진다. 정약용은 반대파들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하는 참변을 겪는다. 정약용은 1800년, 정조의 죽음 직후인 순조 1년에 강진으로 유배된다. 그의 형 정약종은 참수되고 큰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된다.

TV 사극에서는 대부분의 유배자들이 거처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방에서도 칼을 쓰고 있는 등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관리와 감시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데 정약용이 유배될 당시에는 지역만 정해주고 스스로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정약용은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강진의 한 주막에서 술에 젖어, 시름과 절망의 나날들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어찌 그리 헛되게 사시려는가. 후학이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도 서울에서 유배 온 관리를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죄인을 도와주면 해를 당할까 도리어 쉬쉬하며 가던 길도 뒤돌아 갔을 것이다. 이런 정약용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준 것은 강진의 한 주막 할머니와 그의 외동딸이었다. 주모의 꾸중 반 부탁 반이 담긴 이 말을 들은 정약용은 그 주막에 4년 동안 머물며 주막 한쪽에 '사의재'란 현판을 걸고 후학들을 가르친다.

"다산초당은 본채인 다산초당과 다산선생이 거처했던 동암, 제자들이 유숙했던 서암으로 구성돼 있다. 다산초당의 다산이 남긴 흔적 가운데 4개를 꼽아 다산 4경으로 이름 붙였다. 그 1경이 정석(丁石)이다. 초당 뒤꼍 커다란 바위에 다산이 직접 새긴 글이다. 자신의 성에 돌석(石)자 한 글자만을 새겨,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강인한 그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2경은 다산이 직접 수맥을 짚고 팠다는 '약천'이라는 샘이다.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 이 샘물은 '담을 삭이고 묵은 병을 낫게 한다'고 다산은 기록하고 있다. 샘은 남아있지만 지금은 마실 수 없게 됐다. 

3경은 차를 끓일 때 사용했다는 마당에 있는 평평한 돌인 '다조'. 일종의 차 끓이는 부뚜막이다. 4경이 초당 옆에 있는 연못인 '연지석가산'. 바닷가에 있는 반들반들한 돌을 주워 봉우리를 쌓아 석가산이라 했고, 그 주변 연못에 잉어를 키웠다. 다산은 자라는 잉어를 보고 날씨를 예측했다고 한다." (본문 '강진 다산 유배길' 중에서)

지난 6월 5일에 찾은 다산초당의 모습
 지난 6월 5일에 찾은 다산초당의 모습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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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유적지의 차밭. 다산이란 호는 야생차가 풍부한 이곳 강진에서 비롯된다.
 다산유적지의 차밭. 다산이란 호는 야생차가 풍부한 이곳 강진에서 비롯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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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수련원(다산유물전시관)에서 다산초당 가는 두충나무 길
 다산수련원(다산유물전시관)에서 다산초당 가는 두충나무 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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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은 그가 10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정약용은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을 비롯하여 500여 권에 달하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이런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1km 남짓이다. 당시 백련사 주지인 혜장스님은 한양에서 유배 온 한 관리가 주막에서 제자들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정약용을 찾아가게 된다. 이후 둘은 학문적 교류는 물론 삶의 많은 것들을 돈독히 다지는 친구가 된다.

지난 6월 5일, 강진터미널서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군내버스를 탔더니 10여 분 후 다산수련원으로 올라가는 마을 앞에 내려줬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평일인데도 다산수련원과 다산초당, 그리고 백련사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가는 그 길을, 다산과 혜장 둘 중 한 사람은 차를 얻어 마시러 가며 걸었을 것이다. 혹은 둘 다 걸었을 때도 있었겠다. 이 길에는 정약용이 '다산'이란 호를 짓게 만든, 야생차나무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동백림이 있다. 그리고 푸조나무와 후박나무, 비자나무 등도 자란다. 정약용이 형을 그리워하며 자주 서 있고는 했다는 자리에 천일각이란 정자도 있다.

장소보다 장소를 잇는 길이 더 중요한 곳

내가 아는 한 이 여행지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 가급적 천천히 걸으며 많은 것들을 보고 느껴야 할 곳이 바로 다산유배길이다. 하지만 이 다산수련원, 다산초당, 백련사에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 세 곳을 연결해주는 그 길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아쉽고 안타까웠다.

