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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모른다. 그러니 좋아하는 시도 없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나 김소월의 <초혼>, 한용운의 <님의 침묵> 같은 유명 시들을 덩달아 좋아해 볼 요량으로 외워 보기는 했지만 혼을 담아 외지 않은 시가 피가 되고 살이 될 리 없다.

함민복의 시는 소금 맛이 난다

그러다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라는 글귀로 시작되는 안도현의 시를 만났다. 연탄재만도 못한 인생을 사는 인간들, 그들을 향한 시인의 따끔한 고언을 읽으면서 그 인간들 틈에 나도 끼어 있음을 시인해야 했다. 시 감상을 할 일 중 하나로 삼게 된 계기다. 그러나 여전히 독서는 소설이나 교양서 위주로 한정되어 있다. 읽으려고 사둔 시집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은 왜 짠가> 표지
 <눈물은 왜 짠가> 표지
ⓒ 책이있는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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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 전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함민복 시인의 신작을 소개받았다. 바로 <눈물은 왜 짠가>다. 그가 강화도 주민이 되어 섬사람들과 어울린 사연, 어머니와의 가슴 시린 추억, 시 이야기 등이 그만의 언어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새삼 시라는 것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행되야만 쓸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삶은 인간뿐만 아니라 한낱 미물로 여겨지는 모든 생명의 것까지도 포함된다. 깊은 성찰과 절절한 경험이 재료가 된 그의 글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옳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다.

"왕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利)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만을 생각한다면 대부(大夫)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만을 생각할 것이고, 또 선비나 일반 평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한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만을 고민할 것입니다. 이처럼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 서로 이만을 취하게 된다면,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p. 267)

눈물을 흘리는 진짜 이유

청문회에서 고위 공직자들이 위장전입에 대해 맹모삼천지교의 심정을 들먹이는 것에 대해 맹모에 대한 모욕이라며 그가 인용한 맹자의 글이다. 이런 사상을 가진 맹자가 제 자식만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모친의 자식일 리 없다는 추론이다.

산문집을 읽다 보면 강화도에 와서 여름을 나고 간다는 멸종위기의 저어새 이야기,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 이야기 등 저자의 따뜻한 시선도 만날 수 있다. 

"집이 있어야 장가를 가죠."
"얘, 저 까치들 좀 봐라. 저렇게 둘이 같이 집을 짓고 있지 않냐. 너처럼 고생하며 산 여자 하나 만나면 되지."
"그럼, 나 까치하고 같이 살면 안 될까?" (p.40)

이 대화의 주인공은 시인과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얼굴에 검버섯이 피도록 늙으시도록 한 몸 쉴 집이 없었다. 경로당 방 한편으로 이사한 어머니. 홀로 계신 어머니의 머리 맡에서 발견한 책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이었다. 

'나란 놈은 대체 뭘 하고 사는 놈일까. 못난, 못난, 이 못난, 개 같은...'

시인의 말을 읽고 난 눈시울을 적셨다. 눈물은 왜 짠가? 그가 답을 준다.

"달의 힘이 수평으로 끌어 준 물을 태양이 수직의 힘으로 건조시켜 줄 때 탄생하는 소금이 그 결정체다. 수직과 수평의 조화로움으로 탄생한 소금은, 수직 성향의 철이나 시멘트와 달라 물에 쉽게 녹으며, 바로 부드러움이 되고 수평이 된다." (p.262)

그 부드러움과 수평을 잃게 되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 감정과 이성이 양심이라는 천칭 위에서 흔들릴 때 나오는 눈물은 소금을 닮았다. 소금 같은 사람 함민복의 시, <자본주의의 약속>부터 감상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 2014.02.19 / 책이있는풍경 / 1만 5천 원



눈물은 왜 짠가 - 개정증보판

함민복 지음, 책이있는풍경(2014)


태그:#눈물, #소금 ,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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