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들은 정부라는 것이 자신(국가)의 능력이나 효율을 검증할 만한 현실적인 문제가 없을 때만 유능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 <돌뗏목> 중에서

돌뗏목
 돌뗏목
ⓒ 해냄

관련사진보기

정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거나 떠넘긴다. 아무 일 없으면 마치 자신들의 유능 덕분인 양 으스댄다. 위 인용구는 이런 뜻을 담고 있다. 저자는 설명을 위해 괄호 안에 '국가'를 넣었다.

1974년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독재 정치 항거 시위에 가담했다. 이 때문에 그는 1975년 국외로 강제 추방된다. 이 기억 때문일까. 주제 사라마구는 국가의 본질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여러 장편 소설을 남겼다. <돌뗏목>에선 자신이 그리는 국가의 형성 과정과 본질을 유토피아 '섬'을 통해 그린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가 철학적 건설자라면, 주제 사라마구는 예술적이고 풍자적인 건설자다. 현재 얼마나 많은 땅들이 위태롭게 모여 국가라는 명목을 유지하고 있을까. 주제 사라마구는 자신을 추방한 국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작가가 그리는 새로운 국가 건설

작품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성장 환경, 사회 상황, 작가의 경험과 의식을 복합적으로 알아야 한다. 단순히 보이는 것을 나열해도 해석은 만들어지기 마련이지만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돌뗏목>은 여러 해석으로 나뉜다. 그 시대 유럽 정세에 따른다면 분열된 국가 관계를 합치하려는 숨은 의도일 수 있고, 작가의 사상에 따른다면 새로운 평등 유토피아 국가를 건설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돌뗏목>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의도를 담고 있다. 국가관과 사상관을 대조할 때 분명 사상적 부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동굴>이 현대사회를 플라톤의 '동굴'에 비유해 나타낸 것이라면, <돌뗏목>은 현대사회를 신화와 성경에 입각해 나타냈다.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는 사람을 실은 거대한 돌뗏목이자 떠다니는 유토피아 섬으로 대양 위를 불규칙하게 이동한다. 작가는 등장인물인 여자 둘, 남자 셋, 개 한 마리와 말 한 마리를 '평화의 오아시스인 일곱 피조물'로 묘사했다. 이들은 비상한 능력이 한 번씩 발휘돼 주목받고, 이로 인한 만남으로 형성된 사람들이다. 일곱 피조물은 마치 반짝이는 별 북두칠성을 연상케 한다. 일행 중 한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사실 내가 궁금한 건 우리 안에서는 무엇이 움직이느냐, 그것은 어디로 가느냐 하는 거요."

이들의 이동은 별자리의 이동이고, 따라서 섬은 이들의 이동에 맞추어 방향을 바꾸어 나갔다. 지구가 우주 속의 섬이라면 이베리아 반도는 지구 속의 섬이다. 즉, 전체로 보이는 개별적인 구성체였다. 인류가 늘 움직이는 지구에 사는 데 익숙해 졌듯이 이동하는 반도에 사는 사람들도 섬의 이동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포도송이에서 떨어져 나온 한 알의 포도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딸기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섬은 떨어져 나온 초기에 주권이나 독립성을 유지한 채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섬의 이동이 지속되자 사람들 간에 떠나는 이와 남는 이의 부류가 생긴다. 수많은 관광객과 부자들 그리고 몇몇 두려움에 떠는 이들은 섬을 떠났다. 섬에 남은 이들은 자신을 이베리아인 이라고 주장하며 자부심을 갖는다. 하나의 공통적인 인류로 구성된 사람들이 섬에 남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공포(주거문제, 대륙 간 충돌, 다른 국가의 눈초리 등)에 직면한다. 책은 그 혼돈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피난민들은 굶주려 있고, 수면부족으로 피곤하다. 노인들은 죽어가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울고, 남자들은 일이 없고, 여자들은 가족 전체를 먹여 살린다. 욕이 오가고, 무질서와 폭력이 판을 친다. 옷과 음식을 훔치고, 사람들을 몰아내고 폭행 한다....정착지들은 집창촌으로 변해 버렸다."

