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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개막한 45억 아시아인의 축제, 인천 아시안게임이 폐막을 며칠 앞두고 있다. 아시안게임 최다 신기록 갱신의 역사를 쓰고 있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반면, 대회 운영과 관련해 '동네 운동회만도 못하다'는 치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 틈에서 깨알 같은 재미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인천 아시안게임 '남북공동응원단(아래 공동응원단)'이다. 한창 바쁜 장수경(47) 공동집행위원장을 9월 24일 만났다.

"남북관계가 험악하면 인천 사람들 행복 위협"

장수경 인천아시안게임 남북공동응원단 공동집행위원장
 장수경 인천아시안게임 남북공동응원단 공동집행위원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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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고, 북은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남이나 북이나 의미 있는 해를 앞두고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렸습니다. 올해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 '통일프로세스' '드레스덴 선언' 등 통일 관련 정책을 연이어 쏟아냈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성과로 남겼듯이, 그럴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5·24 조치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꼬여만 갔다. 작년부터 이산가족 상봉이나 고위급 회담 등을 시도했지만, 성과가 있지 않았다. 많은 정치·군사 평론가들은 인천 아시안게임이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북측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응원단이 선수단과 함께 참가했다.

장수경 공동집행위원장은 정치·군사적 교류가 아닌 스포츠 교류이기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평화가 절실한 인천에서 최초로 남북공동응원단을 만들어 인천아시안게임의 성공에도 기여하고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인천은 분단과 전쟁 등의 상징이 많은 지역이에요. 조금 멀게는 1883년 외세에 의한 개항으로 인천이 수탈의 관문 역할을 하기도 했죠.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이기도 하잖아요. 서해교전이나 연평도 사건만 보더라도 남북관계가 험악할수록 인천 사람들의 행복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평화는 인천시민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그래서 아시안게임을 남북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남북공동응원단을 만들었습니다."

공동응원단 구성을 지난 3월부터 준비했다. 인천의 60여 개 단체와 다른 지역들 100여 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그중 평화도시만들기인천네트워크와 아시안게임범시민지원협의회 남북교류분과,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인천본부가 주축을 이룬다.

장 공동집행위원장은 평화도시만들기인천네트워크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공동응원단은 공동단장 4명과 공동집행위원장 4명이 사업 결정과 집행을 총괄하며, 사무국장이자 응원단장이 실무를 총괄한다.

7월 23일 인천시청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했고, 9월 20일 남동럭비경기장에서 북한 여자축구 선수들을 응원하기 전에 발족식을 했다.

"전국적으로 5000여 명이 공동응원단에 참가 신청을 했어요. 지금도 계속 문의가 오고 있고요. 단체별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지만, 개별 신청하는 시민도 많아요. 특이한 건 종교인들의 참여도가 높다는 거예요. 인천의 어느 개신교회에서는 50명에서 100여 명이 집단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가톨릭이나 불교 쪽에서도 많은 사람이 참가합니다."

특히 공동응원단을 후원해주고 있는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대표들은 응원단 참가는 물론이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상설 진행하고 있는 '평화의 거리' 물품판매 품목도 협찬했다. 9월 29일 남북이 겨루는 여자축구 준결승전에는 100여 명이 공동응원단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공동응원단에 소극적인 인천시, 그 뒤에 정부 부처?

남북공동응원단 응원 모습
 남북공동응원단 응원 모습
ⓒ 시사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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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공동집행위원장은 공동응원단 활동을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끝까지 애가 탔던 건, 북측 응원단의 참석 여부였다. 공동응원단은 홍보 활동,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등 다양한 활동으로 북측 응원단의 참석을 제안했지만, 안 됐다.

"7월께 북측에서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공식성명을 발표했어요. 그러나 우리 정부에서는 인공기 크기나 체류비 문제 등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어요."

공동응원단 활동을 애초부터 정부가 방해했다는 주장도 있다. 인천시는 지난 7월 초에 공동응원단 관련 예산에 대해 '전액 지급 보류' 결정하고, 공동응원단 쪽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미 올해 초 시의회를 통과한 예산을 시가 일방적으로 집행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시에서는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들이 공동응원단에 대해 부정적이고,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예산 집행을 보류했다"고 말했고, 정부 부처 관계자는 "공동응원단은 시 소관이지 우리가 지시하거나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서는 공동응원단이 북측 선수 경기들을 응원하기 위해 표를 구하는 과정에서 경기장이 텅텅 비었는데도 매진이라고 해, 단체응원에 차질을 주었다는 것이 응원단의 주장이다.

"정부나 인천시나 북측 응원단의 참가 여부가 아시안게임 성공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미온적으로 움직였어요. 그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번 응원 참가하는 것이 훨씬 살아있는 통일 교육"

미지근한 관료들의 반응과 달리 시민들의 성원은 대단했다. 제주도에 사는 한 부부는 북측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9월 28일부터 10월 4일까지 휴가를 내고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인천으로 왔다.

"9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부평구청과 인천시교육청 강당에서 응원연습을 했어요. 사실 얼마나 올까 의아했는데, 주말인데도 200여 명이 왔어요. 개인적으로 신청한 사람도 있었고,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오기도 했고요."

공동응원단은 지난 9월 15일, 남자 축구 예선전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중국과의 경기를 처음 응원했다. 월요일 오후 시간이라 350여 명 참가했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면서 박수치는데 찡하고 뭉클하더라고요. 다들 그랬대요. 백날 이론적으로 교육하는 거보다 한 번 참가해서 응원하는 것이 훨씬 살아있는 통일 교육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북측 선수단이 우리 응원단한테 인사하러 왔을 때, 응원단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북측 응원단을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민족인가? 동포애인가?'라는 감정을 느꼈어요. 윤정수 감독이 '우리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해 준 남북공동응원단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한 말을 듣고 뿌듯하기도 했고요."

남북공동응원단 응원 모습
 남북공동응원단 응원 모습
ⓒ 시사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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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응원단은 경기에 참가해 응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천종합문화예술관 앞 야외무대에서 지난 9월 20일부터 '평화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의 '평화콘서트', 청소년인권복지센터내일의 '청소년평화페스티벌', 인천민예총의 공연 '판을 벌려라', 그 밖에 평화북콘서트와 상설전시 10여개를 하고 있다. 상설전시에는 이시우 작가 사진전과 평화사진전, 평화포토존, 개성공단 물품 전시부스를 차려놓고 응원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인천예술회관에서 다양한 공연들이 펼쳐지잖아요. 공연을 관람하고 나오는 시민들이 부스에 많이 찾아와 평화의 취지에 호응해 줍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적극적인 호응이 고맙기도 하지만, 장 공동집행위원장은 인천시의 태도에 여전히 실망스럽다.

"북측 응원단 참여가 불발로 끝난 것도 아쉽고 실망스럽지만, 그것보다 아시안게임 자체가 인천시 재정 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것이라, 절대적으로 흥행이 돼야 했어요. 그중 북측 응원단 참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는데, 인천시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공동응원단은 모든 일정이 끝난 후 과연 인천 아시안게임이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치러졌는지, 인천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만들어냈는지, 이를 위해 유정복 시장과 중앙정부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장 공동집행위원장은 "10·4선언은 인천선언이라 부를 만큼, 서해 문제가 해결됐을 때 경제적인 효과와 가능성이 많은 도시가 인천이다. 불안이 해소되면 성장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도시라, 평화를 추구했을 때 인천의 발전과 인천 사람들의 삶의 질도 높아진다"며 "진정한 평화는 분단의 유지가 아니라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했을 때이다. 인천이 특히 이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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