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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지니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국군의 날을 하루 앞둔 9월 30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앞에는 가수 문진오님이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가 울려 퍼졌습니다. 군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시민들이 '추모의 밤'을 연 것이죠.

비록 1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든 조촐한 행사였지만, 이 자리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듣는 기자는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어쩌면 이 노래만큼 이 자리에 어울리는 곡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군대에서 죽은 큰 형님... 김광석에게 남달랐던 노래

고 김광석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등병의 편지'를 처음 부른 것은 윤도현이었습니다. 그룹 종이연의 리더 김현성이 작곡한 것을 그룹의 멤버였던 윤도현이 불렀죠. 김씨는 입대하는 친구를 서울역까지 배웅해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영감을 얻어 이 곡을 썼다고 합니다.

 '겨레의 노래1' 공연 팸플릿에 실린 이등병의 노래와 김광석.
 '겨레의 노래1' 공연 팸플릿에 실린 이등병의 노래와 김광석.
ⓒ 겨레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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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 노래는 <한겨레> 신문이 창간 2주년을 맞이해 주최한 노래 공모에 당선돼, 1990년 7월 서울음반이 제작한 '겨레의 노래 1'에 수록됩니다. 모두 12곡이 수록된 이 음반에서 이등병의 편지는 6번째 곡으로 실렸습니다. 그런데 이 곡을 부른 사람은 김광석이 아니라 '전인권과 가야'였습니다.

'겨레의 노래'는 전국을 돌면서 공연을 했는데, 전인권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자 김광석이 대신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1993년 김광석은 리메이크 곡으로만 구성된 '다시 부르기 1' 음반에 '이등병의 편지'를 수록했고, 이 음반은 <경향신문>이 선정한 '가요 100대 명반'에 그 이름을 올렸죠.

사실 김광석은 생전에 이 노래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연을 지난 1994년 KBS <기쁜 우리 젊은 날>에 출연한 김광석이 털어 놓았죠. 1사단 장병들 앞에서 그가 고백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제가 이 노래 나오고 꼭 제가 불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평생 이등병이거든요. 6개월 다녀왔습니다. (웃음) 남들은 뭐 다들 잘 갔다 오고 그러는데 왜 저만 못가나 싶기도... 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왜냐하면, 어. 큰 형님이 군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제가 혜택을 받게 됐는데 늘 이 노래 부르기 전에, 부르고 그러면 형님 처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형님이 처음 군에 가셨었는데 훈련소에서 누런 봉투에 입고 갔던 옷 싸가지고 집으로 집으로 보내주더군요. 그거 보시면서 우시던 어머님도 생각나고 그럽니다. (하략)"

28사단에서 군 복무를 하던 김광석의 큰 형님 김광동 대위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것은 김광석이 대광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1980년 10월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병역법에는 아버지나 아들 형제 중 한 사람이 군 복무중 전사하거나 전·공상을 입었을 경우 형제 중 한 사람을 현역복무 대신 보충역에 편입시켜 6개월간 방위병으로 근무케 했습니다. 그에 따라 김광석은 짧은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 국군의 생일이 기쁘지 않은 슬픈 현실

 군대 내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주최로 30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윤 일병과 또 다른 모든 윤 일병을 위한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다.
 군대 내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주최로 30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윤 일병과 또 다른 모든 윤 일병을 위한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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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그가 부르는 노래였으니, 이 노래가 남다른 생명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흔히 노래는 삶의 상처를 감싸고 위로해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등병의 편지'는 군복을 입었던 이 땅의 수많은 청춘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군에 보냈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우리와 총부리를 마주한 북녘 청년들도 군대에 갈 때 이 노래를 '떠나는 날의 맹세'라는 제목으로 부른다고 하니, 이 곡이 주는 감동은 남과 북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0월 1일. 우리 군의 생일인 국군의 날을 마냥 기쁘게 맞이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헤어져 군 복무를 하다가 어이없는 이유로 돌아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입니다. 매 맞아 죽고, 상관의 성추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치료 시기를 놓쳐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게 아직 우리 군의 현주소입니다. 

매년 군복을 입는 젊은이는 30만이 훌쩍 넘습니다. 이 수많은 이등병들, 아니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기꺼이 군복을 입은 모든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 이들 젊은이들의 헌신으로 안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의무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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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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