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이광종호가 오랜 격언을 그라운드에서 증명해보였다. 9월 30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에서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태국을 2-0으로 완파하며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경기 초반 태국의 빠른 스피드에 다소 고전했다. 이전에 한국을 상대했던 팀들과 달리, 태국은 뒤로 물러나 수비만 하지 않았다.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배후 공간을 파고들며 한국을 위협했다. 한국에 비하여 신장과 파워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태국 선수들은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매우 빠르고 기술적이었다.

하지만 태국의 스타일은 한국이 이전에 만났던 약팀들보다는 오히려 상대하기 편했다. 한국은 전반 중반이 넘어가면서 태국의 스피드에 서서히 적응해가는 모습이었다. 높은 볼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압도적인 힘과 높이를 활용해 끊임없이 측면에서부터 크로스로 태국 문전을 노리는 단순하면서도 선굵은 공격이 통했다.

장신 공격수 김신욱이 없는 상황에서도 평균 신장이 170cm에도 못 미치는 태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의 높이와 거친 몸싸움에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전반 41분 임창우의 오른쪽 크로스에 이은 이종호의 헤딩슈팅이 골문 구석을 찌르면서 태국의 골문을 열렸다. 뒤이어 전반 45분에는 이재성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주장 장현수가 성공시켜 2-0으로 달아났다.

두 골 차의 여유로 안정감을 찾은 한국은 후반에도 기세를 이어갔다. 최전방의 이용재가 연이어 슈팅 기회를 잡으며 태국 문전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추가골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기세에 눌린 태국은 좀처럼 반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후반 16분 측면 풀백 김진수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곽해성과 교체되면서 잠시 조직력이 흔들린 틈을 타 태국의 역습이 살아났지만, 골키퍼 김승규가 여러 차례 유효 슈팅을 선방해내며 위기를 막아냈다. 한국은 남은 시간을 잘 버틴 끝에 두 골 차 리드를 지키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6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 완벽한 수비 보여줘  

한국은 이번 대회 준결승까지 6경기를 치르는 동안 12골로 경기당 2득점을 기록했고 실점은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기록이 증명하듯 현재 이광종호는 아시안게임 최고의 팀이다.

수비는 거의 완벽하다. 골키퍼 김승규가 버틴 골문과 장현수가 이끄는 포백은 시간이 갈수록 안정감을 더해가고 있다. 무실점 기록은 단지 실점의 숫자보다 상대에게 먼저 리드를 허용한 경우가 없다는 데 가장 의미가 있다. 주로 밀집 수비를 구사하는 상대팀에 맞서 흔들리지 않고 이광종호가 시종일관 주도적인 경기 운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비록 대회 내내 단조로운 공격 루트에 대한 우려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전력의 핵이던 김신욱과 윤일록이 빠진 상황에서도 꾸준히 경기를 주도하며 골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고무적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 전반 5골, 후반 7골을 넣으며 시간대별로 고른 득점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세트피스, PK, 중거리슛, 크로스에 의한 헤딩 등 득점 방식도 다양했다.

'이' 없으면 '잇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조별리그에서 3경기 연속골을 넣은 김승대가 있었다면, 토너먼트에는 이용재와 이종호가 있었다. 특히 이종호는 일본과의 8강전에서 장현수의 결승골이 된 페널티킥을 끌어내는가 하면, 태국전에서도 선제 결승골을 넣는 등 고비마다 소금같은 활약으로 제몫을 다했다. 8강과 4강전에서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 성공률 100%을 기록한 장현수의 침착한 결정력도 돋보인다.

이광종호는 4강전에서는 이번 대회 한국과 함께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던 태국의 골문마저 무너뜨렸다. 1990년 대회부터 20년 넘게 계속된 한국의 아시안게임 준결승 무득점 징크스도 깼다. 주로 측면을 활용한 우직하면서도 선굵은 공격은 단조롭지만, 이제는 상대가 알면서도 막기 힘든 한국만의 색깔이 되어가고 있다. 더구나 부상 때문에 아껴둔 김신욱 카드를 꺼내들지 않고서도 결승까지 온 것은, 이광종호가 아직 그 이상을 보여줄 여력이 남았음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최종 결승 상대는 북한(10월 2일)이다. 아시안게임 정상 자리를 놓고 안방에서 남북전이라는 한민족 대결을 치르게 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오직 축구 차원에서만 보자면 북한은 갚아야 할 빚이 있는 라이벌이다. 한국은 최근 아시아 16세 이하 챔피언십과 아시안게임 여자축구에서 모두 북한의 벽에 막혀 우승의 꿈을 놓쳤다.

28년 만의 금메달 탈환을 노리는 남자축구에게 있어서 북한전 승리는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승전까지 불과 하루의 휴식일밖에 없는 살인적인 일정이 변수다. 북한이 같은날 이라크와의 준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치르고 올라온 뒤라 체력적인 면에서 한국이 유리한 상황이다. 대망의 퍼펙트 우승까지 이제 단 한걸음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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