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스틸컷 맨홀에서 가장 잘 만든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공간의 선정이라고 답하겠다. 공간 만큼은 선정이 훌륭했다.

▲ [맨홀] 스틸컷 맨홀에서 가장 잘 만든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공간의 선정이라고 답하겠다. 공간 만큼은 선정이 훌륭했다. ⓒ (주)화인웍스


매카니즘의 부재

'착한 살인마와 살아남은 아이들'이 영화 제목이 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영화로군요. 매우 차갑게 바라보자면 공포와 스릴러, 드라마 모두 놓친 경우입니다.

이상하리만큼 살인마의 행동을 절제했습니다. 범인을 향해 오목조목 대드는 학생에게 잔인한 형벌이 내려질 것이라 생각한 건 저 뿐인가요? 범인은 아주 착하게도 호통만 치고 맙니다. 그냥 으악 이라니. 정말 으악 했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에선 이야기가 빈약하면 몰입도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범인이 왜 미쳤는지 잠깐 보여주고 맙니다. 관객 입장에선, 어 그냥 아버지가 불 지르고 미친 거야? - 이게 다인 거죠. 빈약한 설명 덕택에 그냥 트라우마가 있겠거니 추정은 해보면서 영화를 계속 감상하지만 몰입하기에 너무 힘이 듭니다. 필자가 영화를 보다 보니 차라리 잔인하기라도 했으면 바라고 있습니다. 관객의 역전현상인가요. 게다가 살인마가 미치게 된 경위가 너무 간결하게 설명되었는데 착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심성이 고운 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살인마가 살려주는 인물이 한둘이 아닙니다. 물론 처음 납치 되었던 딸이나 영화 중반에 보이는 쌓여있는 수많은 시체들을 단순 수치화하여 생각한다면 엄청나지만, 이미 죽은 시체들의 살해 과정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그냥 굉장히 잔인한 살인마이겠거니 떠올리긴 하는데 공포로 가는 회로의 중간을 절단해버린 느낌입니다. 영화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해선 안되지만 관객을 그 영화 속 세계관에 몰입시키기 위해 충분한 이해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보다 보니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 같습니다. 설정이 이러하니 몰입해 달라, 혹은 설명되지 않는 것들은 관객의 상상력으로 보충해 달라 등.

영화를 보며 관객은 상상을 하지요. 허나, 그 전에 영화로부터 상상의 소스를 제공 받습니다. 그리고 상상에 몰입 되는 과정을 이룩하는 것은 철저히 감독의 몫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재영 감독은 상상의 방관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존 공포영화의 틀을 벗어나려 노력한 영화

제가 이따금 공포영화를 분류할 때 즐겨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소위 예비군 영화, 혹은 탕탕탕 영화라고 표현합니다만.

영화 속의 프레임이나 스토리텔링은 포기한 채 사운드로 관객을 놀래 공포를 이룩하려는 영화를 일컫습니다. 한참 예비군 다니던 시절에 예비군끼리 앉아서 수다 떨고 있으면 갑자기 등 뒤에서 탕탕탕 총 소리가 나면서 화들짝 놀랐던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한 방식입니다. 서프라이즈가 공포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놀람=공포라는 도식은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교집합에 속하긴 하지만 이 부분은 제가 나중에 차차 다루도록 하지요.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맨홀은 국내고 해외고 대세가 돼 버린 놀람=공포의 도식을 탈출하려고 노력한 영화입니다. 나름 드라마적 요소와 공포를 결합해 스릴러를 이룩할 뻔했죠. 허나 그것을 이룩하기엔 심리묘사나 배경설명이 부족하고, 순수 공포라고하기에는 너무나 스무우스한 범인이 걸립니다. 공포영화의 흔한 프레임을 탈출하려 시도는 했으나 그 덕택에 공포도, 스릴러도, 드라마도 되지는 못했습니다. 수학 못하는데 국∙영∙수∙사탐 모두 도전해서 전부 2등급도 못나온 학생 같습니다. 허나 감독이 공포의 배경을 이룩하려한 시도와 노력은 박수쳐주어야 합니다. 스토리라인조차 아예 배제하고 만드는 외국의 B급 공포물보다는 낫지요.

현대 영화에서는 더 이상 장르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도 있지요. 허나 관객들은 영화의 장르를 보고 관람을 결정합니다. 적어도 관객에게 만큼은 계속해서 의미가 남아있단 얘기지요. '공포영화'의 틀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는 아마 만족도가 높지 않았을 겁니다. 필자와 같은 고어 혹은 공포 마니아들에게는 심성이 스무우스한 범인이 어쩌면 속마음은 나보다 착할 수 있겠거니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혹여나 드라마를 기대하고 온 관객 역시 상상의 사슬이 중간에 끊어진 느낌이었거니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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