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리 굿 걸> 포스터

영화 <베리 굿 걸> 포스터 ⓒ (주)영화사 빅


아직도, 아니 당연하게도 여전히 당신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번화가를 지나 들어간 어두운 극장에서 전 편안히 <베리 굿 걸>이 상영되길 기다렸습니다. 다코타 패닝의 주연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그녀가 그녀와 같은 나이대의 모습과 고민을 지닌 역할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저는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아이 엠 샘>에서 천사 같던 그녀를 떠나보내려고 마음을 먹고 온 참이었습니다. 영화가 시작했고, 얼마안가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절친한 사이인 릴리와 제리

절친한 사이인 릴리와 제리 ⓒ (주)영화사 빅


영화는 릴리(다코타 패닝)와 제리(엘리자베스 올슨)가 나체로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안전하고 편안했던 가족 안에 있다가, 맨몸으로 세상으로 뛰어들 예정인 두 사람의 젊음과 설렘을 표현한 장면일 것 입니다. 이 둘은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였고, 릴리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입니다. 이 영화는 당신이 앞으로도 결코 되지 못할 스무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그 시절의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릴리의 얼굴을 한가득 매우는 클로즈업을 씁니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처럼 여배우의 클로즈업 화면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릴리의 감정을 잘 드러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 앞에서 긴장하고, 또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던 아버지의 부정을 목격하고 난 후의 복잡한 감정 앞에서 어설픕니다.

제리와의 우정은 이런 변화 앞에서 흔들리기도 합니다.예일대를 입학할 만큼 성실했을 "아주 착한 소녀"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려할 때 아무런 성장통이 없을 수 없습니다. 흔들리고, 또 실수하고 실패합니다. 영화는 이런 감정과 과정을 보여주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리고 장면 연출은 이런 감정 변화를 잘 잡아냅니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릴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릴리 ⓒ (주)영화사 빅


이런 주제를 지녔기 때문인지, 어느 부분부터 이야기가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자 캐릭터들은 장치나 배경처럼 보입니다. 91분 정도의 러닝 타임에도 이렇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플롯이 강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 때문에, 괴로울 만큼 지루해지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우울했습니다. 아무말 없이 걸었습니다. 당신이 겪어야 했을 스무 살이 떠올라 힘들었습니다. 감정에 서투르게 표현하고 또 새롭게 다가온 일에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바다에서 잠든 당신이 떠올라 울컥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을 잊어버리기 위해 기를 씁니다. 어떤 단체에서는 노란 리본을 떼어버리기 위해 달려들고, 누군가는 이제 당신의 이야기가 지겹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광화문에서 당신이 왜 그곳에서 죽어야 했는지를 알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들은 노란 리본을 달고 학교에 등교할 수 없게 되자, 자신들의 몸에 리본을 새겼습니다. 당신 없는 세상이 예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기에, 당신 없는 세상은 결코 무탈하지 않기에,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당신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당신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릴리가 <베리 굿 걸>에서 겪은 성년식을, 겪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가족들이 그러할 수 있기를, 당신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아파하는 이들이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여야 합의로 타결됐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연이어 당신의 가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소식도 합께 들립니다. 제 바람이 이루어질 날은 아직 멀어보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곳에서도 추울까봐 걱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영휘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thetelle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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