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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2일 오후 3시 16분]

"정부는 '자주 민주 통일'을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추종하는 가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주 민주 통일'은 제헌헌법부터 현재의 헌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헌법에 규정된 최고 가치 중 하나로 보아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14차 재판(9월 16일)에서 통합진보당 측 변호사가 한 변론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올해 1월 29일 첫 변론 기일 이후 진보당 해산을 둘러싼 치열한 법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청구인인 법무부가 문제 삼고 있는 점은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주권, 연방제 통일 방안 등의 노선이다.

이 같은 정부 측 주장에 맞서 법정에서 장기간의 공방을 벌이는 진보당의 대리인 중 한 명인 이재화(51) 변호사를 지난 9월 23일 서초동에서 만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변호사는 BBK 사건 때 정봉주 전 의원을 변론하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청와대의 증거인멸을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 사건 등 사회성 짙은 재판을 맡기도 했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도 오른 경력이 있는 이 변호사가 진보당 변론을 맡은 것에 대해 의외의 눈길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정부 측의 진보당 해산 시도에 대해 정파나 정당을 떠나서 공동대응해야 함을 강조하는 이재화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재판에 직접 방청해서 힘을 실어달라고 말했다.
▲ "진보당 해산심판 재판에 오세요" 정부 측의 진보당 해산 시도에 대해 정파나 정당을 떠나서 공동대응해야 함을 강조하는 이재화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재판에 직접 방청해서 힘을 실어달라고 말했다.
ⓒ 최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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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원인 내가 진보당 변론을 자원한 까닭은..."

-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는데, 어떻게 통합진보당 사건을 맡게 됐나?
"나는 통합진보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지난 총선에서는 민주당 비례대표 30번이었고, 현재도 당원이다. 작년 11월경 법무부가 (진보당) 정당해산을 청구하는 기사를 본 순간 자발적으로 사건을 맡기로 했다.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이 사건은 결코 진보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성취한 진보적 가치를 헌법 재판을 통해서 불온시하려는 거다. 개헌을 반대했던 세력이 헌법의 이름을 빌려 진보민주 진영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나도 민변에서 열심히 활동한 게 아닌데, 이 사건은 내가 꼭 맡아야겠다 마음먹었다."

- 보통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예민한 사건은 피해가지 않나?
"가족이나 친구들은 붉은 딱지가 붙을 거라며 반대했다. 나는 사실 그동안 국보법이나 이념적 사건은 거의 안 맡았다. 주변 사람들은 '이재화 변호사는 통합진보당과 색깔이 안 맞는데 왜 맡았냐'는 얘기 많이 한다. 정치도 꿈꾸는 사람이 종북몰이 당할지도 모르고,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거다. 손해 봐도 할 건 해야지 그거 무서워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거 때문에 정치 못하면, 안 하고 만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 갑자기 정의파가 된 건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이명박 BBK 사건으로 정봉주 재판을 맡으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변호사 혼자 열심히 변론해서 될 일이 아니구나,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구나, 그런 생각 많이 들더라. 나이 오십 넘으면 보통 뒷짐질 때다. 헌데 나이가 들고 내공이 쌓였으니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을 했다.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는 거의 한 번도 안 빠졌다. 연설해 달라면 연설도 했고, 유인물도 나눠주고, 직접 행동도 했다. 올 4월부터 민변 사법위원회 위원장 맡아서 각종 토론회, 집회에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변호사 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일했더니 나 스스로는 즐겁다."

- 확고한 인생관이나 소신이 없으면 이런 사건을 자발적으로 맡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누가 뭐래도 386세대가 우리 민주주의의 초석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현재의 헌법이란 게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투쟁의 산물 아닌가. 헌데 당시 헌법을 부정하던 세력이 이제 헌법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려 한다. 만약에 진보당이 해산하면 정치적 암흑의 시기가 올 것이다."

- 왜 갑자기 이런 퇴행적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나?
"현 정권이 박정희나 이명박도 시도하지 않은 정당해산 청구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박정희 정권 때도 사회당이 있었다. 관제 소리 듣었지만 그래도 사회당이다. 그런데 왜 박근혜 정권은 사회주의를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진보당을 해산하려 하는가. 일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정희 대표와 대선 토론하면서 당한 수모에 대한 보복이라고 본다. 친일파를 상징하는 '다카키 마사오'는 정말 뼈아픈 발언이었다."

