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때 당시 생후 6개월이었던 도안응이아씨, 어머니가 죽으면서 그를 안고 쓰러지는 바람에 목숨은 건졌지만 실명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가 한국인 방문자들을 맞아 기타를 치면서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때 당시 6세였던 도안응이아씨, 어머니가 죽으면서 그를 안고 쓰러지는 바람에 목숨은 건졌지만 실명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가 한국인 방문자들을 맞아 기타를 치면서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 박진관

관련사진보기


송필경 사단법인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대표와 영남일보 박진관 기자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미안해요 베트남> 2인 사진전이 대구 방천시장 아트스페이스방천에서 열린다. 개막식은 2일 오후 5시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두 사진작가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이끈 맥나라마 국방부 장관의 "베트남 전쟁은 잘못된, 끔찍하게도 잘못된 전쟁이었으며, 우리는 미래 세대에 왜 그것이 잘못된 전쟁이었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발언을 이번 사진전의 화두로 삼고 있다. 송필경 작가는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 사이의 미래를 위해 베트남전 참전의 진실과 마주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필경 작가는 2001년 '화해와 진실을 위한 베트남 진료단' 일원으로 처음 베트남 땅을 밟은 이래 그 이듬해부터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단장으로 14년째 베트남을 찾아 진료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나는 어젯밤 평화를 꿈꾸었네>, <왜 호찌민인가>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김명희 봉화 재산중 교사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매장 현장에서 참배하고 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김명희 봉화 재산중 교사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매장 현장에서 참배하고 있다.
ⓒ 송필경

관련사진보기


함께 참여한 박진관 작가는 "글과 사진, 사진과 글은 상호 보완적이다. 때론 사진이란 매체가 글보다 호소력이 클 때도 있다"면서 "이번 사진전을 통해 베트남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영남일보 기자인 그는 <발해 아리랑> 등 다섯 차례의 개인 사진전을 연 바 있다.

사진전에 출품된 작품들이 모두 기록 사진인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할롱 베이 등 정서적 느낌이 충만한 풍경 사진도 많다. 1972년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었던 류진춘 경북대 명예교수가 베트남 중부 꽝아이성 빈선현 빈호아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를 찾아 제단에 향을 사르며 원혼을 위로하는 장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푸옌성 동호아현 호아하옙남사 붕따우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앞에서 묵념하는 장면 등이 눈길을 끈다.

베트남 중부 꽝아이성 빈선현 빈호아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베트남 중부 꽝아이성 빈선현 빈호아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 박진관

관련사진보기


특히 꽝아이성 빈호아 마을 민간인학살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안응이아씨가 한국인 관광객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평화를 노래하는 정경은 눈물겹다. 당시 생후 6개월이었던 그는 한국군이 무차별적으로 쏘아댄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한 그의 어머니가 갓난아기인 자신을 안고 쓰러지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빗물과 핏물이 섞인 탄약가루를 덮어쓴 탓에 실명했다.

1966년 한국군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꽝아이성 빈호아 마을 사람 수십 명을 폭탄 웅덩이에 몰아넣고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몰살시켰다. 이후 미군 폭격으로 생긴 웅덩이가 그들의 무덤이 되었다. 이곳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죄하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김명희 봉화 재산중 교사의 사진도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사진전은 오는 8일까지 열린다. 사진전의 수익금은 전액 베트남평화의료연대에 기부된다.


태그:#베트남, #송필경, #박진관, #아트스페이스방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