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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서 만민공동회 제안자인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서 만민공동회 제안자인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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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러시아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이라는 스마트폰 메신저가 매우 '핫'하다. '사이버망명'이라는 단어도 SNS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지난달 18일 검찰이 사이버허위사실유포전담수사팀을 발족하면서 인터넷 명예훼손에 대해 실시간모니터링(사실상 검열)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후 강해졌다.

사실상 카카오톡도 실시간 검열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사이버 망명'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번에 실시간모니터링 문제가 나오기 전인 지난 7월부터 요새 '핫'한 바로 그 메신저를 먼저 사용하던 사람으로서 '사이버 망명' 현상을 지켜보는 기분이 복잡·미묘했다.

나는 6월 10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청와대 만인대회' 현장에서 연행된 후 유치장에서 '카카오톡 압수수색'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7월에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가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그 메신저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연행이라는 경험이라도 있지만, 그런 경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대화내역과 개인정보가 공권력에게 쉽게 넘어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실 나는 '영장'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도 없고 받아볼 일도 없어서 압수수색이란 건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지난 5월 18일에도 세월호 집회 때문에 연행된 적이 있다. 그때 수감되어 조사를 받던 은평경찰서에서, 6월 10일 연행돼 유치장에 있던 나를 찾아와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영장에는 5월 12일부터 21일까지의 카카오톡 정보들을 압수수색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고, 처음 있는 일에 나는 꽤나 당황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유치장 철창 안에서 경찰이 건네준 압수수색 영장의 복사본을 손에 들고, 내 핸드폰 화면을 일일이 사진 찍어가는 경찰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영장에 적혀 있는 '압수할 물건' 목록에는 내 명의로 된 핸드폰 단말기와 카카오톡과 관련된 것들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카카오톡과 관련된 사항은 총 7줄이나 될 정도로 길게 적혀 있었다. 나의 아이디 및 대화명뿐만 아니라 나와 대화를 한 상대방의 아이디 계정정보, 대화내용 및 사진, 동영상 일체가 압수대상이었다.

나와 대화한 사람의 아이디·대화내용·사진·동영상 모두 압수대상

6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공관 앞에서 '박근혜퇴진 6.10 청와대 만인대회'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6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공관 앞에서 '박근혜퇴진 6.10 청와대 만인대회'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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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할 수 있는 상대방의 계정정보에 해당된다고 나열되어 있는 것 중 눈에 띄는 것은 맥어드레스와 접속아이피였다. IT에는 전혀 소질도 아는 것도 없었던 나는 '맥어드레스'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는 경찰에게 '맥어드레스가 뭐냐'고 물었다. 경찰은 'IP 같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맥어드레스가 무엇인지는 한 언론사 기자와 통화하던 중에 알게 되었다. 통신이 가능한 단말기에 부여되는 IP 같은 것이며, 맥어드레스가 있으면 접속한 위치까지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혹스러웠다. 나의 맥어드레스도 아니고 나와 대화를 했던 모든 상대방들의 맥어드레스를 경찰에서 입수했다니(물론 그 후에 카카오에서 맥어드레스를 수집하지 않는다고 밝힌 걸로 봐서 경찰이 맥어드레스를 압수할 수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압수수색 이야기를 듣고 나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 누가 있는지 떠올렸다. 친한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얼굴 한번 뵌 적 없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행동에 응원을 보내주었던 시민분들, 학교 수업에서 함께 조발표를 준비하던 조원들, 같이 살고 있는 남동생과 부모님, 연락처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같은 단체대화방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일단 나의 모든 대화내역은 물론이고 맥어드레스까지 수사에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 혐의는 집회밎시위에관한법률을 위반했다는 것뿐이다.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법원에서 다투어봐야겠지만, 해산명령 불응, 혹은 도로교통방해 정도의 죄목이 더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공모죄'가 적용된다면, 공모 혐의가 있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내역을 압수수색했다고 한다면 혹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내가 연행되던 날 집회 현장에서 나눈 대화내역이 필요한 것이라면, 5월 18일에 한정해서 압수수색이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압수수색 대상기간은 5월 12일부터이며, 심지어 연행됐다 석방된 이후인 5월 21일에 대한 압수수색은 왜 필요했던 것일까?

이렇게 광범위하게 나와 '대화를 나눈 모든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과연 수사에 필요한가? 이것이 있어야, 내가 집회 현장에서 해산명령에 불응했다는 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통해서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다름없다.

함께 사는 동생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몇 시쯤 자취방에 들어오는지, 나와 동생이 각각 어디에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친구들과 점심약속을 잡으며 주고받은 학교 시간표 사진을 통해서 학교에서의 내 동선과 친구들의 동선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순간 무서워졌다. 그리고 나로 인해 개인정보가 다 경찰에게 전해진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또한 내가 알고 지내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대체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단체대화방에 포함되어 있는 시민 수백 명의 개인정보까지 털린 것이다. 그런 분들은 내가 연락처도 모르고,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거나 사과를 드릴 수도 없다.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 열풍... 시민들 불안감 오죽하면

9월 18일 검찰이 허위사실 유포를 막기 위해 인터넷 공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겠다고 밝히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카톡도 검열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일었다. 이는 국내 메신저인 카톡을 버리고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떠나는 기현상을 불러왔다.
 9월 18일 검찰이 허위사실 유포를 막기 위해 인터넷 공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겠다고 밝히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카톡도 검열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일었다. 이는 국내 메신저인 카톡을 버리고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떠나는 기현상을 불러왔다.
ⓒ 텔레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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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몇 개의 단체대화방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 수는 1786명이다. 중복되는 숫자를 일부 뺀다고 하더라도, 나와 개인적으로 대화한 사람들, 힘내라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줬던 수십 명의 시민들을 합치면 1800명이 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나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인해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친구와 대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어떤 단체대화방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1800명이 넘는 시민들의 대화내역과 아이디, 전화번호, 닉네임, 가입일, 맥어드레스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찰에 넘어가는 것이다.

통신기술 발전으로 개인 정보 침해가 더욱 쉬워지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유출이나 스미싱 같이 많이 알려진 사례 말고도 이제는 개인적인 공간, 상대방과 나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메신저에서 나누는 대화까지 언제 유출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며 살고 있다.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 지금의 '사이버 망명' 열풍이다.

카카오톡 측은 이러한 논란과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실시간 검열은 불가능하며 압수수색 절차에 따른 법 집행에 협조할 뿐 사용자가 원치 않는 유출은 없다'고 밝혔다. 10월 1일 카카오톡은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합병법인인 '다음카카오'를 출범했다. 카카오톡은 단순히 사업을 확장하는 것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정보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또한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이 이런 식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마구잡이로 발부하고,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광범위한 정보까지 다 가져가는 것에 대한 제재와 감시, 통제도 필요하다. 또한 이런 압수수색이 필요에 의해 진행되더라도 이에 영향을 받는, 혹은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지를 해 자신의 정보가 어떤 이유와 절차로 공개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지금의 광범위하고 과도한 메신저 압수수색을 통한 개인정보 침해의 문제를 해결하고 최소화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개선과 집행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태그:#카카오톡, #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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