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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서 계속)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진보정치 3차 집담회에 참석한 김병조(현대중공업, 정의당), 김기봉(현대자동차, 통합진보당), 서대환(현대중공업, 새정치연합), 김성민(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당)씨.
▲ 울산 4개 정당 노동자 집담회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진보정치 3차 집담회에 참석한 김병조(현대중공업, 정의당), 김기봉(현대자동차, 통합진보당), 서대환(현대중공업, 새정치연합), 김성민(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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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틀에서 보면 노동자의 요구를 실현해 줄 단일정당을 원하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민주당 문제도 있지만 진보정당 재편에서는 통합진보당의 대북관 문제로 늘 갈등을 빚어왔다.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김기봉(47·진보당 당원) : "사실 종북 문제가 핵심이다. 다른 분들에게 좀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종북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말 우리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나?"

김성민(43·노동당 당원) : "사실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오고 있지 않나. (진보당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김일성 수령 사진 걸어놓고 충성맹세 한다고... 현장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다."

김기봉 : "내가 현장에서 1년 정도 교육을 했었는데, 현장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 생각은 이런 거다. 북한체제를 '좋아하는 것'과 이른바 3대 세습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것', 또 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다른 이야기다. 통일을 원한다고 하면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거냐?', 북한체제를 인정하자고 하면 '3대 세습을 인정하는 거냐?' 이렇게 묻는다. 좋아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른 것 아닌가?

(1945년에) 해방되고 친일파들이 정권을 다 잡았다. 친일파들이 자기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가장 많이 써먹는 게 뭐였나? 반공 빨갱이 사냥이었다. 종북몰이가 바로 그거다. 그런데 그것을 진보 쪽에서 운동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이용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자유주의를 숭상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특정 생각은 배제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사상의 자유라는 게 배제할 사상이 따로 있다는 건가? 이야기 안 할 권리도 있다. 그럼 이야기 안 하면 좋아하는 거냐? 아니거든. 우리가 북한체제에 대해서 비판 안 하는 것은 그 체제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6·15공동선언에 적시한 '상호체제에 대해 인정하자'는 합의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김성민 : "현장에서는 '김일성 수령 사진 걸어놓고 충성맹세 한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 '안 한다던데?'하면 '지들은 말은 그렇게 하지 실제로는 그렇게 한다더라'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통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운동사에 중요한 한 획을 긋는 운동이었고. 다만 이게 노동운동하고 섞이면서 암적인 존재가 된 거 아닌가? 통일사업비는 쌓여있는데 비정규직 싸움에는 사업비를 편성해주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이 현장에선 그렇게 나타나는 거다."

김기봉 : "사업비 이야기는 내가 잘 모르겠는데, 우리가 통일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예산 중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게 국방비다. 민중들이 행복해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럼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국방비를 줄일 수 있는 게 뭘까? 그게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이 이 땅의 민중들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거다. 통일을 하자는 것이 앞에 뭐 놓고 인사하고 기도하고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다."

김병조(51·정의당 울산 북구위원장) : "종북이 문제라는 것은, 할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안 한다는 것 때문이다. 이번에(2013년 초- 기자 말) 북한하고 전면전까지 갈 뻔 했는데, 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은 전면전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파 사람들 모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공개가 된 거고... 농담으로 할 수도 있다. 우리도 현장 사람들이 모이면 거친 말도 막 한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얘기가 녹취돼서 밖으로 나갔다 하면 대단히 큰 문제가 생기는 거다.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한 게 들통이 났는데도 그걸 반성 안 하고... 이런 것이 문제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아, 여기도 안 되는구나'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 분들이 정말 빨갱이 활동을 했다, 안 했다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리고 세습은 나쁜 거다. '현대'가 하는 거 세습이지 않나? 할아버지, 아버지, 자기까지 다 해먹으려고 하는 거.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든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안 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면 종북 아니냐'고 하는 거지. 우리끼리는 그런 거고, 일반 사람들은 빨갱이다 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북한에 퍼주기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8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 음모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는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의원에게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지난 8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 음모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는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의원에게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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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
: "제가 앞서 말씀드렸지 않나. 그 체제를 좋아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니까?" 

