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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신촌마을 주민들의 공동 급식. 농번기 때마다 빚어지는 여성농업인들의 이중고와 부족한 농촌의 일손을 덜어준다.
 전남 나주 신촌마을 주민들의 공동 급식. 농번기 때마다 빚어지는 여성농업인들의 이중고와 부족한 농촌의 일손을 덜어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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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김치와 오이무침을 접시에 덜어 담는다. 호박과 고사리·취나물도 따로 놓는다. 한켠의 계란말이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조기가 노르스름하게 구워지고 있다. 하얀 쌀밥과 쇠고기무국도 상 위에 올려진다.

마지막으로 포도 한 송이씩 놓였다. 상마다 진수성찬이다. 시쳇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다. 그 사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어서 오시요."
"얼릉 앉으쇼."
"배고프네. 아침을 일찍 먹었더니."
"어여 듭시다."

네댓 명씩 한 상에 둘러앉자 식사가 시작된다. 방안에 금세 스물 댓 명이 모였다. 너른 방이 왁자지껄해진다. 지난달 24일 '나주배'로 널리 알려진 전라남도 나주시의 다도면 신동2리 신촌마을 회관의 모습이다.

나주 신촌마을의 공동급식 상차림. 소고기무국에 갖가지 반찬이 올라왔다.
 나주 신촌마을의 공동급식 상차림. 소고기무국에 갖가지 반찬이 올라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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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전남 나주시 다도면에서다.
 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전남 나주시 다도면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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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노물이 맛깔지네. 이거 누가 무쳤다요?"
"김치가 마침 맞게 익었네."
"나는 오이무침이 젤 맛나그만."
"조구도 맛있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네그려."
"소주 한 잔 하믄 끝내주겄는디, 여기 소주 한 병만 주쇼."

저마다 칭찬의 말 한 마디씩 던지며 식사를 한다.

"얼매나 좋소? 날마다 잔칫날이요. 일하는 사람들 편해서 좋고.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 만나서 안부도 묻고. 참 좋은 사업이여. 이것이."

한기준(70) 어르신의 얘기다.

한씨 어르신이 "참 좋은 사업"이라고 한 것은 '마을 공동급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을 공동급식은 농번기 때 마을주민들이 한데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사업이다. 나주시가 농촌마을 주민들의 일손을 덜어줄 목적으로 도입했다.

공동급식이 실시되기 전에는 여성 농업인들의 번거로움이 컸던 게 사실이다. 들녘에서 일을 하다가도 점심 때가 되면 집에 들어가서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 다시 일터로 나가야했다. 집안일과 농사일로 이중고를 겪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이조차 번거로워 끼니를 거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나주 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한 다음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맨앞에 앉은 이가 한기준 어르신이다.
 나주 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한 다음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맨앞에 앉은 이가 한기준 어르신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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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급식은 농번기 때마다 빚어지는 여성농업인들의 이중고와 부족한 일손을 덜어주자는 데 목적이 있다. 농촌마을의 공동체 형성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다.

이 공동급식을 나주시 관내 150개 마을에서 시행하고 있다. 나주시는 이 사업에 올 한해 3억9000만 원을 편성했다. 한 달 20일, 급식인원 20명 기준으로 마을당 130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신촌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포도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맨왼쪽 어르신이 오들댁이다.
 신촌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포도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맨왼쪽 어르신이 오들댁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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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한 다음 방에 둘러앉아 마을의 대소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촌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한 다음 방에 둘러앉아 마을의 대소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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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도 반기고 있다.

"한데 모타서 같이 먹응께 노인들이 좋아해. 혼자 사는 노인들이 젤로 좋아하제. 우리도 좋고. 여러모로 좋당께."

이름 대신 '오들댁'이라고 택호를 밝힌 한 할머니(77)의 얘기다.

"일이 바쁠 때는 누가 집에서 차분히 점심을 차려 묵겄어? 대충 묵고 나오제. 근디 여그서 같이 묵응께 얼매나 좋아? 맛도 있고. 농사철만 할 게 아니라 일 년 내내 했으믄 좋겄소."

박상순(73) 마을 노인회장의 바람이다.

"행정에서 돈만 준다고 다 하가니? 안 한 마을이 더 많애. 이장하고 부녀회장의 맘이 잘 통해야 해. 우리 마을처럼."

한 어르신이 옆에 있던 노명숙(59) 이장을 보며 공을 돌린다.

노명숙 신촌마을 이장. 마을의 공동급식을 이끌고 있다.
 노명숙 신촌마을 이장. 마을의 공동급식을 이끌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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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있고요. 부녀회장(박민자·59)허고 저하고 친구여서 뜻도 잘 맞고요. 또 시에서 주는 돈만으로 부족한디. 어매들이 집에서 드시던 찬을 갖고오고. 호박도 따오고, 오이도 따온께 하제라."

느닷없는 칭찬에 손사래를 치던 노명숙 이장이 말을 이어받는다.

"마을 대표의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마을에서는 번거롭다고 마다하거든요. 어르신들이 체크카드만 써야하는데, 그것도 불편하고요. 사업비를 정산하려면 어쩔 수 없거든요."

마을 공동급식 실태 현장 점검을 위해 신촌마을을 찾은 나주시청 농업정책과 김양기 주무관의 말이다.

신촌마을 주민들이 김양기 주무관의 얘기를 듣고 있다. 김 주무관은 나주시의 마을 공동급식을 담당하고 있다.
 신촌마을 주민들이 김양기 주무관의 얘기를 듣고 있다. 김 주무관은 나주시의 마을 공동급식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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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 붙은 칠판. 나주시에서 나눠준 마을 공동급식 추진 안내문이 걸려 있다. 칠판에 적힌 이름은 날짜별 공동급식을 담당할 식사당번들이다.
 마을회관에 붙은 칠판. 나주시에서 나눠준 마을 공동급식 추진 안내문이 걸려 있다. 칠판에 적힌 이름은 날짜별 공동급식을 담당할 식사당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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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급식 지원에 전라남도가 팔을 걷고 나섰다. 지원예산에 도비 30%를 보태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전남도는 올해 처음으로 추가경정예산에 지원비를 확보했다. 이는 이낙연 도지사가 지방선거 때 한 약속이기도 하다.

마을 공동급식은 그동안 나주와 순천, 고흥, 곡성, 영암, 함평 등 6개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해 왔다. 여기에 해남과 강진, 여수 등 3개 시·군이 지원해 올 가을 9개 시·군 253개 마을에서 시범 실시한다. 20명 이상이 15일 동안 공동급식을 할 수 있도록 120만 원씩 지원한다. 사업비는 시·군비를 포함해 모두 3억300만 원이 투입된다.

전남도는 내년부터 공동급식 지원 사업비를 본예산에 편성하고 모든 시·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25일 동안 실시할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여성 농업인들의 집안일과 농사일에 따른 일손을 덜어주고 지역공동체도 회복하기 위해서다. 농촌에서 사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건 덤이다.

나주 신촌마을 회관 모습.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에 자리하고 있다.
 나주 신촌마을 회관 모습.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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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을공동급식, #마을급식, #신촌마을, #노명숙,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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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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