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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유체이탈 증세가 후유증으로 남았는지, 아침부터 몸이 낙지처럼 축 쳐져 있었다. 이런 약질 체력으로 한달 여의 인도 여행을 어떻게 할 지 걱정이 됐다. 몸보다도 낯섦 때문이리라.

밤 기차로 델리를 떠나 사막 도시 조드푸르로 간다. 짐을 챙긴 우리는 파하르간지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올드델리 역으로 향했다. 올드델리 역 1층에 짐을 맡길 수 있는 클락룸이 있었다. 클락룸에 짐을 맡기는데 관리하는 사람이 할아버지 두 분이었다. 배낭 안에 귀중품은 없었지만, 너털한 할아버지들의 허술한 관리를 보며 배낭이 안전하게 보관될지 의구심이 들었다. 관리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직접 안으로 들어와 가방을 옮기라고 했다. 장호는 디스크 환자고 나는 팔꿈치 환자인데...

무거운 가방을 맡기고 돌아서자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기차 탑승 시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붉은 성과 찬드니 촉, 야시장을 가기로 했다. 올드델리 역 바로 앞 공원을 거닐었다. 따뜻한 햇살에 낮잠 주무시는 걸인 아저씨, 두 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릭샤꾼들, 길거리 이발소 등을 봤다.

모순된 공간의 총집합, 인도

올드델리 역에서 인도 서부 사막 지대인 라자스탄으로의 기차가 출발한다.
 올드델리 역에서 인도 서부 사막 지대인 라자스탄으로의 기차가 출발한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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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가 신시가지라면 올드델리는 구시가지다. 같은 델리면서 건물이나 주변 환경에서 확연히 차이가 느껴졌다. 어찌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는 뉴델리라기보다는 올드델리의 모습일 것이다. 무질서하면서도 인도 사람의 진한 냄새가 나는 곳!  

공원을 지나 찬드니 촉으로 나왔다. 찬드니 촉 도로 좌우로 상가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도로 중앙 분리대 위를 거닐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에 사람, 자동차, 오토 릭샤,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오고 갔다. 내 정신도 함께 오고 갔다. 그 거리의 주인은 없었다. 모두가 주인이었다. 거리는 혼잡스럽지만 사람은 평온했다. 모두 각자 가야 할 길을,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나만이 경적 소리에, 호객 소리에, 낯섦에,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매연에 쫓길 뿐이었다.

찬드니 촉을 거의 다 빠져나올 무렵 한 인도인이 나를 유심히 보더니 다가와 물었다.

"그 마스크 어디에서 산 겁니까?"

한국에서 사온 마스크였다. 델리를 여행하는 동안 필수품은 바로 마스크였다. 델리의 어떤 거리든지 호흡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연과 악취가 코를 찔렀다. 사이클 릭샤를 타고 붉은 성으로 가자고 했다. 자전거 릭샤를 탈지 말지 망설였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다 낡은 슬리퍼를 신고 안간힘을 쓰며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릭샤꾼. 그들 뒤에 안락하게 앉아 그들을 내려다본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우리는 불편한 마음을 뒤로 미루고 한 번 타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셋 중 그나마 몸이 날렵한 나와 병오 형은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 앞자리에 타고, 통통한(?) 장호는 릭샤 뒤 짐칸에 올라탔다. 삐쩍 마르고 늙은 릭샤꾼은 성인 세 명을 태우고 달리느라 안장에 엉덩이를 붙일 수 없었다. 힘겹게 한 바퀴 한 바퀴 페달을 돌렸다. 그의 삶이자, 가족의 삶이 멈추지 않도록 그렇게 돌리고 돌렸다. 낮은 오르막이라도 나오면 힘에 부친 듯 자전거에서 내려 손잡이와 안장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허리를 90도로 꺾은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마음이 저몄다.