- 아무려면 정부가 그런 이유로 정당해산을 추진하겠나?
"재판 진행하면서 정부의 준비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확인했다. 대선 직후엔 국정원 댓글 사건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테고, 이석기 의원 내란 사건을 시작으로 정당해산 청구를 급조했다. 정부가 정치적 의도로 만든 사건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법정에서 논리가 산다.

그런데 결론에 짜맞춰 증거를 제시하려다 보니 논리가 안 선다. 위에서 오더(지시) 받고 급조하다 보니 '쓰레기 같은' 증거 자료를 산더미처럼 제출했다. 증거 자료의 상당수가 극우 인터넷신문과 구글 검색 자료다. 어떨 때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도 섞여 있다. 문명 국가에서 근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데 너무 엉터리로 준비했다."

"'헌법 위에 북한 있다'는 정부"

- 정부의 주장 중에 특히 논리가 안 서는 건 무엇인가?
"예를 들면,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이 창당한 건 2000년이다. 그때 노선이 지금보다 더 급진적이다. 그럼 13년 동안 정부는 뭐했나? 그리고 이석기 의원이 합정동 모임에서 내란을 선동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준비한 조직원이 아무도 없다. 그럼 총책의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는 건가? 결국 2심에서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정부 측은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면서 진보당 간부들에게 숨은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민중당 해산하고 새누리당에서 활동하는 김문수, 이재오나 주사파였던 김영환, 하태경은 실제로 전향했는지 어떻게 아나? 그리고 진보당 해산 청구 주장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 과잉금지 원칙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대포로 참새 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허위사실 유포는 형사 아닌 민사로 처리하는 게 맞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 맥락에서 법으로 정당해산을 강제하는 것도 위험하다. 설령 정당 내 누군가가 폭력 혁명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더라도 다른 법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 따지고 보면 새누리당이야 말로 12·12 쿠데타, 내란으로 성립한 위헌정당 아닌가."

- 정부 측 논리가 부실하다면, 헌법재판소가 정부 손을 들어주긴 어렵지 않겠나?
"정부 측은 논리가 궁할 때 마지막으로 북한 카드를 쓴다. 북을 추종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래서 진보당의 연방제도 위헌이고, 반미도 위헌이고, 진보적 민주주의도 위헌이 되는 거다. 이 대목에서 변호인들은 우리 헌법 위에 북한이 있는 거 아니지 않느냐, 북이 우리나라 헌법이냐, 우리 헌법을 기준으로 위헌 판단해야지 왜 북한을 기준으로 위헌을 판단하냐고 따진다. 헌재가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적 재판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가 진보당의 자주 민주 통일 노선을 북한 대남혁명노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진보당 측 변호사들은 자민통은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라고 반론했다.
▲ "자주 민주 통일은 헌법의 핵심 가치" 정부가 진보당의 자주 민주 통일 노선을 북한 대남혁명노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진보당 측 변호사들은 자민통은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라고 반론했다.
ⓒ 진보정치 백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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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고 보니 정부 측은 헌법보다 북한을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는.
"헌법보다 북한의 언행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거야말로 종북이다. 정부 측은 연방제, 주한미군 철수 같은 주장이 이미 국보법의 심판을 받은 거라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아니다. 국보법이 헌법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월이 가면 국보법이 헌법에 반할 수도 있다. 정부의 시각은 '헌법 위에 북한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헌법은 알맹이가 없고 껍데기만 있다는 거냐."

- 워낙 국가보안법 테두리 안에서 사고하다 보니 헌법보다도 북한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이승만 정권 시절 진보당의 평화통일 주장이 북의 주장과 같다고 해서 조봉암 진보당 당수도 사형 당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부 측 증인이 나와서 6·15 공동선언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헌적이라고 증언하는데도, 정부의 대리인이 가만히 있더라. 역대 민주 정부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부정하는데, 그걸 두둔하더라. 이거 정말 기가 막힌 일인데, 언론에 한 줄도 안 나왔다.

진보당이 연방제를 주장해서 위헌이라면, 그럼 정부는 흡수통일을 주장한단 말인가? 박근혜 정부도 흡수통일에 반대하는데, 법정에서는 정부측 대리인과 증인들이 흡수통일 논리를 편다. 헌법전문에 명시된 '평화적 통일'을 하려면 상대방을 통일파트너로 인정하는 게 기본 예의인데, 상대를 부정한다. 이거야말로 반헌법적 논리 아닌가."

