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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축제. 학생들이 만든 주점.
 숙명여대 축제. 학생들이 만든 주점.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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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지난해 숙명여대 축제 복장 규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총학생회가 밤 부스를 운영하는 학생들의 치마 길이를 자로 재고, 규정에 어긋날 시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이냐고 되묻자 그 친구는 작년에 주점을 운영하던 지인이 치마 길이 때문에 벌금을 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반감부터 들었다. 치마 길이를 잰다는 것도, 학생들끼리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 또한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9월 24일 숙명여대 축제 '청파제' 개막을 앞두고 복장 규정이 언론에 보도되고 난 후의 상황을 살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관련기사 : "가슴골·시스루 금지!"... 숙대 총학은 왜 이랬을까). 학생들은 의외로 축제 복장 규정에 대해 찬성하고 있었다.

복장 규정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좀 더 근본적인 논의를 해보고 싶었다. 이에 더해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숙명여대 여성주의 동아리 S.F.A.(Sookmyung Feminists Association)에 도움을 청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9월 26일, 창 너머로 공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동아리방에서 백가을(24·영어영문), 김희선(22·산업디자인), 김다은(23·가명), 이미향(23·한국어문학), 신나리(24·법학), 이진실(25·언론정보)씨와 축제 복장 규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축제 복장 규정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은 어땠는가.
백가을 : "'올 것이 왔구나'라는 느낌이었다. 2011년에 입학해서 처음 축제를 봤을 때 너무 충격이었다. 학교 축제라면 같은 과 사람들, 동아리 사람들, 교수님들 혹은 다른 학교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데려와서 노는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절대 아니었다. 피켓에 '부킹 100%'와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고, 학생들은 '홀복'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고 한 테이블에 한 명씩 앉아 있었다.

외부에서 온 남자 손님들을 자리에 앉혀놓고 접대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 충격을 받아 그냥 나와버렸다. 2011년에도 이러한 성상품화와 접대문화가 굉장히 심했다고 느꼈는데, 당시에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거에는 더 심했다고 하더라."

신나리 :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이들은 이런 (총학생회의 복장) 규제에 대한 반감이 컸다. 선배들 같은 경우에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런 규정이 나왔는지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다. 이 규정은 그간 숙명여대라는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자율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더 좋은 축제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 결과라고 본다.

한편으론 복장 규정이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규제되는 내용들을 일일이 열거해야 할 정도로 숙명여대의 공동체 담론 수준이 약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긍정적인 논의라 본다. 비록 그 결과가 미흡했지만, 이 부분(복장 규정)만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학교 구성원으로서 매우 아쉽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또 이것은 숙명여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사회에 전반적으로 만연한 문제라고 본다."

사회적 논란 된 복장 규정... "올 게 왔구나" 

9월 17일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는 '축제 의상 제재안'을 내놓았다. 제제안에는 가슴골이 보이는 옷과 시스루, 망사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9월 17일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는 '축제 의상 제재안'을 내놓았다. 제제안에는 가슴골이 보이는 옷과 시스루, 망사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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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이 이 사태를 다루는 방식은 어떠한가. 축제 복장 규정이나 대학 축제의 선정성 논란에 대해 다루는 기사들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나.
신나리 : "'여대생'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여대생이라는 특정한 개념이 있나? 여대생이라는 범주를 해체해야 한다. 사회는 어떤 특정한 규격을 정해놓고, (여성들이) 그 규격에 알아서 맞추길 원한다. '여대생이라면 응당 이러해야 해', '여자라면 응당 이러해야 해' 이런 것들이다.

언론에서는 축제 복장 규정에 대해 다루면서 '여대', '여대생'과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정작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언론에) 묻고 싶다. 대체 '여대생'이 무엇인지. (언론들이) '여대생은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숙대를 보니 아니더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백가을 : "우리 학교 학생들이 축제를 주체적으로 즐기기 어려웠던 것은 오래된 문제이다. 그동안 언론은 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규제가 만들어지고 나니 이것을 학생들의 주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복장 규정만을 보고 학생들의 주체성이 말살되었다느니, 사회가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다느니 욕하는 것은 쉽다.