뉴델리가 신시가지라면 올드델리는 구시가지였다. 뉴델리와 올드델리? 오토 릭샤와 자전거 릭샤의 숫자 차이? 외국인과 현지인의 숫자 차이? 멀쩡한 건물과 무너진 건물의 숫자 차이? 걸인의 숫자 차이?
 뉴델리가 신시가지라면 올드델리는 구시가지였다. 뉴델리와 올드델리? 오토 릭샤와 자전거 릭샤의 숫자 차이? 외국인과 현지인의 숫자 차이? 멀쩡한 건물과 무너진 건물의 숫자 차이? 걸인의 숫자 차이?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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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한 뒤 그는 내가 건넨 30루피를 받아 호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었다. "땡큐!"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는 대답 없이 다시 안장에 올라 페달을 돌렸다. 수많은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영국의 철학자 흄은 우리가 확고부동하다고 생각하는 진리는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회의주의자였다. 그가 보기에 모든 지식은 우리가 지금까지 반복했던 습관의 결과물일 뿐이다. 오직 우리가 직접 경험한 후에 확실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나아가 흄은 인간의 감정을 말했다. 우리는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며 '느낌'을 갖게 된다. 즉 감정이 일어난다. 이 감정, 즉 유쾌함과 혐오감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유쾌함은 나아가게 하고, 혐오감은 물러서게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이다. 타인과 이 감정을 공유 할 때 인류는 진보한다.  오늘 나는 자전거 릭싸꾼의 감정을 공유했다. 그와 만난 시간, 공감을 통해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그의 치열한 삶을 수용했다.

붉은 성으로 가려면 찬드니 촉 맨 끝자락에 있는 야시장을 지나야 했다. 야시장에는 사람이 꽉 찼다.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리 듯 인파에 밀려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하지 못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 연출됐다. 어떻게든 과일을 팔아야 하는 장사꾼은 손님이 직접 지불해야 하는 돈을 앞에 펼쳐 놓으며 눈짓으로 흥정을 했다. 그럼 나는 장사꾼이 내민 돈 중에 10~20루피 지폐를 옆으로 빼며 손으로 아래를 가리켰고, 장사꾼은 돈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땅한 식당도 없어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다. 감자를 으깨 그 위에 인도소스를 뿌린 음식인데, 각자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앉을 곳을 찾았다. 그런데 온통 방뇨와 방분의 흔적이 가득하다. 결국 우리는 먹을 장소를 찾지 못하고 걸어가며 음식을 먹어야 했다. 기껏 좋은 자리가 보이면 그곳은 벌써 걸인들이 차지한 자리였다. 

좁은 골목에 사람, 자동차, 오토 릭샤,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오고 갔다. 그 거리의 주인은 없었다. 모두가 주인이었다. 그래서 거리는 혼잡스럽지만 사람은 평온했다.
 좁은 골목에 사람, 자동차, 오토 릭샤,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오고 갔다. 그 거리의 주인은 없었다. 모두가 주인이었다. 그래서 거리는 혼잡스럽지만 사람은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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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치이고 또 치이고..."정신 없었다"

붉은 성에 도착했다. 붉은 성은 무굴 황제인 샤 자한이 추진해 지었다. 붉은 성이 유명한 것은 인도의 초대 총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곳이기 때문이다. 성벽이 붉은 색 벽돌로 쌓여 있어 붉은 성이라고 부른다. 일요일 오후 가족과 연인끼리 마실 나온 현지인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 성벽 너머 바라보는 붉은 성의 웅장함이 인도 무굴 제국의 힘을 말하고 있었다.

오토 릭샤를 타고 간디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인도의 모든 화폐 단위에는 오직 한 인물만이 그려져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간디다. 아직도 인도인들 사이에서 간디는 인도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종족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인도지만 간디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하나였다.

해가 진 바자르 시장을 통과해 올드델리 역으로 갔다. 아수라장의 밤 시장. 밀리고 부딪히고 밟히고... 사람에, 차에, 소에, 달구지에... 진짜 아수라가 따로 없었다. 앞 사람이 열어놓은 길이 닫히기 전에 빨리 쫓아가야 한다.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에게, 릭샤꾼과 자동차 운전수에게, 노점상 리어카에게 공간을 뺏길지도 모른다. 의아한 것은 부딪히거나 길이 막혀도 누구 하나 화를 내거나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와 호객 소리에도 서로 동떨어진 섬에 있는 것처럼 어떤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 이어 두 번째 유체이탈이 왔다. 몸은 군중과 함께 떠내려가지만 내 정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뒤로 맨 가방이 걱정돼 앞으로 돌려 매니 가방이 열려있었다. 언제 누가 내 가방 지퍼를 열었지? 화들짝 놀라 복대 안에 있는 지갑과 여권을 손으로 체크 했다. 다행히 손에 잡혀야 할 물건이 잡혔다.

