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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가 9월 30일 오후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협상 최종 타결안을 발표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가 9월 30일 오후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협상 최종 타결안을 발표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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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힘이 빠집니다. 말 한마디가 여러 사람 지치게 합니다.

9월 30일 화요일, 학교 축제에서 오랜만에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오고가는 술잔에 힘입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모든 대학생들이 '취업'이나 '토익'에 대한 고민만을 술안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제 고민은 '요즘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입니다. 한없이 무기력한 것이 문제입니다. 무기력함의 원인은 높으신 분들의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긴급> 여야, 세월호특별법 협상 극적 타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저를 깊은 고민의 구덩이로 빠뜨렸습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극적으로 타결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타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이리 언행불일치의 정도가 심할까요? 더 나아가 시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타결한 내용은 '1. 여야 원내대표간 8·19 합의는 그대로 유효하며, 여야 합의로 4인의 특검후보군을 추천한다. 2. 특검 후보군 중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어려운 인사는 배제한다. 3. 유족 참여는 추후에 논의한다. 4. 정부조직법,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 세월호법은 10월 말까지 처리한다. 5. 국정감사는 10월 7일부터 27일까지 실시한다'입니다.

저는 '3. 유족 참여는 추후에 논의한다'에 강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유족 참여가 추후 언제보장이 될까요? 여야가 이 항목에 합의를 한 것은 '중립성' 때문입니다. 유족은 중립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진상조사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위 가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니?" 가족들은 말렸지만...

5월 3일 오후 대학생들이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가만히 있으라'가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5월 3일 오후 대학생들이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가만히 있으라'가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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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합의 내용을 읽는 순간,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세월호 참사는 제 삶을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따라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대학교 1학년이니 마음껏 놀아라', '시위 가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니?' 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부했습니다. 대학생이든 아니든 그것을 떠나, 그 사건을 알게 된 한 사람으로서 '인간성'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고, 지금 가만히 있으면 후회하면서 살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도 없는 대학생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발로 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4월 말 대학생 용혜인씨가 제안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입니다. 이 행진을 시작으로 세월호 행동에 나섰습니다.

매주 주말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서울로 대학 가면 홍대거리, 시청, 광화문광장 이런 곳들로 '놀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시위를 하러 그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거의 5달 동안 지내다보니 세월호 진상규명 행동은 '당위'로 변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과 더불어 6·10 청와대 만인대회, '10만의 동행 5일의 약속'(9월 첫 주 수업을 반납하고 거리로 나와 시민들을 만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 스스로도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 4월 29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여했을 때 감정소모가 심했습니다. 침묵행진을 다녀온 밤이면 항상 집회 현장의 모습이 꿈에 나왔으니까요. 점점 시간이 갈수록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갔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하다 5월 18일, 6월 10일 경찰서 유치장에도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때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시민을 기만하는 정치... 이제 말 아닌 행동으로 보여라

9월 초 '10만의 동행 5일의 약속'에 참여한 필자
 9월 초 '10만의 동행 5일의 약속'에 참여한 필자
ⓒ 김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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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민들의 행동이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정치인들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생각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허상'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그동안 '수사권·기소권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수없이 외쳤습니다. 그리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유가족이 위원을 추천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 요구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간 외친 말이 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족들의 참여가 중립을 지키지 못한기 때문이라 합니다. 묻고싶습니다. 중립이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 공정이나 중립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 걸까요? 사고의 진상을 밝히자는 데, 유족의 바람보다 정치적이고 기계적인 '중립'이 앞서야 하는 걸까요?

10월 1일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와 관련하여 유가족대책위원회가 수용 거부 입장을 밝혔는데,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라며 "유족의 마음을 다 담지 못한 것은 저희들로서도 매우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협상의 현실적인 조건과 진상규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에서 어렵고 힘든 결정을 했지만, 어제 합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각오와 다짐을 다시 한번 새기고 있다"라고 하더군요.

시민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시민을 기만하는 것은 정치인의 자격이 없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국민에게 '신뢰'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국민도 정치인을 믿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덧붙이는 글 | 김은하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세월호,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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