또 '가슴골'과 같은 선정적인 단어들을 강조하며 성적 방종함을 부르짖는 것도 쉽다. 하지만 규정이 만들어진 배경과 이를 통해 학생들이 원했던 것, 공론이 빈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나는 이번 축제에 대한 기사와 인터넷상의 여론을 보며 사안의 단면만을 보고 입맛대로 평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 복장 규정에 관한 기사의 댓글창에는 '복장 규정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라는 학내 구성원들의 항변과 '대학생인데도 규제에 대해 반감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외부인들의 논쟁이 치열하다. 이런 시각차는 어디서 비롯되었다고 보는가.
백가을 : "기사 댓글을 보니 '옛날에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하던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사회가 얼마나 보수화되면 그 지경으로 다시 돌아가느냐'와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게 보수화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자기들조차 즐길 수 없는 축제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더 문제이다. 복장 규정은 학생들의 자정 노력이다. 방법이 아무리 서툴렀더라도 이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신나리 : "규제가 나쁜 것인가? 규제도 필요하다. 어떤 규제냐 세밀하게 들어가면 차이가 있겠지만, 규제가 필요해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규제가 구성원들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나쁜 규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과정에 대한 판단 없이 규제라는 것 자체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됐다."

백가을 : "지금 우려되는 것이 복장 규정이 나오게 된 배경을 모르는 후배들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시도들이 퇴행될까 걱정이다. 이전까지 축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봐야 한다. 그리고 왜 이런 것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으면 한다."

- 복장 규정을 찬성하는 근거가 '여자에게는 정숙함이 필요하다'거나 '그간 성상품화 문제가 너무 심했다'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백가을 : "다른 방식의 축제를 고민해야 한다. '주점 말고 뭐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주점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부 주점뿐이면 축제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경쟁이 과열된다.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축제이고, 술을 마셔야 하고, 주점을 운영해야 하며, 수익을 많이 남겨야 하는데, 여대 축제에는 남자들이 온다, 그러니 예쁘게 차려입고 호객행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복된다. 심지어 이렇게 번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합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관행적으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향 : "여성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눈을 통해 본다. 그런 것이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익숙한 것 같다. 나는 이(복장) 규정에 동의하는 것이, 우리가 타인에게 공격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아니다'라는 말이 정말 와닿는다. 우리가 즐기는 축제라면 남이 어떻게 보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남한테 보여주는 축제이니 '우리는 조심하자', '정숙한 여자로 보여야 하니 규제가 당연한 거야'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신나리 : "'여대생이라면 이래야 해'라고 사회가 기대하는 것을 숙명여대 학생들만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그렇다. 한국사회의 가부장제를 통해 그런 관념들이 학습되고 내면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장발단속과 같다? 학생들의 자정 노력"

숙명여대 축제. 학생들이 만든 주점.
 숙명여대 축제. 학생들이 만든 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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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 규정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 학내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찬성이든 반대든 적극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이런 복장은 규제가 되나요?'와 같은 정도의 논의가 전부였다.
백가을 : "(선정적인 복장을 입고 축제에 참여하면) 사람들이 '명문 숙명여대 학생이 어떻게 명예를 실추시키면서 그런 행동을 하느냐'와 같은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한다. '학교 이미지가 실추된다'며 정숙함을 강조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우리들이 상품화되는 것은 그대로다. 결국 우리가 '저렴하게' 보이느냐 '고급스럽게' 보이느냐의 차이다."

신나리 : "'여성주의 측면에서 복장 규정 논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왜 규제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왜 야하게 입는 것을 규제해야 하나? 그동안 치파오(중국의 전통 의상) 같은 복장들이 '이게 술집 여성이랑 뭐가 달라'라는 식으로 많이 문제제기 받았다.

