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10월 9일 동양그룹 금융상품 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앞에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 "동양그룹 대국민 금융사기극 엄벌하라" 지난해 10월 9일 동양그룹 금융상품 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앞에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보희(61)씨는 울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9월 30일, 대규모 부실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판매해오던 동양그룹 계열사가 법정관리 신청하며 '동양사태'가 터졌다. 이로 인해 재산을 잃은 피해자 4만 여명은 피맺힌 절규를 쏟아내야만 했다. 피해액만 1조 7000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동양사태는 세간의 관심 밖으로 서서히 밀려났다.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1년이 지난 지금, 동양 피해자들은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고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고씨는 일이 터진 뒤 하던 일을 그만뒀다. 길거리에서 액세서리 노점상을 하며 한 푼 한 푼 아껴 모은 800만 원이 하루아침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고씨는 지난해 5월 (주)동양 회사채를 샀다. 사실 회사채가 뭔지도 잘 몰랐다. 한 푼이 아쉬웠던 그는 무조건 안전하고 이율이 높다는 직원의 말에 전화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그 해 9월 (주)동양을 포함한 동양그룹의 계열사가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이들 기업의 채무가 동결됐다. 그제야 고씨는 직원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불완전판매(상품의 기본내용과 투자위험을 제대로 알리지않는 것) 증명을 하려고 서류에 지장을 찍는데 내 손에 지문이 없더라"며 "지문이 닳도록 일한 돈을 이렇게 허무하게 사기 당하니 화병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 "자본잠식에 투기등급인 회사인 걸 알았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모든 걸 고의적으로 속여 판매한 명백한 사기행위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금융위원회(금융위)는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동양증권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방조했고 금감원은 알면서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라며 "개인도 아닌 국가에 당했는데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하소연했다.

손가락까지 절단했지만... "정부도 책임지지 않더라"

지난해 10월 9일 동양그룹 금융상품 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동양그룹 대국민 금융사기극 엄벌하라" 지난해 10월 9일 동양그룹 금융상품 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동양 피해자들은 대부분 고씨와 같은 여성이거나 노인들이다. 특히 1억 원 미만의 피해유형은 대부분 노후나 생활자금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여유자금이 아닌 전 재산을 잃은 이들이 받은 충격은 예상대로 심각했다.

지난 1년 동안 금감원에 불완전판매를 입증하거나 소송을 준비하면서 이들의 삶은 망가졌고 생업은 중단됐다. 그 사이 신변을 비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도 있었다. 속앓이로 지병이 생겨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속출했다.

이순자(49)씨의 삶도 동양사태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됐다. 그는 하던 일도 그만두고 집회, 소송에 매달리며 1년을 보냈다. 수면제 없이는 한 숨도 못 잔다. 전 재산을 잃은 뒤 그 어떠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씨는 2012년 7월 직원의 권유로 1000만원을 들여 (주)동양 회사채를 샀다. 경남 창원의 한 중공업 하청공장에 다니며 수년간 모은 돈이다. 이 회사채가 휴지 조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직원이 원금보장을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금감원으로부터 불완전판매 분쟁조정으로 원금의 28% 정도를 배상받을 수 있다고 통보받았지만 거부했다. 

그는 "차라리 안 살고 말지 지금까지 버텼는데 포기할 수 없다"며 "내 돈을 정말 못 찾을까봐 불안하고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라며 울먹였다.

이씨는 지난 1월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동양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새끼손가락을 절단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몸부림 차원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는 동양사태가 터지고 난 뒤 상경해 자가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집이 있는 경남 마산을 떠나 서울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금감원, 금융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1000만 원 때문에 이런다고 미쳤다고 하는데 나 같은 서민에겐 전 재산이다"라며 "언론에서는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나오던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1인 시위를 하면 어르신들이 와서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고 한다"며 "4만 명의 피해자가 생겼는데도 대통령은 철저하게 조사하란 말 한마디가 없다"며 정부를 질타했다.

또 "금융위, 금감원은 자신들의 잘못이 밝혀졌는데도 끝까지 제 탓이 아니라고 우긴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가서 하소연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지난 7월 감사원 조사결과 동양증권이 투기등급 CP와 회사채를 개인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불완전 판매를 방치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불완전 판매행위에 대한 지도·검사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이유로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 담당국장 및 팀장을 문책하도록 금감원장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금감원 분쟁조정 15~50% 배상 결정...재조정·집단소송 등도 지켜봐야

현재 금융당국은 동양사태 해결을 위해 불완전판매 배상비율을 결정한 상태다. 지난 7월 말 금감원은 동양사태 관련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분쟁조정 신청 안건 가운데 67.1%(1만4991건)를 불완전판매로 인정했다. 이 중 동양증권이 피해액의 15∼50%를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이후 피해자와 동양증권이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수락한 비율은 85%(1만2918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김천국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 언론위원장은 "실제로 피해자들에게 조사를 해보니 15~20%정도가 평균치 인 것 같다, 제대로 된 배상이라고 볼 수 없다"며 "금감원의 말대로 50% 배상을 받은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보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조정 비율에 불만을 품고 재조정을 신청한 피해자도 상당수일 것으로 보인다. 또 분쟁조정 대신 소송을 택한 피해자들도 많아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개인이 낸 소송도 있지만 사기 판매와 관련해 집단 소송도 제기된 상태다. 집단소송을 낸 피해자들은 현재현 동양그룹 전 회장과 동양증권이 위험성을 알고도 회사채와 CP를 사기 발행·판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 전 회장은 사기성 회사채, CP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재판에서 현 전 회장의 사기 발행·판매가 입증되면 투자자들이 배상액을 올리는 데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15년 형을 구형받은 현 전 회장에 대한 1심 선고는 오는 10일 열릴 예정이다.


태그:#동양사태, #동양증권, #현재현,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