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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3년 6월까지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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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들은 가족 범주 안에 들지 못해 굉장히 고통받아요. 법률상 혜택도 못 받지만 부당한 비난까지 받죠. 결혼의 핵심은 두 사람이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느냐인데, 부족함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데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거나 무책임하다고 비난받고 있습니다."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혼'이 아닌 '동거'를 선택해 동반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얘기할 때 더욱 그랬다. 진 의원은 "일반적으로 동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몸을 함부로 놀린다거나 천박하다거나, 성적 관념이 가볍거나, 혼인을 기피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비난이 제기된다"라고 밝혔다.

진 의원 자신에게도 "잘난 척 하기는... 무난하게 살지"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다고 한다. 그 역시 동반자 관계로 사는 당사자이기 때문다.

국회 입성할 때 혼인신고 고민해봤지만... 17년째 '동반자 생활'

지난 1998년, 진 의원은 남자친구와 이미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 바빠서 혼인신고를 미루다 진 의원이 변호사 시절 '호주제 위헌 소송 변호인단'으로 활동한 것이 동반자 관계의 계기가 됐다. '무호주 변경 신고'가 이뤄지면 그 때 혼인신고를 하자는 진 의원의 제안에 남자친구도 쿨하게 '콜'했다. 동반자로 살아온 지 벌써 17년이다.

19대 국회 입성 시 딱 한 번 혼인신고를 고민해봤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대변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 생각은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이하 동반자법)으로 구체화됐다. 진 의원은 10월 내에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 및 10개의 부수 법률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법 해설 기사 : "8년 째 부부인데 입원수속도 못하니....좀 서글프네요" ).

동반자법은, 혼인 관계를 뛰어 넘어 혈연 또는 혼인 외의 사유로 삶을 공유하는 '생활동반자' 관계 성립과 효력을 규정하는 법안이다. 10개의 부수 법안에는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출산휴가·육아 휴가 등의 돌봄 휴직 권리를 부여하고 임대조건에서 생활동반자 관계에게 부부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진 의원은 '동반자 관계 규정 및 권리 의무 부여'를 명시한 법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 법을 통해 동반자들의 결합이 가볍게 폄하되는 차별 의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동반자법'은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 아닌, 도리어 가족의 외연을 넓히고 튼튼하게 해주는 법이라는 것이 진 의원의 생각이다.

"지금 '초고령화 초저출산화 시대'를 얘기한다. 더불어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엄청난 위기감을 부추기면서도 다양한 동반자 형태에 대해서 '혼인'이라는 법적 제도는 손을 놓고 있다. 사회가 그렇게 위기라면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좀 같이 살아봐' 권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 좀 더 유연한 결합을 통해서 누군가와 함께 살며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관계를 보호해주는 동반자법은) 기존의 가족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외연을 확대하고 튼튼하게 한다."

다음은 9월 26일 진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혼인 신고 안 했다고 왜 비난 받아야 하나"

- 생활동반자법을 처음 고민한 계기는?
"'호주제 위헌 소송 변호인단'으로 활동한 것에서 싹텄다. 또 여성으로 변호사를 시작하다 보니 가사 사건을 많이 맡기도 했고, 사명감도 갖게 됐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한 건 2012년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 면접심사 때다. 이틀 꼬박 밤을 새면서 십 몇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활을 정리하다 보니 혼인 신고를 안 한 게 고민이 되더라.

정치계가 구설수가 많은 동네인데 내가 동거하는 게 어떻게 비춰질까 처음 고민해봤다. 불이익을 당할까봐 혼인신고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불편하더라. 그러다가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대변해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 의정 활동을 하면서 우리 방 팀원들과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됐고 '생활동반자법' 발의까지 이어졌다."

- 어떤 문제의식이 가장 컸나.
"우리 사회는 가족이 급속도로 분화되고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차분한 엄마와 씩씩한 아빠, 귀여운 딸과 건강한 아들'이 전형적인 가족 모형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실상 우리 사회에는 만혼도 있고 혼자 살기도 하고, 결혼식 없이 살기도 하고, 돈이 없어서 결혼 비용을 대기 어려워 혼인 신고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적법한 결혼의 범주, 가족의 범주 안에 들지 않다는 것 때문에 고통 받는다. 법률상 혜택도 못 받지만 부당한 비난까지 받는다. 결혼의 핵심은 두 사람이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느냐인데, 부족함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데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거나 무책임하다고 비난받고 있다."

- 개인적으로도 남자친구와 동거 중인데, 그 삶은 어땠나.
"난 동거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연애하다가 연수원 2년 차 때(1998년) 결혼식을 했고 졸업하자마자 변호사로 생활하면서 바빠서 혼인신고 할 생각도 못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호주제폐지준비모임에 참여했다. 결혼해서 잘 사는 부부가 무호주 변경 신청을 했던 건인데, 혼인신고와 동시에 '호주 : 남편-가족 : 부인' 이렇게 되는 걸 없애달라는 요청이었다. 우리는 평등한 부부이지 누가 호주고 누가 가족, 뭐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무호주 변경을 신청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뭔가?' 싶었다. 그 때 같이 사는 남자친구한테 우리도 호주제법이 바뀌면 그 때 혼인신고 하자고 제안했는데 '콜'해서 쭉 진행됐다.

난 남자친구의 주변 사람과 나의 가족에게 '동거'하는 삶의 다른 점을 보여주기보다는 그 사실 자체를 잊게 하려고 더 노력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셨는데 나 딴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등 (일반적인 결혼생활과) 구분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여러 선입견이나 비난 때문에 좋은 취지 자체가 훼손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뭐 그런 거다.