그런데 술집 여성과 대학생을 비교하는 것은 곧 '타락한' 여성과 '정숙한' 여성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여성학적인 질문은 '그 범주가 과연 옳나?', '무엇이 과연 정숙한 여성이고 무엇이 타락한 여성이지?'라고 묻는 것이다. 학생들이 '우리가 여대생인데 이런 복장을 입어도 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는 상황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질문이 옳은가?

'왜 선정적으로 입으면 안 돼?'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성을 파는 여성들이랑 다르잖아'라고 답하는 것은 결국 '정숙한' 여성이든 '타락한' 여성이든 남성에 의해 통제되고, 섹슈얼리티를 어필해야 하는 종속적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들이다."

- 선배들은 오랜 기간 동안 축제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었는지 지켜보았다.
김다은 : "학과 학생회장을 했었다. 3학년이었던 2012년에 처음으로 전학대회(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참석했다. 그때가 축제 (복장) 문제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논의하고 규제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축제를 잘 즐기지 못하는 것은 바꾸어야 한다는 등 다양한 논의들이 오갔다. 외부인이 축제에 오는 문제나 그들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에 대해 논의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복장 규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비판이 나와 조금 안타깝다."

신나리 : "공모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주체가 되는 좋은 축제가 무엇인지 학생들의 생각을 모아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건강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이 건강한 현상을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축제는 오늘 끝나지만, 더 나은 축제를 위해 구성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 그러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주체는 누구라고 보는가.
신나리 : "총학생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회의적인 것은 축제가 끝난 이후 학생들이 얼마나 참여해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백가을 : "학과 학생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는 것은 학과 학생회이다. 학내 여론을 만드는 것도 학과 학생회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김다은 : "나도 학과 학생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학대회 분위기는 반반이다. 학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반, 아예 무관심한 사람 반이다.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의견으로 몰아가 투표가 진행되고 결과가 나온다. 지금은 학과 학생회나 학생들이 조금 더 주체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신나리 : "학생회장 후보들이 곧 있을 학기 말 선거 때 축제 문제에 대해 무언가 제안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투표하는 데 있어 한 가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축제가 우리 대학생활에 꼭 필요한 경험이라면 그런 식의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성매매 전단지에서 읽을 수 있는 '여대생'"

숙명여대 여성주의 동아리 S.F.A.
 숙명여대 여성주의 동아리 S.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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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 규정 논란은 여성주의, 법과 규제, 사회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의견차를 극복하려면 학내 구성원뿐만 아니라 외부인들과의 다양한 소통도 필요한 것 같다.
백가을 : "길에 뿌려진 성매매 알선 전단지나 스팸메일에서 우리는 심심찮게 여대생이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다. 한국에서 여대생이라는 존재는 사회적으로 강하게 성애화되어 있다. 심지어 여대생 당사자조차 그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또 여성성을 동원해 접대하는 문화, 즉 술자리에서 여성이 술시중을 들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 원치 않는 상황에서 술시중을 들어야 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공기와 같다. 우리는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며,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는 그 공기가 오염되어 있고, 해롭다는 것을 알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지 않으려 한다. 모두가 이러한 차별을 인식하고, 문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주의를 말하는 동아리인 만큼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다들 고민이 깊은 듯했다.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인터뷰 내내 질문지에 무언가를 적고 있던 이진실씨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첫마디가 '그 고민이 지금 굉장히 심오해서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축제 복장 규정 또한 근본적으로 여성들이 성상품화 되는 것을 막지 못한 채 수위만 조절하는 정도에 그친 것 같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하며, 궁극적으로는 "판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되짚은 기억이 "(축제에서) 야하게 입지 말라는 말이 마냥 고마웠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다.

"이 문제가 군대 문제랑 같은 것 같아요. 군대에 있을 때는 다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제대하면 다 까먹어요. 그리고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은 관심이 없죠."

이러한 고민들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 되길 바란다. '논란'을 이겨낼 더 많은 이들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숙명여대, #축제, #복장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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