"진보당이 위헌이면 민주당·녹색당도 아무 말 못한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 첫 변론기일인 지난 1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정부측 대표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통합진보당측 대표 이정희 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변론이 진행되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 첫 변론기일인 지난 1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정부측 대표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통합진보당측 대표 이정희 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변론이 진행되었다.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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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차 변론기일 때 헌재에 가서 방청했는데, 그 날도 '반미', '미제'라는 표현이 북과 같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진보당 대리인단의 변호사가 반론을 펴는 걸 들었다. 헌법재판관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헌법재판관이 왜 우리나라가 자주정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묻더라고. 내가 그랬다. 우리나라가 식민지라는 뜻은 아니다, 군사지휘권을 미국이 갖고 있고, 외교도 미국의 눈치만 보니, 자주적이지 못한 거 아니냐, 그리고 시각이 다르다고 위헌이라면 전체주의 아니냐. 자주정부가 위헌이라면 예속정부를 추진해야 헌법에 맞는 거냐. 민중중심의 자립경제가 위헌이면, 재벌중심 경제가 합헌이냐. 이러다가는 북한이 한글을 쓰니 우리는 영어 쓰자는 얘기가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일부 헌법재판관들은 1980년대 운동한 사람은 여전히 혁명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만난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옛날 방식의 혁명을 꿈꾸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선거를 통해 집권하겠다는 사람들이었다. 혁명을 꿈꾸고 있다면 공개적인 정당에 왜 신분을 노출 시키겠는가. 그런데 정부 측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국보법을 위반했고, 그런 사람들이 통합진보당 들어와서 옛날처럼 혁명을 꿈꾼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혁명세력이라는 거지. 순전히 추측이다. 아무런 증거가 없다. 증인으로 나왔던 노회찬 전 의원 말대로 피디(PD), 엔엘(NL)은 이제 '운동권 동창회'일 뿐이다."

- 정부 측은 진보당 인사들의 머릿속을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는 거 아닌가 싶다.
"맞다. 1980년대 6월 항쟁 이전 헌법 개정되기 전에는 혁명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통령을 선거를 통해 내 손으로 못 뽑으니까 혁명하려 했던 거다. 그런데 정부 측은 아직도 그런 줄 알고 있다.

운동가들이 정당으로 들어온 순간 혁명은 포기한 거다. 선거로 집권하겠다는 선언 아닌가. 몇몇 사람 머릿속에는 혁명, 그런 게 있는지 모르지만, 정당 안에서 혁명을 공식 비공식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 정부 측은 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한다고 하는데, 증거 자료엔 그런 거 없다. 오히려 진보당 집권전략위원회도 선거로 좌파가 집권한 베네수엘라나 브라질을 견학하면서 전략을 짰다는 증거만 수루룩하다. 결국 선거로 집권하겠다는 거 아닌가."

- 할 말이 많을 텐데, 마지막으로 덧붙인다면.
"진보당 해산심판은 87년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다. '종북공세'의 영향 때문인지 조중동뿐만 아니라 진보매체도 역사적 재판의 쟁점을 보도하지 않는다. 헌법 안 진보를 말하는데 그 헌법마저도 위태로운 상황 아닌가. 자주 민주 통일은 이른바 진보세력이 일제강점기 이후 오랫동안 추구한 건데, 이걸 부정하면 노동당, 정의당, 민주당, 그리고 녹색당도 결국 아무 말 못한다. 이게 위헌이면."

처음 변호사가 됐을 때의 마음으로 진보당 해산 청구 재판에 '올인'한다는 이재화 변호사. 그는 지난 일 년, 일감이 줄어들고 재판 자료 검토하느라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차비 밖에 못 벌지만, 지금 생활이 즐겁다고 말한다. 부인도 지금의 남편 얼굴 표정이 제일 환하다며 만족해 한다고 한다.

기사를 길게 쓸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재판 기록과 동영상, 신문 자료 등을 보여주며 재판  뒷얘기를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그리고 자신이 출연한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8월 18일자, '개그를 해라, 통합진보당 해산 재판')를 들어보면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니 꼭 들어보라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방송을 들어보니, 정봉주 전 의원은 여러 차례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으로' 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을 다뤘다고 말했다.


태그:#이재화, #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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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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