서대환(57·새정치연합 당원) : "전에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만들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잘 안 됐지. 그런데 토론회 가서 새누리당이 '왜 애국가 안 부릅니까' 물으면 멈칫멈칫 해. 내가 답답해서 물어보면 '그거 꼭 불러야 합니까?'라고 해. 그거 부르기 싫으면 정치하지 말아야지. 세습체제 문제 있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서로 체제를 인정하기로 했으면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럼 애국가 부르라고 하면 부르면 되잖아? 안 부르면 명쾌한 답이 있어야 해. '애국가는 안익태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잘못됐다. 친일파다. 그래서 못 부른다'라고 정확히 딱 말하고. 이번 이석기의원 사건도 '나는 이러이러해서 했다, 만일 북한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면 내가 총들고 북한하고 싸울게'라고 했어야 하는데 명쾌하지가 않아. 대중들은 통합진보당이 명쾌하지 않으니까 이 사람들 종북주의라고 보는 거다."

- 너무 몰아치시는 것 같다.(웃음) 사실관계를 하나 말씀드리면, 통합진보당이 국가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은 경우는 없다.
서대환 : "그래? 그럼 왜 자신 있게 말을 못하나?"

김성민 : "종북은 블랙홀이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도 노동당이 큰 피해를 봤다. 민주노동당인 줄 알고. 의문이 드는 게, '왜 이 사람들이 계속 변명하고 설명하려고 하나' 하는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전달하는 내용이 간단명료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아, 됐어 됐어. 종북!' 이렇게 돼버리는 거다. 정리하면 되는데, 안 한다. 그러니까 '뭔가 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김기봉 : "나도 사실 북한 사상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정한다. 그런데 진보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어떤 사상을 배제하는 것은 도대체 인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왜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에 대해서는 비판을 안 하는지, 일본의 자민당 50년 독재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도 안 하는지. 사우디도 세습체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사우디와) 외교를 할 수 있나? 그 땅에 사는 민중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잣대로 아니라고 해서 '넌 무조건 나쁜거야'라고 접근하면 안 된다."

서대환 : "그럼 그것을 대중들이 편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해야지. 꼭 언론이 막아서 그런 건 아니지 않나? 대중들이 느끼지 못한다."

김기봉 : "내가 이 정도까지 이야기해도 '저것도 종북이야'라고 한다니까?" 

서대환 : "그럼 좀 참는 수밖에 없다."

김성민 : "김기봉씨가 이야기한 것은 절대 종북이 아니다. 합리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다. 단지 우리가 자꾸 의심하는 이유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핵문제, 기아문제, 무력적인 충돌 등 갈등을 유발할 때 시원하게 논평같은 걸 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다 잘하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의문을 가지고 있고, 수수께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의문을 새누리당이 이용하는 거다."

서대환 : "정치조직이 아니고, 그냥 사회조직이라면 문제가 없다. 정치조직이 그걸 명쾌하게 하지 않으니까 의심이 계속 도는 거지. 지금 (김기봉씨가) 이야기한 것은 100% 인정한다. 김일성 주체사상도 괜찮은 부분은 인정할 수 있는 거잖아?"

- 지금 말씀도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웃음)
김기봉 : "내가 울산 진보당에서 핵심적인 활동을 하는 분에게 물어봤다. '정말 북한 3대 세습에 동의하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어떤 체제에 대해 좋다, 나쁘다 나누는 기준이 뭡니까?'라고. 이 정도다. 일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진 걸어놓고 숭배하는 그런 건 안 한다."

서대환 : "그런 거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없지."

김기봉 : "그런데 와전되어서 '쟤네들은 종교집단' 이런 식으로 보고... 해방되고 나서 50년 동안 기득권이 가장 많이 이용해 먹은 게 빨갱이다. 정부하고 보수세력이 주도적으로 빨갱이 이야기할 때는 '또 정부가 위기를 탈출하려는 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진보 쪽에서 이것을 더 이용한다. 글 쓰는 사람들도 심하게 이용하는 것 같고, 이석기 의원 구속될 때(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때)도 최소한 정의당 의원 정도라면 아무리 감정이 안 좋아도 반대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찬성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정당에 검찰이 투입된 것도 사실 모두의 문제인데, 다른 진보정당이나 진보운동 하는 분들이 나서지 않았다. 진보 쪽 사람들이 자기가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이런 문제를 이용한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병조 : "그걸 일부러 확대생산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노동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모두 종북 프레임의 피해자다."

