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한국챔피언에 등극한 강기준

꿈에 그리던 한국챔피언에 등극한 강기준 ⓒ 이충섭


'거리의 복서' 강기준(록키체육관)이 마침내 한국챔피언에 등극했다.

강기준은 지난 28일 경기도 이천 고려한백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 슈퍼웰터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이준용(수원태풍체육관)을 10R 판정승으로 이기며 34세에 한국타이틀을 얻었다.

강기준은 2007년 신인왕전으로 데뷔했지만 2회전에서 패배했고, 복싱 흥행부진으로 2011년에서야 신인왕전에 다시 출전했지만 결승전에서 박진용에게 역전 KO로 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강기준은 당시 중화요리 배달원, 주유소 알바, 청계산 짐꾼, 영화 엑스트라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복싱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 삼아 주말이면 강남역이나 대학로에서 1분에 만 원짜리 거리의 복서로 나서기도 했다. 무명인 자신과 스파링을 상대해줄 선수가 마땅치 않자 아쉬운 살림에 푼돈 벌이라도 할 겸 주말에는 대학로, 강남역 등 거리에 나서 1분에 만 원을 받고 맞아주는 아르바이트를 훈련으로 삼았다.

손님을 때리지 않고 그저 맞는 역할이라 간혹 선수 출신한테 걸리면 번 돈마저 치료비로 날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 주먹에 견디는 훈련만큼은 효과가 있다고 믿으며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 경기를 위해 글러브를 벗지 않았다. 이런 그의 모습은 EBS 방송을 통해 '거리 위의 복서'라는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2012년, 강기준은 한국챔피언 도전의 기회를 얻었지만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양정훈에게 판정패했다. 그가 그렇게 아쉬운 복싱 인생을 마감하는 줄 알았다.

강기준은 그 후 결혼해서 두 아이를 둔 가장이 됐고 2년간 시합에 출전하지 못했다. 사실상 은퇴 상태였지만, 복싱의 꿈을 버리지 않고 지냈던 그에게 마침내 공석이 된 한국타이틀 결정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상대는 23살의 현역 최고의 이준용. 강기준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떠오르는 신예의 앞길에 디딤돌이 되어줄 34살 '퇴물복서'가 그의 배역인 듯했다.

하지만 강기준은 두 아이와 아내 앞에서 부끄러운 시합을 보여줄 수 없었다. '남은 한 달 동안 복잡한 생각하지 말고 네가 살아온 인생을 무기로 시합을 준비해라. 네 승리를 믿는다'는 주례 선생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후회 없는 경기를 목표로 최선을 다했다.

 일진일퇴의 난타전을 벌인 강기준(왼쪽)과 이준용

일진일퇴의 난타전을 벌인 강기준(왼쪽)과 이준용 ⓒ 이충섭


경기는 예상대로 이준용의 맹공으로 일방적인 승리가 되는가 싶었지만 강기준은 가드를 바짝 올린 채 물러서지 않고 맞불을 놓았다. 양 선수가 때리고 엉키는 일진일퇴의 난타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꺼지지 않는 서른네 살 강기준의 체력과 투혼에 스물세 살 이준용의 기술이 점점 무뎌지고 말았다. 단 한 라운드도 쉬어가는 순간 없이 숨막히는 공방전이 진행된 끝에 드디어 경기 종료의 종이 울렸다.

 강기준(오른쪽)이 공격하고 있다

강기준(오른쪽)이 공격하고 있다 ⓒ 이충섭


3대0 심판전원 일치 판정승 결과가 장내 아나운서를 통해 발표된 순간 강기준과 링 아래의 아내와 코치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강기준에게 복싱의 꿈을 꾸게 했던 '4전5기 세계챔피언'이자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홍수환이 챔피언 인증서를 전달해 주었다.

 챔피언 트로피를 안은 강기준과 홍수환 회장

챔피언 트로피를 안은 강기준과 홍수환 회장 ⓒ 이충섭


 감격에 겨워 눈물흘리는 강기준

감격에 겨워 눈물흘리는 강기준 ⓒ 이충섭


강기준은 링에 내려와서도 말을 잇지 못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상대인 이준용도 강기준을 찾아와 진심어린 축하 인사를 보내는 모습은 스포츠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었다.

록키체육관으로 복싱에 입문해서 영화 속 주인공 록키보다도 더 감동적인 투혼을 보여준 강기준은 멋진 복싱챔피언이며 진정한 인생의 챔피언이다.

 강기준을 찾아와 축하를 건넨 이준용

강기준을 찾아와 축하를 건넨 이준용 ⓒ 이충섭


 챔피언 강기준과 그의 가족

챔피언 강기준과 그의 가족 ⓒ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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