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영화 <그녀>를 봤다. 그런 영화를 혼자서 보다니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인간인 이후 오늘을 사는 인간처럼 외로워지기는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학교에 다녀도 회사에 다녀도 집에 있어도 주변엔 사람들이 넘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은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가 집에 있어도 학교에 있어도 직장에 있어도 늘 다른 곳을 향해 부유하는 의식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포스터

<그녀>포스터 ⓒ (주)더쿱


외로운 남자가 있다. 예민하고 섬세하다. 자신의 존재감을 무력화시키는 아내와 이혼을 생각하고 실천할 정도니까 자존감도 강한 남자다. 그의 직업은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이다. 편지의 화자는 남자일수도 여자일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을 논하는 과정에서 남자는 자신의 처지를 초라하게 여길 때도 있다. 혼자서 직장과 집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일 말고는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한 장면

<그녀>의 한 장면 ⓒ (주)더쿱


혼자다 보니 몸이 문제다. 음악이나 영상으로 의식의 만족은 꾀할 수 있으나 신체적 만족은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완성되기 때문이다. 시인 함민복이 <눈물은 왜 짠가>에 소개한 글을 읽다가 의식과 신체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그런데 신체란, 일찍이 메를로 퐁티가 갈파했듯이 자명한 일이지만, 나한테만 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닌 외계와도 이어져 있는 양의적(兩義的)인 것이다. 인간은 신체적 존재임으로 하여 세계 내적 존재일 수가 있다. 그런 뜻에서 엄밀하게는 내 손, 내 눈이라는 말씨는 잘못된 것이며, 편의상의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신체는 외부와 내부를 매개하며, 인간을 보다 넓게 열린 것에 눈뜨게 해준다. 의식과 신체는 상호 협동하는 일은 있어도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식보다 훨씬 큰 세계와 걸려 있는 것이 신체이다. 신체는 외계의 일부이기도 하다.'-<여백의 예술>(이우환, 현대문학)중에서-

남자는 운영체제(Operating System)와 사랑에 빠진다. 소프트웨어가 진화한 것이다. 간단한 대화뿐 아니라 내밀하고 농밀한 인간의 욕망까지도 파악이 가능해진 OS는 남자에게 그저 대화상대가 아닌 인격체로 다가간다. 남자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던 아내의 힐난에 대꾸한다. '그녀는 의식을 가진 인격체'라고.

 <그녀>의 한 장면

<그녀>의 한 장면 ⓒ (주)더쿱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하는 우려 때문이라기보다 세상이 실제로 영화처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식을 가진 OS는 몸을 가질 수 없는 핸디캡을 극복할 엽기적인 방안도 소개하고 있다.

영화 속 남자는 OS와의 사랑을 완벽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속마음까지 잘 알아주고 모르는 게 없으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는 그녀(OS)가 그저 컴퓨터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녀가 수만 명의 남자와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그 중 수백 명과는 자신과 하던 것처럼 은밀하고 격정적인 섹스도 나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자 의식 속 유일무이했던 그녀와의 사랑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의식과 이우환에 따르면 우리를 세계와 맺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신체에게 좀 더 가치로운 삶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교훈을 남긴 채, 우리의 정체를 결정짓는 의식과 신체가 한낱 컴퓨터프로그램의 농락에 희롱 당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 채 말이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자면, 어쩌면 그녀(OS)는 우리가 만나고 있는 파트너를 은유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그녀, her> 스파이크존스 감독, 2014년 5월 개봉
테오도르 사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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