"이젠 어떤 인도를 경험하더라도 두렵거나 당황하지 않을 것 같아요!"

"여행하는 도중 힘들 때면 이곳을 생각하자고."

붉은 성
 붉은 성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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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밤에 올드델리 역을 찾아가는 길은 외로움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이곳이 어딘지도 정확히 분간되지 않았고, 누구 하나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두려움은 모든 인도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었고, 그들을 보는 나의 시선 또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은 밖에서 찾아오지만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밖에 그 책임을 묻고 있는지...

우리는 올드델리 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가방 세 개를 세워놓고 현지인들 옆에 떡 하니 자리 하나를 마련했다. 어딘가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들은 대부분 큰 보따리 몇 개씩을 지고 열차에 올라탔다. 델리에 와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서 그것을 시골에다 내다 파는 상인들이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도시 생활에 찌든 피로감이 보였다.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을 사기 위해 역내 매점으로 갔다. 그 순간 올드델리 역에 있는 한 걸인 아이가 빵을 사는 나를 보자마자 피고 있던 담배를 황급히 던지고 달려왔다. 짐작으로 10살 정도 되는 어린 아이였다.

"헤이, 기브 미 텐루피."

시꺼멓게 때 묻은 손을 벌렸다. 그 아이의 눈을 보며 "No!"라고 하자, 그럼 가게에서 덤으로 준 초콜릿을 달란다. 초콜릿을 주려 손을 내밀자 어디선가 또 다른 걸인 아이 두 명이 달려들었다. 눈앞에서 초콜릿을 쟁취하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중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뒤로 힘껏 밀치며 잽싸게 내 손의 초콜릿을 빼앗아 뒤돌아섰다. 한 아이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금세 가망 없는 게임을 포기하고 다른 목표물을 찾아 길을 나섰다.

밤이 찾아오면 역은 걸인들의 숙소로 변한다.
▲ 올드델리 역의 걸인 밤이 찾아오면 역은 걸인들의 숙소로 변한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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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차 여행은 상등칸으로 당첨!

출발 시간이 가까이오자 조드푸르 행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왔다. 운 좋게도 우리는 올드델리 역에서 조드푸르까지 예약했던 3AC 칸(coach)가 아니라 한 단계 높은 등급인 2AC(HA1) 칸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인도 열차의 좌석 예약 확정 명단은 각 객차 입구에서 종이로 출력해 붙여 놓는데, 우리가 예약한 B4 객차에서 우리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인도의 첫 번째 열차 탑승부터 난관에 봉착해 허둥지둥 이 객차, 저 객차를 돌아다녀야 했다.

"아~ 예약이 잘못된 건가? 우리 이름이 없잖아!"

B4칸에서 이름을 찾지 못한 우리는 같은 등급인 B1~3까지 돌아다니며 명단을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이름이 없었다. 결국 우리가 이름을 발견한 곳은 B4 객차 명단 맨 아래에 적힌 명단에서였다. 3AC 예약자는 넘치고 2AC는 자리가 남아 초기에 예약한 우리를 2AC로 배정한 것이었다. 6인실에서 4인실로 로또 당첨! 허리를 쭉 펴고 인도 상류층 사람들과 안락한 첫 번째 기차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무질서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그 거리들,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들, 나마스테하며 순수와 무욕의 미소를 짓고 인사하는 친절한 인도인들. 모순된 모습이 중첩된 곳이 바로 인도였다. 인도를 표현할 수 있는 정답은 없었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중고등학교 현직 교사 세 명이 2014년 1월, 한 달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우다이뿌르, 조드뿌르, 아그라, 바라나시, 맥그로드 간지 등 인도 중북부를 방문했습니다.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사색과 반추, 철학'이 있는 '여행'에 관한 것입니다.



태그:#올드델리, #인도배낭, #붉은 성, #찬드니 촉, #간디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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