김성민 : "그걸 말할수록 우리 모두 손해다."

김병조 : "같이 무너지는 거다."

김성민 : "맞다. 그런데 설명되지 않는 게 여전히 남아 있다. 이석기 의원의 경우 갑자기 뚝 떨어졌지 않나? 

진보정당, 내부 민주주의는 작동하는가?

4시간 가까이 걸린 집담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특별한 진행이 필요없을 정도로 솔직한 이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왼쪽부터 서대환, 김성민, 김병조, 김기봉씨.
▲ 집담회를 마치고 4시간 가까이 걸린 집담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특별한 진행이 필요없을 정도로 솔직한 이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왼쪽부터 서대환, 김성민, 김병조, 김기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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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
: "갑자기 당원이 되어서 비례대표 되고, 한 번도 당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서대환 : "이석기가 그런 사람은 아닌데? 갑자기 된 건 아닌데. 그 정도 이름이면 민주당 쪽에도 (국회의원 된 사람이) 많이 있었다. 이석기 그 사람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서 노무현 때 사면시켜주고 그랬잖아?"

김병조 : "갑자기 당원이 됐다. 당 안에서는 (인지도가) 미미했다."

김기봉 : "당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 같다. '저 사람은 하등 당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2번을 받은 건가'하는 것 아닌가? 당 안에 정파가 있다는 것은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 때만 해도 민주노총의 토대 위에 통합진보당이 있었다. 민주노총 안에는 진보당 정파가 다 있다. 선거를 하면, 정파가 있기 때문에 특정 정파의 표가 당연히 많이 나온다. 당원 민주주의가 그래서 잘 안 되는 거다. 평상시 당 활동을 많이 안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2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대중조직을 토대로 하는 진보정당의 특징이다. 정파가 움직이니까."

김병조 : "조직된 표였다는 건가?"

김기봉 : "그렇다.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게 당원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이게 참 불균형적인 면이 있다. 당원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대중조직 위에 (당이) 서 있으면 안 된다. 진보정당은 당원 민주주의와 대중조직의 토대 사이에서 황금분할을 찾아야 한다. 당원 민주주의의 시각에서 어떻게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표를 얻어 가냐고 이상하게 보는 것은 현실을 잘 모르는 지적이다."

김병조 : "민주노동당이 분열되었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현장당원들이 절대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몸도 대주고 돈도 대주고 그 다음에 권력도 같이 공유할 수 있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몸 대주고 돈 대줘도 권력은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그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현장에서 새로운 인물을 받아서, 그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감동의 정치는 없다. 지역에서 올라와야 상품성이 있는지, 유권자들 표를 받아서 당선시킬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데, (정파 사람들 중심으로 뽑히니까) 현장사람은 올라갈 수가 없다."  

노동운동, "실리만 앞세우고 정치 사업 못했다"

- 계속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밤을 샐 것 같다.(웃음) 진보정치의 현실에 대해 신랄하게 평가를 했는데, 일각에서는 진보정치만이 아니라 노동운동도 문제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라는 기득권을 가지고 제도화, 관료화, 귀족화되었다는 비판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노동운동의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김성민 : "최근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이 났다. 이제까지 현대차 정규직들한테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의 문제라고 이야기해 왔다. 그렇지만 사실 비정규직 당사자만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규직 동지들이 비정규직 1천만의 현실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 아닌가? 자기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려고 했던 거다. 이제까지 기득권층 정규직 동지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없어져야 한다. 비정규직들을 새로운 운동세력들로 만들어 줘야하고."

김기봉 : "나는 실리가 문제였다고 본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리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실리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비정규직 연대, 통일문제, 정치문제를 가지고 현장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첫째도 실리, 둘째도 실리, 셋째도 실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실리적으로 주장한다고 많이 얻었냐면, 그것도 아니다. 많이 챙긴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없다. 대신 정신이 피폐해 졌다.

1998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어떤 의제가 옳은 거냐 그른 거냐 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토론도 했었는데, 지금은 옳은 거냐 그른 거냐 이전에 나에게 이익이냐 손해냐, 이런 관점으로 논의되고 있다. 강성활동가들도 현장에서 정치, 연대, 통일의제를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강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실리운동을 한다. 실리적인 운동이 전면화 된 게 노동운동의 위기다."