동거의 좋은 점은 (잠시 고민 후) 동거다,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특별한 장단점은 없는 거 같다. 다만 오히려 더 서로에게 긴장하며 남성이고 여성인 걸 의식하고 사는 듯하다. 그래서 관계 자체가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한 부분도 있다." 

- 동거함으로써 겪는 차별은?
"살면서 한두 번 굉장히 큰 수술을 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내 보호자는 엄마였다. 지금도 내 이름 석자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가족으로 엄마, 큰 오빠 이렇게 돼 있다. 또 해외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난 마일리지가 거의 없었는데 같이 사는 남자는 마일리지가 좀 많았다. 원래 부부는 마일리지를 같이 쓸 수 있는데, '나도 이 남자랑 같이 살고 있다, 왜 혜택을 못받느냐'고 항공사에 전화도 했다. 배우자 공제, 연금 혜택도 안 되고….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 주민세는 꼬박꼬박 각자 내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이런 것들이 대부분 해결된다. 생활동반자로서의 지위들을 인정받는 거다. 물론 법률적 혜택도 중요하지만 이 법으로 동반자들의 결합이 가볍게 폄하되는 차별 의식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의 사랑이 더 깊다 얕다를 판단할 수 있겠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만든 제도가 어느 시점부터는 그 사회에 맞지 않다면 '수선'해야 한다."

- 제도적 차별 외에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겪은 일도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동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몸을 함부로 놀린다거나 천박하다거나, 성적 관념이 가볍거나, 혼인을 기피하는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식의 비난들이 제기된다. 나 개인에게는 '잘난 척 하기는... 무난하게 살지' 이런 시선들이 존재한다. '드센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그러나 그런 여성들이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수많은 제도들은 바뀌지 않았을 거다. 그 부분에 확신을 갖고 있다."

- 법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됐거나, 버거웠던 점은?
"동거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도 그들에게 씌워지는 편견이 있어서 자기 상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목소리가 모아지지 않는다. 바깥에서 법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줘야 힘이 붙는데…. 현재 유의미한 통계나 분석자료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또 여러가지 왜곡된 시선들이 있다. 호주제 폐지 때도 가족을 해체한다느니 근친상간을 만연케 한다느니 말이 많았지만 지금 하나도 그렇지 않다. 생활동반자법도 그렇다. 결혼을 해체하려 한다는 왜곡된 시선이 있다. 이런 오해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거라고 믿는다."

"누군가에게는 목숨같은 법"

- 10월 초, 법안 발의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통과에 어려움은 없을까.
"지금 '초고령화 초저출산화 시대'를 얘기한다. 더불어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엄청난 위기감을 부추기면서도 '혼인'이라는 법적 제도는 다양한 동반자 형태에 손을 놓고 있다. 가족이 아닌 것을 차별한다. 사회가 그렇게 위기라면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좀 같이 살아봐' 권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혼인 제도가 아니라 좀 더 유연한 결합을 통해서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법안 통과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까 싶다. 발의 전인데도 주변에서 격려를 많이 받고 있다. 이번에 정말 감동 받았던 게, 여성계 원로이신 이효재 선생님이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된다는 걸 들으시고는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들고 싶었던 법안이다, 고맙고 고생한다'라고 격려 전화를 주셨다. 평생 여성계에서 투쟁해오신 분이 격려해주시는 걸 보면서 의원실 팀을 비롯해 우리가 참 잘하고 있구나 싶었다.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겠다. 용기 있게 부딪쳐서 설득해 나가겠다. 반대하는 분들에게도 측은지심을 발휘해야지. 이 법이 누군가에는 목숨 같을 수 있다."

- 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PACS법(공동생활약정)을 많이 참고 했다고 들었다.
"이번에 프랑스를 직접 방문했다. 주목하고 싶은 건 프랑스의 출산율이 늘었다는 거다.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결혼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들이 전체의 80~90%에 달한다. 그럼에도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서 아이를 갖고 소중한 구성원으로 산다. 프랑스는 PACS법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에 안정감을 준다. 우리도 출산율 상승에 효과가 있을 법한 제도는 다 도입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삶을 공유하는 결합에 부담감을 덜어주는 게 이 법이다. 기존의 가족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외연을 확대하고 튼튼하게 해주는 거다.

이는 황혼 이혼을 하거나 사별한 어르신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아들 딸들이 재산 분쟁 때문에 결혼을 반대하고 난리 나는 얘기를 기사를 통해서 많이 본다. 그런데 그 분들도 외롭다. 그래서 결혼은 못하고 동거만 하고 사는데 함께 사는 그 삶도 존중되어야 하지 않겠나. 10년씩 목숨처럼 아끼고 살았는데도 법 제도 안에 속하지 않는다고 왜 무시당해야 하나."

- 지난 7월에 열렸던 생활동반자법 토론회에서 '입법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다양한 사례 발굴을 해보려고 한다. 언론이 중요하다. 공론화돼서 불을 지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의 형태가 많이 분화돼 있는데 이게 이슈화될 수 있었으면…. 공론화되면 왜 이걸 이제 했을까 생각하게 될 거다. 발의되고 입소문이 나면 영향력 있는 분들이나 학자들의 분석이 보태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19대 국회 임기 내에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의식은 이미 숙성됐고, 필요성도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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