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메인 포스터

▲ 제보자 메인 포스터 ⓒ 영화사 수박

지난 2005년 한국사회를 경악으로 몰아넣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사건이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2012년 강수경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줄기세포 스캔들과 올해 오보카타 하루코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박사팀의 유도만능줄기세포(STAP세포) 사건과 함께 '줄기세포 3대 스캔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사건은 2005년을 통털어 가장 뜨거웠던 그야말로 공전의 사태였다. MBC < PD수첩 > 게시판에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는 류영준 당시 연구원(현 강원대 교수)의 제보를 통해 불이 붙은 사건은 많은 논란 끝에 제보자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며 국내 연구윤리와 관련한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되었다.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맡았다. 평소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만들어 온 그녀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줄기세포 조작사건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은 일찌감치 이 영화를 2014년 최고의 문제작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게끔 했다. 어찌보면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씨를 품고 있는 이 사건이 뚝심있는 연출이 장기인 그녀와 만나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영화팬들의 관심이 쏠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2014년 또 한 편의 문제작, <제보자>

사실 우리 영화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문제작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 2007년 석궁테러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 어느 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영화화 한 <도가니>,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이후를 그린 <한공주>, 지강헌 사건을 옮긴 <홀리데이>, 그리고 요즘 같아선 언급하기조차 무서운 <그때 그사람들>과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이들 영화들은 그 완성도가 제각각이긴 했지만 사안의 민감성과 화제성이 맞물려 대부분 나름의 성공을 거뒀고, 흥행을 바탕으로 또 다른 문제작이 제작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제보자>는 위와 같은 문제작의 계보를 이을 2014년의 기대작 가운데 한 편이다.

사안의 민감성은 영화의 시작부터 여지없이 보인다. 지난 겨울을 뜨겁게 달군 <변호인>에서와 같이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었지만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는 자막이 첫머리부터 떠오르는데 한국의 영화팬에게 이런 자막은 블랙코미디적 장치로 여겨진 지 이미 오래다.

이야기는 세계적인 줄기세포 연구자 이장환 박사의 강연이 벌어지는 어느 대학 강당에서 시작된다. 누가 봐도 황우석 박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장환(이경영 분)은 전 국민적 지지 속에 줄기세포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로 처음부터 연구 자체보다는 이미지메이킹에 신경쓰는 출세지향적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이장환 박사의 연구소에서 팀장으로 근무했던 심민호(유연석 분)로부터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제보를 받은 윤민철(박해일 분) PD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조작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

영화가 내포한 세 가지 문제점

제보자 윤민철 PD(박해일 분)와 만나 진실을 털어놓는 심민호(유연석 분)

▲ 제보자 윤민철 PD(박해일 분)와 만나 진실을 털어놓는 심민호(유연석 분) ⓒ 영화사 수박


안타깝게도 영화는 세가지의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이 영화를 더 나은 수준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듯하다.

어쩌면 공익제보자의 딜레마나 연구윤리의 문제와 관련한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를 영화였음에도 그저 과거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정도에서 그친 듯해 몹시 아쉬웠다. 다음에서 이 세 가지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자.

1. 장르적 선택의 문제

우선 장르적 선택의 문제다.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며 치밀하게 전개되는 추적극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회적 문제제기에 집중하는 고발영화도 아니다. 관객 대다수가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사건을 다룰 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평범한 영웅적 드라마가 펼쳐질 뿐이다.

처음부터 이장환 박사는 위선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주인공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정의의 투사임이 명확하다. 이런 구도 속에서 관객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니 극적 긴장감은 충분할 만큼 지속되지 못한다. 치밀한 시나리오를 통해 긴장감을 높이거나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 관객들을 일깨우거나 하는 장르적 선택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영화는 진실을 위해 헌신하는 주인공의 영웅적 모습을 강조하며 신파적 드라마를 써내려갈 뿐 관객들이 매력을 느낄만 한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다. 이것이 영화의 첫 번째 문제다.

2. 노골적인 메시지

두 번째 문제는 메시지의 표현방식이 강렬하다 못해 노골적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영화는 여러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진실과 국익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 질문하고, '진실은 궁극적으로 국익에 기여하므로 진실이 우선한다'는 동일한 답을 바로 내어놓는다.

이같은 설정은 윤민철이라는 영웅적 인물이 내외부의 역경을 무릅쓰고 마침내 승리하는 이야기를 통해 진실이 결국 이기는 극적 드라마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이 너무나 노골적인 나머지 감동마저 작위적으로 여겨질 정도다. 몸을 던져 사장의 차를 가로막으며 PD로서의 의무를 부르짖는 클라이막스나, 그를 통해 한 순간에 어려움을 해소하는 상황도 빈약하고 급박한 인상을 남긴다.

뿐만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사실이 밝혀질수록 오히려 더 많은 국민들이 이장환 박사를 지지하고 맹신하게 되는 상황의 당혹스러움이다. 감독은 이 상황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언급하는 방식으로 부조리함을 전면에 드러내어 표현하려 했지만, 결국 이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다른 방식을 고민했다면 더욱 울림있게 전달할 수 있었을텐데 정공법을 고집하다 흥미로운 상황을 그저 소모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여백이 거의 없는 영화 속에서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장치들이 거듭 등장하기에 영화가 촌스럽고 민망하게 느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을 듯 보인다.

제보자 진실을 추적함에 따라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는 윤민철(박해일 분)

▲ 제보자 진실을 추적함에 따라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는 윤민철(박해일 분) ⓒ 영화사 수박


3. 세련되지 못한 연출

이 영화가 가진 세 번째 문제는 세련되지 못한 연출에 있다. '올드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임순례 감독의 연출은 필연적으로 긴박함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 영화에서 장점보다는 단점을 많이 노출했다. 장면의 호흡이 일정하고 화면의 구도는 평범하며 인물의 대사나 연기, 음악 등에서도 새롭거나 세련된 구석을 찾기 어려웠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모두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 풀어간다면 대체 어떤 관객이 감동을 느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프닝을 통해 너무나 빨리 성격이 드러나고 마는 이장환 박사의 캐릭터를 조금 감춰두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자신을 미화하는 두 차례의 연설 장면을 조금은 진중하게 가져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촌스러움을 극대화하는 장면은 바로 영화의 엔딩신이다. 모든 문제가 해소 된 후 윤민철 PD가 새로운 제보를 받고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장면은 그 옛날 <실미도>에서 허준호가 사탕봉지를 떨어뜨릴 때만큼이나 정직하고 유치한 연출이었다. 충분히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영화가 그저 PD저널리즘에 바치는 헌시가 되고 만 것은 바로 이런 연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의의를 찾는다면...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뚝심있게 가져간 연출이 적어도 줄기세포 스캔들을 알기 쉽게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을 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명하긴 했으나, 거짓이 드러났음에도 사실규명 없이 맹신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그려낸 점, 학계와 언론 그리고 정부의 문제를 포착한 점, 박해일을 포함해 숙련된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무난하게 이끌고 간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경영, 김원해 등 몇몇 배우들이 최근 지나치게 많은 영화에 출연해 이미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점도 걱정이 되지만 아직까지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아니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의 우직한 연출이 여기가 끝이 아님도 알고 있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goldstarsky)에 게재하였습니다
제보자 줄기세포 임순례 박해일 이경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