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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다음카카오'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석우 공동대표가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다음카카오'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석우 공동대표가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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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카오가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검열' 논란 이후 '듣보잡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때문에 '사이버 검열'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수사기관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카톡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죠.   

다음카카오의 안이한 대응도 한 몫 했습니다. 지난 1일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 바로 이어 열린 다음카카오 출범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석우 공동대표는 "정당한 법 집행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세 차례나 반복했습니다.

법률가 출신답게 정부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내 인터넷기업 처지를 강조하려 했겠지만, 단지 수사 대상자의 '카톡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3000여 명의 개인 정보가 제공된 사실에 충격 받은 이들의 화만 돋우고 말았습니다.   

"IT 개념 없는 정부, 국내 기업 역차별"... 인터넷 업계 '속앓이'

다음카카오는 바로 다음날 서버에 7일까지 보관하던 카톡 대화를 2~3일로 줄이면서 "압수수색이 와도 자료 제공이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선 이용자들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관련기사: "카톡 저장 2~3일로 축소"... 압수수색 원천봉쇄? )

"그저 답답하고 속상해요.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국내 인터넷업계도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인터넷업체 종사자는 이날 "현 정부가 IT 산업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다"면서 "이용자 수준은 올랐는데 검열이니 뭐니 해서 (여론을) 억누르려고만 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다음카카오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도 "수사기관이 악수를 뒀다"면서 "그동안 시민사회진영뿐 아니라 IT업계에서도 수사 목적 이외에 과다한 정보를 요구하는 수사 당국과 법원의 영장 발부 관행에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 검찰이 '검열'로 오인될 만한 발표를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처음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불거진 건 지난달 18일 대검찰청이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대책회의에 카카오 임원이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입니다. 당시 회의엔 통신3사와 네이버를 비롯한 인터넷 포털업체들도 참여했지만 이후 누리꾼들 사이엔 수사기관이 '카카오톡을 실시간 검열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검찰과 다음카카오가 '실시간 검열'은 불가능하다고 부인한 상황에서 마침 세월호 참사 관련 만민공동회를 주도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관련기사: "수사당국, 한 명 카톡 수색으로 3천명 사찰")와 역시 세월호 참사 추모 행진 '가만히 있으라' 제안자인 용혜인씨(관련기사:경찰은 이렇게 내 카카오톡을 털었다) '카카오톡 압수수색' 논란이 불거진 것이죠.

수사기관의 증거 확보 도구로 전락한 '국민 메신저'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서 만민공동회 제안자인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서 만민공동회 제안자인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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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사기관의 '카톡 압수수색'이 처음은 아닙니다. 경찰은 지난 2011년 5월 아내 살인 혐의를 받고 있던 한 대학교수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범행 증거로 활용했는데요. 당시 경찰은 이미 서버에서 삭제된 메시지를 복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카톡 메시지 보관 기간은 3개월이었는데 덮어쓰기를 통한 '완전 삭제'가 안됐던 것이죠.

또 세월호 참사 직후인 지난 4월 20일에도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카카오톡 본사를 압수수색해 세월호 탑승객과 승무원들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확보해 승무원 재판 증거자료로 활용했습니다. 역시 7일까지 대화 내용을 서버에 보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대화 내용의 서버 보관 기간이 문제일까요? 다음카카오는 "PC버전 지원, 출장, 휴가 등으로 대화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사용자들 편의를 위해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평균 5~7일간 카카오톡 서버에 보관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카톡에서 메시지를 보내면 서버를 거쳐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상대방이 늘 실시간으로 접속해 있는 건 아니어서 일정기간 서버에 보관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거꾸로 2~3일만 서버에 보관하면 필요한 메시지를 놓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유무선 메신저인 '네이트온'은 PC에서 출발한 탓에 메시지 서버 보관 기간이 무려 6개월인데, 오래 보관하길 원하는 이용자들의 수요 때문이라고 하네요. SK컴즈 관계자는 "이용자가 삭제하면 서버에서도 바로 삭제되고 휘발성 메시지 이용도 가능하다"면서 "지금까지 수사기관의 자료 제공 요구를 받은 적은 없다"고 합니다.

실제 젊은 이용자들 사이에선 대화 내용을 상대방이 확인하거나 일정 시점이 지나면 삭제하게 만드는 '휘발성 메시지' 이용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서버 보관 기간이 문제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죠.

카톡 검열이 논란이 된 것도 결국 40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이통사 문자메시지보다 카톡을 더 많이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카톡은 1대 1 대화 못지않게 적게는 3명에서는 많게는 수백 명이 함께 참여하는 대화방이 많다는 것이죠. 압수수색을 하게 되면 수사 대상자뿐 아니라 많게는 수백, 수천 명의 카톡 친구 정보까지 함께 유출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대화 내용 암호화가 해법" 대 "3인 이상 적용 어렵다"

카카오톡
 카카오톡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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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이 인기를 끄는 건 단지 서버가 독일에 있어 우리 수사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텔레그램은 아예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는 '비밀 채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대화 내용 자체를 대화 상대방만 읽을 수 있게 암호화해 텔레그램에서조차 서버에 보관된 대화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이른바 '종단간 암호화'란 건데요. 아쉽게 카카오톡은 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디지털 수사 '포렌식' 전문가인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서버에 단 하루, 한 시간만 보관해도 수사기관에선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대화 내용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텔레그램처럼 대화 내용 자체를 암호화하면 수사기관에서 풀려고 해도 한두 달씩 걸려 실효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 역시 데이터 자체를 암호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인 역시 일본에 서버를 둬 국내 수사기관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데도 '반사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건 모기업 탓에 '국내 기업'이란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죠.  

반면 구태언 다음카카오 고문 변호사는 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텔레그램도 1:1 대화일 때만 암호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3인 이상의 대화에서는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분 글로벌 메신저들은 암호화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카카오는 대화 내용 암호화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합니다. 일면 맞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통신사나 포털, 카톡을 상대로 무분별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불특정다수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잘못된 관행에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권위적인 정부의 '정치적 의도'까지 개입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을 만든 러시아 개발자가 독일로 옮긴 것도 러시아 정부의 사용자 데이터 요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서비스 업체는 정부의 요구와 이용자 보호 사이에서 늘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용자 보호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에 달린 것이죠.

물론 '종단간 암호화'나 서버 보관 기간 축소가 문제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지만 사용자의 불안한 심리를 안심시킬 뿐 아니라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 관행을 근절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도둑맞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에 도둑이 탐낼 만한 물건을 두지 않으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이죠.

2년 전 모바일인터넷전화인 '보이스톡'을 놓고 카톡과 이통사가 대립각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적어도 당시 카톡은 기득권에 맞섰고, 이용자들은 카톡을 응원했습니다.(관련기사:  "보이스톡 품질 '이통사 장난'... 물증 있다" )

당시 최전선에 있었던 이석우 대표는 다음카카오 출범 때도 "초심을 잃는 순간 서비스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다"면서 "좌고우면하기보다 이용자에게 집중하고 소통을 통해 원하는 걸 파악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카톡 이용자의 한 사람으로 저는 이 대표의 '초심'을 믿습니다. 부디 이번 사태가 다음카카오에 약이 돼서 더욱 이용자 중심적인 서비스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태그:#카카오톡 검열, #다음카카오, #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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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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