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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훌쩍 넘게 잘 타고 다녔던 '애마' 자동차를 팔았다. 나와 식구들을 군소리(잔고장)없이 대한민국 어디든 잘 태워다 준 차라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 이전을 할 땐 섭섭하기도 했다. 섭섭했던 마음은 수동 변속기인 애마 자동차를 팔려고 내놓았을 때도 느꼈다.

10여 년 전 지금의 자동차를 구입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 승용차 중에서 수동 변속기의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정도였는데, 어느새 수동 변속기 차량이 거의 '멸종'상태여서다. 다행히 차량 상태도 양호하고 소수의 '스틱 마니아(수동 변속기로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차는 내놓은 지 일주일 만에 무사히 팔렸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연비, 연비 하면서 자동변속기 차량만 선호하는 걸 보면 참 이상해요!"

경기도 광주에서 자동차를 사러 온 사람이 한 말이다. 수동변속기는 보다 박진감 있는 운전이 가능하면서도 연비, 수리비 등 유지비 측면에서 자동변속기보다 효율성이 훨씬 높다. 얼마 전부터 불거진 치명적인 위험의 급발진 사고 우려가 없는 등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자동차 시장의 대세는 자동변속기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현재 국산 차량의 99%가 자동변속기 차량이다. 중형 승용차는 100%가 자동변속기 장착이며 경·소형차도 대부분이 자동변속기다. 운전면허가 있음에도 수동변속기 차량을 몰지 못하는 운전자가 태반이다.

멸종 위기에 몰린 수동 변속기 차량

연비, 유지비 등 경제성이 뛰어난 수동 변속기 차량은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
 연비, 유지비 등 경제성이 뛰어난 수동 변속기 차량은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
ⓒ KBS 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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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치와 스틱(수동기어) 조작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빠르게 수동차량이 사라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는 신차 출시 때 수동 변속기 모델을 제외하는 추세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신형 쏘나타와 뉴 카니발을 내놓으면서 아예 수동 변속기 모델은 출시하지 않았다. 기아자동차의 대표 경차인 레이도 수동 변속기 모델이 아예 없다.

자동차 업계가 이런 현상을 주도하는 이유는 수익성이다.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서 돈이 되지 않는 차는 팔지 않고, 효율성을 내세워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모델은 만들지 않는다.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그럴 듯한 핑계 뒤에, 소수를 철저하게 무시하며 국내 소비자들을 쥐락펴락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오만함이 숨어있다.

수동기어를 고집한다면, 가죽시트는 물론 다수의 음반이 들어가는 CD플레이어나 DVD 내비게이션, 썬루프 등 고급사양은 아예 선택대상에서 제외되는 찬밥신세를 감수해야 한다. 수동차량 소비자들의 불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차량인도에 걸리는 시간도 훨씬 길어 많이 기다려야 한다. 또한 운전면허 취득단계에서부터 사람들이 간편한 자동변속기 면허를 선택하는 점 역시 수동변속기 차량의 감소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국내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동변속기를 단 승용차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유럽이나 중국에서는 아직도 60% 정도가 수동 차량이며 프랑스는 수동변속기의 비율이 81%를 웃돈다. 일본 역시 40% 정도가 수동변속기 차량이다.

유럽이나 중국의 교통 흐름이 우리보다 좋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유럽이든 어디든 도시의 교통 정체는 수동 차량 운전자의 팔다리를 힘들게 한다. 해외에서 수동변속기가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경제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격도 저렴할 뿐더러 연비도 높은 수동변속기가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편리성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자동차 제조사들이 외면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소비를 막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나와 같은 수동 변속기 차량 운전자를 보면 독특한 사람이나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회 현상이 다 생겨났다. 물론 몸이 불편한 분이나, 여성, 어르신들, 운전을 업으로 하는 기사 분들은 자동 변속기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한 젊은 층에서까지 '당연히 이걸 사는가보다' 하고 무조건 자동 변속기 차량 세태를 따라해야만 하는 걸까?

CO2 배출량도 줄이고, 운전하는 재미도 느끼고

불편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수동 운전.
 불편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수동 운전.
ⓒ KBS 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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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동이 자동보다 불편하다. 왼발로는 자주 클러치를 밟고 떼야 하고, 오른손으로는 기어 변속기를 휘젓느라 바쁘다. 그래서 차량 정체가 심한 출퇴근 시간엔 웬만하면 운전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내가 수동 변속기 차량을 선호하는 데는 여러 매력이 있어서다.

'반클러치'로 차와 엔진을 튕겨낼 때의 경쾌함, 기어를 집어넣고 바꿀 때마다 손에 익어 척척 들어맞는 기계적이고 다이내믹한 느낌, 2단에서 3단으로 변속한 후 가속 페달을 밟을 때의 본격적이고 기분 좋은 속도감, 한층 빠르고 강한 기분이 드는 엔진 브레이크 작동... 컴퓨터가 아닌 내가 차의 주인이 되어 착착 통제하고 움직이는, 자동차와 하나가 된 기분은 일단 알아버리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의 운전하는 맛이 있다.

자동차의 후륜을 고의로 지면으로부터 미끄러트리고 이를 유지하면서 주행해나가는 기술인 '드리프트 (Drift)' 같은 고급기술을 쓸 정도는 아니지만, 직성이 풀릴 때까지 가속하다 기어를 바꿔 넣고, 다시 신나게 튀어 달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수동변속기의 짜릿함은 클러치를 밟는 발끝에서, 변속 레버를 움켜쥔 손바닥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수동 기어와 클러치의 완벽한 조화와 작동을 이뤄내면 뿌듯함과 희열마저 느낀다.

그래서 어떤 이는 수동운전을 예술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당연히 운전 시 집중도가 높고 졸음운전을 막아준다는 장점도 있다.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급발진 우려로부터도 자유로운 건 물론이다. 그러다보니 주위를 둘러보면 나처럼 연비, 유지비, 운전의 재미 등으로 수동변속기 자동차를 사고 싶거나 계속 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이렇게 능수능란하고 다이내믹하게 차를 모는 남성도 멋있지만 여성이 수동 변속기 차를 탄다고 하면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수동 기어를 능숙하게 다루며 때론 거칠게 운전을 하는 여성을 옆자리에서 보면 남성 누구나 특별하고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수동기어를 쓰는 여성 운전자는 도시에선 거의 없지만, 제주도에 가면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스틱으로 운전을 하고 있어 독립적이고 생활력 강한 제주 여성들의 매력이 한층 돋보였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약 97%를 수입하면서도 1인당 에너지 소모증가율이 세계 최고수준이다. 수동변속기 차량의 보급율을 현재 4%에서 10%까지 올리면 국가 전체적으로 연간 석유소비의 절감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크게 감축할 수 있다고 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 가격과 안전까지 많은 장점이 있는 수동차량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이 존중돼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당국이 자동차 제조사에게 일정 비율로 수동 변속기 차량의 제작을 의무화하고, 또한 수동변속차량 구입 시 경차처럼 취등록세 면제, 자동차 보험료나 자동차세 등을 할인해주는 등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


태그:#수동 변속기 차량, #수동 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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