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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현장 어디서나 자주 보는 얼굴이 있다.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안경을 쓴 사내. 쇳소리 섞인 음성으로 힘차게 팔뚝질을 하며 노래하는 사람, 음향기기를 싣고 달려와 집회를 미리 준비하고 음향을 맡아주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김성만이다. 그의 노래는 힘차고 가사는 친근하다.

대학 노래패 출신이 아닌, 현장 노동자 출신 가수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김성만 지음 / 삶이 보이는 창 펴냄 / 2010.11 / 1만 원)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김성만 지음 / 삶이 보이는 창 펴냄 / 2010.11 / 1만 원)
ⓒ 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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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함의 이유는 그를 소개할 때 따라붙는 '노동자 가수'라는 말에 다 들어 있다. 그는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운동권으로 노래를 하다가 민중가수가 된 사람들과 다르다. 노동 현장에서 다져지고 달궈진 현장 출신 노동자 가수이다. 나는 그의 이력을 전혀 몰랐지만  그의 노래를 한 번 듣고 단번에 '왕팬'이 됐다. 그의 삶과 노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은 '삶과 사람을 온몸으로 노래하라'는 에세이를 통해서이다. 그는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 노래를 하고 작곡을 하게 된 경위 등을 노래를 하듯, 이야기를 들려주듯 조곤조곤 풀어냈다. 글의 솔직함 때문에 장을 넘길 때마다 목울대가 아파왔다.

다이아몬드도 원석을 어떻게 커팅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진다. 작곡가나 기획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중문예 활동을 하는 문예 일꾼들은 대학에서 활동을 하다가 직업적인 문예 일꾼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같은 노동자 출신이 가수나 작곡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보석보다는 무쇠와 같은 게 나 같은 경우다. 노동 현장이나 투쟁 현장에서 노동자 노래패를 하면서 두들겨 맞고 갈고 닦아져 만들어진 것이다. 좋은 보석이 아니어도 쇠붙이를 불길에 달구고 두들기고 담금질해서 마침내 강철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본문 1부 4장 <무쇠와 다이아몬드> 중에서)

그의 말 그대로, 그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아닌 무쇠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노동자들에게 보석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강철처럼, 강철 같은 사람으로서 자신을 담금질 해 왔다. 그의 노래에 실린 감동과 힘은 철저하게 현장과 하나 된 삶에서 비롯된다. 그는 <불패의 노래>, <비정규직철폐가> 등 투쟁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곡을 만들었다.

그의 노래는 청음 능력이나 음악적 감각 혹은 재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현장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철저하게 거리와 투쟁 현장에서 부딪치며 온몸과 마음으로 깨우쳐 각인된 삶이 있다. 그 삶을 음표와 노랫말로 옮겼다. 그의 말대로 무쇠를 두들기고 담금질해 만든 강철이다. 문신처럼 온몸에 새겨진 리듬이나 춤사위다. 그 생명력이 길고 감동의 깊이가 깊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어루만지는 그의 노래, 나도 따라 불러본다

곡을 쓰는 사람들은 리듬을 먼저 배워야 한다. 풍물로 치자면 삼채, 오방진, 굿거리 등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꼭, 리듬에 맞춰 춤을 춰보는 것이다. 리듬에 맞춰 몸의 흐름이 함께 어울리는지 직접 느껴본다. 가사와 선율은 잊어버릴 수 있지만 춤과 리듬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지독하도록 문신처럼 새겨진다.

선율을 쫓아가면 표절이지만 리듬에는 표절이 없다. 새롭게 만나는 리듬과 내가 가진 악상을 하나로 겹치는 것이다. 그럼 한동안 그 리듬에 매료되어 그 곁을 결코 떠나지 못한다. 사랑을 할 때면 선율로 나누지 말고 리듬으로 나누기를 권하고 싶다. 리듬은 함께 호흡하는 것이고, 함께 보폭을 맞춰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되어도 빠져나가지 않는 사랑, 가끔 잊어버리는 가사나 음이 아니라 춤과 리듬의 사랑, 그런 사랑에 빠져보라고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본문 1부 3장 <작곡> 중에서)

십대에 거리에서 신문 배달을 한 것을 시작으로 악기 공장과 가구 공장을 전전했다. 그리고 노점으로 이어온 삶을 온몸과 가슴으로 느끼고 노래하는 가수가 있다. 투쟁 현장 어디든 연대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 그가 마흔이 넘어 투쟁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비애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어느 새 그가 만든 <비정규직철폐가>를 웅얼거리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투쟁! 투쟁! 하고 외쳐 본다.

나의 손 높이 솟구쳐
차별 철폐를 외친다
쓰러진 또 하나의 동지를
보듬어 안고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철폐 연대에 발맞춰
굳세게  더 강하게 당차게 나선다
가자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단결투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꼭 찾아오리라

덧붙이는 글 |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김성만 지음 / 삶이 보이는 창 펴냄 / 2010.11 / 1만 원)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

김성만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10)


태그:#김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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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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