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 정진우 감독

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 정진우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


학교 선배인 배우 최무룡의 권유로 1957년 제작부 일을 시작한 것이 영화인생의 시작이었다. 1962년 파릇파릇한 23세의 나이에 첫 영화 <외아들>을 찍으며 감독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첫 작품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시나리오가 당시 일본 작품을 베낀 것으로 드러나 안 하겠다고 버텼고 결국 시나리오를 다시 써 데뷔할 수 있었다.

이후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51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제작자로 나선 영화까지 치면 100편. 60년대 분단 혹은 계급의 장벽을 소재로 삼은 사회파 멜로드라마로 두각을 나타냈고,  70년대 다양한 소재의 영화로 영역을 넓혀갔으며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엔 위기의 삶에 내몰린 여성을 그린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웬만한 상은 다 휩쓸 만큼 70~80년대 한국영화는 그의 시대였다고 해도 빈말이 아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은 정진우 감독이다. 부산영화제의 한국영화회고전은 한국영화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정리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은 프로그램이다. 이번 19회 영화제에서는 70년대 한국영화의 절대적 존재였던 정진우 감독의 영화 세계가 새롭게 조명 받는다. 

정진우 감독의 회고전이 주목받는 것은 한국영화의 작가주의 감독으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국영화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보수원로 영화계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점도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부분이다. 올해 회고전이 이른바 영화계 신구갈등으로 불리는 진보적인 젊은 영화인들과 보수적인 원로 영화인들 간에 화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진즉에 평가받았어야 했는데 늦은 감 있는 회고전"

사실 한국영화에서 정진우 감독의 비중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회고전이다. 차승재 전 제작가협회 대표는 "한국영화에서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훌륭하다는 데 이의가 없다. 진즉에 평가받았어야 하는 분인데, 늦은 감이 있다"며 "현장에 남아 있는 다른 원로감독님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부분이 있다"며 말했다.

서울영상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김정진 감독도 "1970년대 한국영화의 전부와 같았던 분"이라며 "한국영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많이 벌써 했어야 한 회고전이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젊은 시절 정진우 감독과 60~70년대 인기스타 배우 문희

젊은 시절 정진우 감독과 60~70년대 인기스타 배우 문희 ⓒ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이번 회고전에 나오는 영화는 모두 8편이다. <국경 아닌 국경선>(1964), <초우>(1966), <하숙생>(1966), <하얀 까마귀>(1967), <석화촌>(1972), <가시를 삼킨 장미>(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자녀목>(1984) 등이다. 작가주의 감독 정진우를 발견할 수 있는 대표 작품들로 구성됐다. 일부 작품은 원본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해외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한국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올해 정진우 감독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단연 발견!'이라 생각한 작품 <국경 아닌 국경선>이다"라며 "국내에는 프린트가 없어 대만 아카이브에서 발굴했고, 중국어 더빙 버전만 있어서 한글자막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60년대 정진우 감독의 연출력이 얼마나 놀라운 수준인지 보여 준다"고 덧붙였다.

<국경 아닌 국경선>은 독립운동 하던 부모가 쌍둥이 아들을 한명씩 데리고 남한과 북한으로 헤어진 뒤. 북한에서 온 아들이 아버지를 암살하고 남한의 아들이 북한에서 온 어머니를 만나 가족의 비극을 깨닫게 만드는 액션멜로 영화다.  최무룡이 쌍둥이 아들로 1인2역, 김지미가 두 아들 모두의 연인, 고 황정순이 북한의 어머니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숨은 걸작으로 손꼽히는 <하숙생>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이 우디네영화제에 소개하면서 영문 자막을 만들었고 이번에 부산영화제를 위해서도 제공했다. 남 프로그래머는 "화상을 입고 애인인 김지미에게 버림받은 신성일, 3년 만에 다시 나타나 옛 애인에게 정신적 복수를 감행한다. '인생은 나그네 길~' 반복되는 최희준의 노래가 김지미를 미치게 만든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1980년대 제작한 대표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는 정비석의 소설 <성황당>을 원작으로 향토적인 분위기를 담아냈지만 탐욕의 권력에 짓밟히는 힘없는 산골짜기 부부의 아픔을 담았다. 올해 부산영화제 자막팀은 '소박한 그들만의 세상에 닥쳐온 탐욕적인 현실. 속절없이 스러져 가는 부부의 행복'이라는 촌평으로 관객들에게 추천했다. 

<자녀목>은 씨받이를 소재로 한 영화로 1985년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이다. 2년 뒤인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자녀목>이 미리 길을 열어 놨었기에 수상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원칙적 시선 견지하는 보수 영화인, "<다이빙벨> 표현의 자유 보장돼야"

 지난 9월 16일 열인 한국영화시장 독과점  현황과 개선 토론회에 참석한 정진우 감독과 후배 영화인들

지난 9월 16일 열인 한국영화시장 독과점 현황과 개선 토론회에 참석한 정진우 감독과 후배 영화인들 ⓒ 안영수


정진우 감독은 대표적 보수영화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영화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감독으로 꼽힌다.

2010년 당시 조희문 영진위원장이 각종 공모사업과 지원 사업 심사 등에 부당하게 개입해 불공정 심사논란이 있었을 때 그는 보수영화인 중 유일하게 조희문 영진위원장을 강하게 비판하며 파면을 주장해 주목받았다.