누가 내게 이 길에 대해 물으면 반드시 걸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러면서 존경하는 벗을 찾아 서로 오가던 마음과, 당파싸움에 희생된 정약용의 심정 그리고 그가 견뎌낸 세월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라고 말이다. 그 길에서 만났거나,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본 것들이 정약용이 다산초당에서 저술했다는 500여 권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피, 땀,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인생사와 세상사가 다 공부이지만, 공부의 범위를 좁혀보면 '독만권서, 행만리로'이다. 서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양 2천 년의 문명사에서 책을 읽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불변의 공부법이었다. 그래야만 가슴에 밤안개처럼 쌓여있는 울울한 고민들을 털어낼 수 있다. 독서가 없이 여행만 하면 스파크가 별로 안 튄다. 좋은 경치 보고 그런가 보다 넘어가는 수가 있다. '저게 왜 저러지?'하고 물어야 하는데, 독서를 안 하고 여행을 하면 물어지지가 않는다. 반대로 독서만 하고 여행을 안 하면 책상물림이 된다. 시원하게 터진 맛이 없는 사람이 된다. 갑갑한 성격이 되는 것이다. 독서와 여행은 상호보완적이다." (본문 조용헌 추천사 중에서)

백련사에셔 본 강진만
 백련사에셔 본 강진만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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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지난 6월에 갔던 것도 돌발적인 선택에 의해서였다. 갑작스레 갔던 터라 정보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갔다 온 후 그 여운이 남달라 자료들을 찾아보니 보지 못하고 온 것이 더 많았다. 아마도 그곳에 가기 전 이와 같은 책을 읽었더라면 좀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더 많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으리라.  

책을 읽기 전 추천사의 '독만권서 행만리로'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미처 보지 못한 것들과 미처 닿지 못했던 생각들을 책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이 책의 정보력이 세심하고 넓기 때문에, 그리고 명확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권하는 다산유배길 답사는 다산수련원에서 시작해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거쳐 사의재와, 다산의 또 다른 거처지 터인 강둑길이다. 아마도 미리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강진 읍내에 있다는 사의재에는 들렀으리라.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 한 부분인 '뿌리의 길'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 한 부분인 '뿌리의 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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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산유적지 혹은 다산유배길 외에 <옛길의 유혹, 역사를 탐하다>에서 소개하는 길들은 ▲ 도적이 된 양반 홍길동의 길 장성 갈재와 축령산, 그리고 허균의 삶과 그 길들 ▲ 퇴계가 혼란한 정치현실에서 벗어나 존재의 근원을 찾아 나선 구도의 심정으로 걸었을 안동의 퇴계 오솔길 ▲ 재치와 해학, 그리고 촌철살인의 조롱과 더불어 한 세상을 방랑했던 김삿갓의 비애가 서린 영월 김삿갓길 ▲ 중국 사람들까지 흠모했던 신라 최고 천재 최최원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해인사 천년역사길 ▲ 고려가 몽고에 항복하자 이에 굴복하지 않고 따로 국가를 조직해 몽고에 항거하다 장렬히 전사한 삼별초, 그 우리 민족 최초의 자주적 저항운동을 돌아보는 진도 용장산성 등 19곳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라기보다는 정약용이 수없이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을 다산유배길처럼 역사인물들의 흔적이 더해진 길들이라 더욱 각별하게 읽힌다. 사연이 있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은 차이가 크다. 그 사연을 알고 걷는 것과 모르고 걷는 것의 차이 또한 크다. 많은 곳을 여행하기보다 한 곳을 가더라도 꼭 봐야 할 것들을 보고, 사연을 헤아리고, 최대한 많이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에 크게 공감하리라.

덧붙이는 글 | <옛길의 유혹, 역사를 탐하다>(박정원 지음 / 내안에뜰 펴냄 / 2014.08 / 1만 5000원)



옛길의 유혹, 역사를 탐하다 - 옛길에서 만나는 역사.인물 기행

박정원 지음, 내안에뜰(2014)


태그:#다산 정약용, #다산초당, #백련사, #다산수련원, #아름다운 숲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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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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