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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신라 최초의 절로 알려지는 구미 도리사 (오른쪽)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왼쪽) 신라 최초의 절로 알려지는 구미 도리사 (오른쪽)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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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에 있는 도리사는 '신라 최초 가람'이다. 도리사 홈페이지에는 '적멸보궁 도리사는 417년(신라 눌지왕)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수행처를 찾기 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곳에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본' 아도화상이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이름을 복숭아와 오얏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강화도의 전등사는 스스로를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사찰'로 자칭한다. 전등사가 발행한 소형 홍보물에는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 아도화상이 창건한 전등사는 민족의 역사가 살아 있는 강화도에서 1600여 년을 이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전등사가 말하는 '한국'은 'South of Korea'가 아니라 헌법상의 대한민국을 뜻한다. 삼국유사에 375년 국내성 일원에 건축되었다고 전해지는 초문사와 이불란사가 '현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사 홍보물의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사찰'은 전등사 법당의 최초 건물이 지금 남아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존 우리나라 최고 목조 건물은 12-13세기에 지어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다. 만약 전등사의 법당이 현존한다면 이는 봉정사 극락전보다 900여 년 앞선 것이 된다.

대웅전 뒤로 향로전, 약사전, 명부전이 보이는, 대체로 '전등사 전경'이라 부를 만한 풍경
 대웅전 뒤로 향로전, 약사전, 명부전이 보이는, 대체로 '전등사 전경'이라 부를 만한 풍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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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는 사적 130호인 삼랑성 안에 있다. 삼랑(三郞)은 세 아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세 아들은 보통 사람의 세 아들이 아니다. 단군의 세 아들이다. 단군이 자신의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는 삼랑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화다.

삼랑성은 본래 토성이었다. 그 뒤 삼국 시대로 들어서면서 흙 위에 돌을 얹었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점점 더 튼튼한 석성으로 보강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의 공격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 등 중요 문서들을 지켜내기도 했다. 따라서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삼랑성 동문 바로 안에 세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양헌수 장군비
 양헌수 장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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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 장군비를 거쳐 숲길을 조금 걸으면 윤장대가 나오고, 그 오른쪽으로 꽃무릇이 피어 있는 옆을 지나 대조루로 오른다. 가파른 계단이 끝나면 문득 환한 풍경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나그네를 맞이한다. 보물 178호인 대웅전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그 왼쪽이자 뒤편으로 향로전, 약사전, 명부전이 줄을 지어 나란히 서 있다.

명부전 왼쪽에는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관했던 정족사고 건물도 있다. 이 건물을 정족사고라 부르는 것은 삼랑성의 또 다른 이름 정족산성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중 전본 1181책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곳뿐이니, 전등사가 스스로를 '세계문화유산을 지켜낸 전등사'라고 자화자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등사에 서려 있는 가장 솔깃한 설화는 대웅전에 깃들어 있다. 대웅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부상 관련 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대웅전 건립에 참여했던 도편수가 마을 주모와 사랑에 빠져 장차 결혼할 요량으로 전재산을 모두 맡겼는데, 주모가 줄행랑을 쳐버린다.

괴로워하던 도편수는 대웅전 처마 네 군데에 벌거벗은 여인상을 새겨넣는다. 네 여인상은 주모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을 뉘우치기를 소망하는 도편수의 마음이 형상화된 조각이라는 이야기다.

차량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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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답사에서 느낀 씁쓸한 느낌 한마디를 남기려고 한다. 위의 사진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어찌 된 일인지 전등사는 자가용들이 사찰 경내 뜰까지 밀고 들어와 있었다. 남문과 동문 아래에 주차장이 버젓이 있는데도 꼭 이렇게 자가용들이 국가 지정 보물인 범종 앞까지 점령해야 했을까?

보물 393호인 전등사 범종은 북송 철종 4년(1097) 중국 회주 숭명사에서 무쇠로 만든 종이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녹여서 무기를 만들려고 부평 병기창에 옮겨 놓은 것을 1945년 독립 이후 다시 되찾아왔다. 전등사가 사찰 경내에 무질서하게 진입해 있는 자가용들을 말끔하게 정리하여 '한국 최고 사찰'다운 진면목도 되찾기를 기대한다.

범종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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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등사, #도리사,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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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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