또한 대종상과 춘사영화상 등이 각종 비리의혹이 제기되며 얼룩진 상황에서, 올해 한국영화감독협회장으로 춘사영화상을 직접 주관하며 공정한 운영으로 모든 잡음을 사라지게 했다. 영화계의 보수 진영 인사 중 비리 문제에 대해 가장 엄격하게 대처하는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대기업의 수직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끊임없이 비판하는 등 보수원로 영화인들 중에서는 당면한 현안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영화인이다. 영화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 편인 그는 영화 제작자나 감독, 촬영현장 스태프들만 영화인으로 인정할 정도다.

정 감독은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상영과 관련해 논란이 이는 것에 대해 "창작과 표현, 상영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든 사람들이 편집을 자신들의 주장에 맞게 했을 수도 있으나 일단은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상영 반대를 외치는 사람 중에 영화인들은 없지 않냐"고 말했다.

이는 정 감독 역시 예전에 검열과 가위질에 수난을 당해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회고전을 앞두고 지난 24일 신사동 그의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 "지금껏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왔지만 온전한 감독판 버전이 남아 있지 않다"며 자신을 "비운의 감독"이라고 말했다.

1967년 만들어진 <폭로>의 경우 자유당 시절 정치 깡패를 소재로 했던 영화였으나 2시간 3분 분량 중 30분이 잘려나가며 1시간 33분으로 개봉해야 했다. 감독으로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일 만큼 큰 아픔이었으나 흥행이 잘 돼서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뻐꾸기 밤에 우는가>도 핵심 장면이 삭제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고, <백구야 훨훨 날아> 등도 가위질을 피하지 못했다. 해외로 팔린 필름의 경우 그나마 온전한 경우였으나 당시 해외로 나간 지 1년이 넘을 경우 수입품으로 간주돼 8배의 관세가 물려져 돈이 없어 찾아오지 못했다. 그는 "당시 세관 직원이 연락해서는 '안 찾아가면 소각하겠다'고 오라고 한 후 자신이 보는 앞에서 필름을 불태워버렸다"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수교 전 비밀리에 소련 오가며 사회주의 영화 수입

 정진우 감독이 88년 수입해 94년 상영허가를 받은 구 소련 영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전함 포템킨>

정진우 감독이 88년 수입해 94년 상영허가를 받은 구 소련 영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전함 포템킨> ⓒ 우진필름


정진우 감독의 이력 중에는 특별한 부분이 하나 있다. 사회주의 혁명 영화로 몽타쥬 기법 유명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과 <10월>, <파업> 등 과거 소련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국내에 수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숨겨진 비화가 하나 있다. 그는 한국과 소련이 공식 수교하기 전부터 은밀하게  소련을 드나들었던 영화인이었다. 정 감독에 따르면 80년대 칸 영화제를 오가며 소련 측 인사들과 친해졌는데, 그중에는 소련 정보기관 관계자도 있었다. 이 인연으로 1988년부터 소련을 왕래하게 된 것이다.

소련 방문은 도쿄에 있는 소련 정보기관 KGB(국가보안위원회) 아시아 책임자의 도움을 주로 받았다. 그가 아시아 책임자에게 연락한 후 파리의 소련대사관으로 가면 거기서 여권대신 소련으로 입국할 수 있는 여행증명서를 발급받는 방식이었다. 정 감독은 "당시 몰래 다닌 게 틀통났으면 감옥 갈 수도 있었는데, 여권이 깨끗해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소련 측과 접촉해 온 그는 1988년 소련영화수출입공사와 직접 계약해 9편의 영화를 직수입했다. 한국과 소련의 정식수교가 1990년 9월 30일 체결됐는데, 영화 수입은 그가 소련 영화계 인사들과 유대관계를 맺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함 포템킨>의 상영은 1991년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에서 불가 판정이 났으나, 이후 1994년 상영 허가가 나서 동숭아트홀에서 상영이 이뤄졌다. 이 필름은 지금도 정 감독이 모두 보관하고 있다. 정 감독은 1993년 한국영화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수상한 것도 "소련의 지인들이 나를 배려하는 의미로 한국영화를 수상작으로 선정한 면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영화 상업성만 치중, 예술가적 작가정신 부족'

 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회회고전 영원한 영화인 정진우 감독

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회회고전 영원한 영화인 정진우 감독 ⓒ 한국영화감독협회


정진우 감독은 최근의 한국영화에 대해 "감독들이 영화를 너무 기계적으로 만든다. 작가 정신없이 상업적인 면에 치중한다"며 "예술가로서의 실험정신과 개척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화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또한 회고전을 계기로 "영화계 선배로서 앞으로 후배 감독들에 대한 지원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밝혔다. 가능성 있는 미래 작가주의 감독들을 돕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인 민병록 동국대 교수는 정진우 감독의 작품세계에 대해 "일반적으로 시나리오에 의존하지만 자연환경 등 현장에서의 환경을 감안한 연출을 변경으로 매너리즘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70~80년대 장르나 관습에서 벗어나 실험성 강한 작품 많이 만들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서 "연출력이나 이미지에서 한국영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시녹음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CG 기술이 발달하기 전 미니어처를 처음 사용하는 등 한국영화의 기술혁신에도 상당히 이바지했다는 정진우 감독 회고전의 비중은 예전과는 무게감이 달라 보인다.

회고전 작품들은 10월 3일부터 영화의 전당 소극장에서 집중 상영되며, 당일 저녁에는 국내 영화계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한국영화회고전의 밤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정 감독과 오랜 기간 작업했던 미국에 거주하는 원로배우 김지미 선생도 올해 부산영화제를 방문한다.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회회고전 정진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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