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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70년대 대한민국이 전쟁의 상처에서 힘들어 하던 무렵 초등학교에는 '쥐꼬리 잘라오기'라는 숙제가 있었다고 한다. 제법 오래된 신문에서 '곡식 먹고 병 주는 쥐를 잡자'는 피켓을 들고선 초등학생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당시 쥐가 너무 많아 국가적으로도 큰 피해를 주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처음 이런 쥐 잡기 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쥐의 개체수가 급속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쥐꼬리는 계속 등장했다. 그쯤 되면 완전히 없어져야 할 쥐가 계속 살아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관공서에서 조사 끝에 웃지 못할 광경이 드러났다. 바로 학교에 제출할 숙제를 위해 쥐를 사육하는 가정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쥐를 완전히 없애지 않고 사육이라는 방법을 쓰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학교 숙제였던 '쥐꼬리 잘라오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숙제를 계속하기 위해 쥐를 길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쥐를 잡아서 없애는 고유의 목적은 사라지고 숙제를 위해 쥐를 사육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은 웃어 넘기는 해프닝으로 치부할지 모르겠으나 이런 일들이 아직도 우리 가정에, 교육현장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질문이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왜 공부하나요?"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은 이렇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요. 좋은 대학에…"

한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왜 공부하나요?"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이렇다. "취직하려고요. 좋은 직장에…"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과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극찬한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게 교육에 열을 올려서 정작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내 가슴을 진정으로 뛰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듯하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정승이었던 관중(管仲)이 저술했던 <관자(管子)>라는 책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고사가 담겨있다.

일년지계 막여수곡, 십년지계 막여수목, 백년지계 막여수인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百年之計 莫如樹人

바로 농사를 짓는 것은 1년의 계획이요, 나무를 심는 것은 10년의 계획이며 사람을 가르치고 길러내는 것은 100년의 계획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한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사람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으로 보면 될 것이다.

결국 공부의 진정한 목적은 좋은 대학도, 좋은 직장도 아닌 올바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과연 '백년지계 막여수인 百年之計 莫如樹人'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태그:#공부의목적, #본질, #백년지계 막여수인, #올바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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