현대사회를 신화적으로 해석한 <돌뗏목>

신화적 인물이 탄생하는 순간인 카오스는 예수가 탄생하기 전 박해받는 국민들의 삶, 소돔, 고모라와 같다. 심지어 함께 여행 중이던 5명에 속하던 두 쌍도 사이가 나빠진다. 이를 중재할 인물로 땅의 진동을 느낄 수 있는 페드로 오르세가 제시된다. '페드로'라는 이름은 마치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이자, 로마의 초대 주교인 제1대 교황 '베드로'와 유사하다.

대륙이 이동을 멈추고 회전하기 시작할 때 섬의 모든 여인들이 임신을 하게 된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때나 신화 속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는 일과 같이 신화적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아버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은근히 페드로가 여인들을 임신시킨 당사자로 지목된다. 섬에서의 순수한 첫 세대들이 인종의 혼합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인간이 다시 한 번 선명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새로 형성된 세계, 아름다움이 그대로 유지된 순수한 세상에 다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동물의 세계에서는 가능하지만, 섬의 남자들이 과연 임신한 모든 여자들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책 마지막에 나귀 모는 사람이 마치 예수의 탄생을 맞이하러 온 동방박사처럼 등장한다. 페드로는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페드로는 더 이상 진동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맞이한다. 나머지 무리는 페드로를 그 섬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의 두개골이 발굴된 곳 위에 묻는다. 신화에서 국가를 건설한 첫 인물이 오래전에 죽은 것처럼 하여 섬사람들의 선조를 제시하는 셈이다.

동시에 그를 따르던 개 콘스탄테가 사라진다. 책에서는 콘스탄테를 지옥의 개라고 묘사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지옥을 지키는 개는 케르베로스인데 짧을 삶을 사는 인간과 동행하여 그들의 영혼을 데리고 간다. 페드로의 죽음은 개와 만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개는 페드로와 같이 섬의 진동을 느꼈고, 무리를 이끌었다. 괴테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무뎌진 삶을 개선시키고 그 대가로 영혼을 요구하듯, 지옥의 개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페드로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하여 인류애를 가지도록 했다. 모든 일을 마친 개는 마침내 페드로의 영혼을 데리고 섬에서 영영 사라진다.

예술과 풍자로 그린 유토피아 섬

주제 사라마구는 유토피아로 생각되는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첫 도약으로, 분리되고 떠도는 개별적인 섬을 제시했다. 섬은 하나의 새로운 별이 되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초창기 혼란을 겪고 구원을 받았다. 주제 사라마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국가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이베리아 반도가 떠돌 때 여러 주(州)를 지닌 미국에서 대통령이 땅을 내리치자 비서가 "조심하십시오, 대통력 각하, 그렇게 내리치다 땅이 갈라질지도 모릅니다."라고 주의를 주는 장면이 있다.

소설 <돌뗏목>에서 새로운 국가 형성 이후 사람들의 삶이 제시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국가 형성과정에서 여러 국가의 심리적 이해관계를 나타낸 방식은 만족스러웠다. 유럽 국가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을 때 정부는 섬에 고립된 국민들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선적으로 두려워했다. 떨어져 나간 반도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국가에서도 이익을 목적으로 바라보았다.

정부의 관심은 국민이 아니고 땅의 크기로 발생하는 이익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러한 세계에 환멸을 느낀 주제 사라마구는 <돌뗏목>을 통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국가를 만들고, 그곳에 속한 사람들까지 새롭게 구성하는 식의 공산국가를 만들어 자본주의 정부의 무능을 풍자하고 싶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돌뗏목>(주제 사라마구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해냄 / 2006년 2월)



돌뗏목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2006)


태그:#돌뗏목, #주제 사라마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