김병조 : "나도 지금 노조간부 일을 하고 있지만 자본과 대립하는 노동활동가로서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 힘에 부친다. 서대환 동지의 경우 장기적인 해고와 개인적인 탄압 심했었고, 나도 해고자 생활 두 번에 회사 회유로 부서를 옮기기도 했다. 자기 가정 희생하면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사상 성숙, 정치적인 성숙을 회사안 활동가들에게만 맡기기에는 힘에 부친다. 그래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노동 활동가로는 3등급 정도 역량이 되는데 바깥으로 나가니까 1등급 역량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노동 활동가들이 (현장을 나와서) 지역에 퍼져 나갔으면 새마을, 바르게살기 모두 접수했을 텐데 너무 우물안 개구리처럼 안일하게 지냈고, (사측의) 탄압은 너무 심했다. 스스로 자포자기 했다. 노동조합 활동이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고 있다. 6만6천 노동자 중에 정규직 2만 6천, 비정규직 4만이다. 비정규직 조직화하는데 막막하다. 이런 상황에서 첫 단추로 실리를 선택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들이 유지되면서 남들이 보기에 귀족노동자라고 규정되고.

현대중공업노조 간부들이 평균 50세고 젊다는 사람들이 40대 중반이다. 집행부 만드는데 사람들이 오지를 않는다. 노땅들이 아직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원청에서 제대로 못해서 더 나락으로 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것을 목격하고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그래서 노조 활동했던 사람들이 정치에 회의를 느낄 것이 아니라 직접 지역에 가서 꾸준히 활동을 해야 한다. 현장의 사람들이 자기발언권을 가지고 노동자 정치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지역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서대환 : "1987년 민주화 이후 90년대 들어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게 시작되고 나서 노동조합이 활성화된 것이 아니라 침체되어 버렸다. 노동조합에 대한 제대로 된 이론이나 이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론들이 잘못 들어왔다. 새누리당 신지호 같은 사람은 나랑 같이 토론했던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에게 받았던 학습들이 정파주의, 분파주의, 이념주의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놨다. 노동조합이 그런 구렁텅이에 빠지다 보니까 이제 뭘 해야 할지 초점을 잃어버린 거다. 자기정치세력화만 얘기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실리밖에 보지 않게 되어버렸다.

제일 무서움을 느끼는 게, 사실 우리 말고는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정치해야한다고 하는데 나는 노동자들이 정치하는 거 엄청 반대한다. 쉽게 말하면 개뿔도 모른다. 자기 먹고 사는 게 중요한 사람이 언제 정치하나? 그럼 딴 사람들이 해줘야 하는데 진보당, 노동당 이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엄청나게 강하다. 이것을 어떻게 통합하고 조합할 것인가? 명쾌한 답이 없다. 난 제대로 공부를 안 했다. 역사공부, 세상사는 공부, 철학도 배웠어야 했는데, 맨날 투쟁 투쟁 싸우는 거 밖에 안 했다. 감옥가고 해고생활하고 세월만 보냈다. 그래서 정치세력화하자고 노선을 튼 건데... 앞으로는 노동조합이 정치적으로 역사, 철학 이런 걸 공부해야 한다. 이념 공부만 하지 말고."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신랄했다. 그러나 '정당 당원'과 '현장 활동가'라는 수식어를 함께 달고 있는 그들도 다른 노동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을 것이다.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에 대한 그들의 신랄한 비판은 다른 누군가가 그들에게 해준 말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쏟아 낸 말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기도 했다.

4시간 가까운 집담회의 내용을 지면상 모두 옮기지는 못했지만, 진행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나왔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기보다 그동안 너무나도 목말랐던 '소통의 욕구'였다. 아직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 아직 들을 말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함께 나눌 대상이 '아직' 있다는 것이 이들의 비판 속에 숨겨진 희망의 근거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이 집담회는 민주노총, 박정환, 강종구, 정용일, 이상범, 김은희, 박래훈, 강시원, 안영선, 오은혜, 정규식, 김보연, 윤지선, 이승철, 홍기웅, 홍명근님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속기·정리: 정경윤, 장소후원: 울산 동구 협동조합식당 "라온누리"



태그:#진보정치, #노동운동,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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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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