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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로 들어가는 오솔길 옆 국화꽃 향기가 그득하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오솔길 옆 국화꽃 향기가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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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중앙무대 앞 고즈넉한 사찰 풍경
 전등사 중앙무대 앞 고즈넉한 사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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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이 온 듯 주말 아침이 상쾌하다. 하늘은 조금 어둡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흐른다. 어제에 이어 강화도 축제현장을 취재하는 발길은 무겁지만 모처럼 나만의 시간에 기분이 들뜬다. 지난 28일 일요일 오전 8시, 차를 몰고 강화도 전등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화도 초입으로 들어가는 복잡한 도로가 사뭇 낯설다. 경인아라뱃길 준공, 아시안게임 경기장 신축 등으로 인해 어긋난 길이 차를 느리게 만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천과 수로로 이어진 자연 숲길이 있어 포근하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만 보여 가슴이 답답하다. 내비게이션도 말을 듣지 않는다. 꼭꼭 숨겨둔 이정표를 겨우 찾아내 2시간 만에 전등사에 도착했다.

아가씨라도 만나면 보쌈이라도 해갈 참인가....'헐'

불상이 묻는다...당신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불상이 묻는다...당신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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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를 하고 전등사 초입 오솔길을 오른다. 향긋한 가을바람이 볼을 적신다. 소나무로 뒤덮인 산사가 이내 막혔던 가슴을 펑 뚫어 준다. 오르는 길에 만난 할매 보살이 먼저 나를 반기며 뒤통수를 친다.

"어이, 총각아재. 가방 문이 다 열렸어. 어째, 아리따운 아가씨라도 만나면 보쌈이라도 해갈 참인가.(웃음)"

노총각의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이다.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돌려놓고 가방을 고쳐 맸다. 혼잣말로 중얼 거린다. '그 할매 참, 거시기 하네. 안 그래도 가을 산사를 보며 '애인이랑 같이 왔으면 좋으련만' 했더만'... 아마도 저 할매보살이 부처님 공덕을 많이 받은 탓에 복심술이라도 가졌나 보다.

아침이슬에 촉촉히 젖은 꽃망울의 판타지
 아침이슬에 촉촉히 젖은 꽃망울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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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기도, 아뇩다라삼막샴보리
 스님의 기도, 아뇩다라삼막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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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오솔길을 십여 분 오르니 이내 전등사 일주문 현판이 먼저 반긴다. 아직 축제가 시작되기 전이니 고요한 사찰의 목탁소리만이 산사를 울린다. 이어 사찰 안에서 묵은 밤을 보냈던 고유의 문화재들이 가을빛을 발하며 산사를 깨운다.

일찍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따뜻한 차를 선물하는 죽림다원이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위쪽으로 무설전, 월송요, 적묵당, 대웅전, 대조루, 명무전, 약사전, 향로전이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중앙무대를 기점으로 둘레길로 올라가는 산 가까이에는 취향당, 삼성각, 강설당, 선체험관, 양헌수비가 날갯짓을 하며 기운을 돋는다.

현존하는 최고의 사찰 전등사, 호국 영령의 혼을 달래다

육법공양 중 꽃 공양하는 보살의 고운 자태
 육법공양 중 꽃 공양하는 보살의 고운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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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최고의 사찰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전등사는 정족산(220m,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삼랑성 안에 포근히 담겨 있다. 큰 솥의 둘레와도 같은 형태의 삼랑성은 주봉인 정족산과 주변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연결해 축성한 성이다. 그 둘레는 2.3km 정도이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인 부소, 부우, 부여에게 성을 쌓게 하고 그 이름을 부르게 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토성의 흔적과 작은 돌들을 끼워 맞춘 삼국시대 성의 특징이 남아 있어 성을 축조한 시기는 삼국시대로 여겨지고 있다.

장독대도 무르익어 가는 사찰의 가울 풍경
 장독대도 무르익어 가는 사찰의 가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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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은 민초들의 피난처, 국난의 항전지, 풍수지리적인 길지로도 유명하다. 1250년 고려왕조의 가궐,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에 피해를 입었던 장사각 등이 그렇다. 그리고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 장군을 격퇴한 사건과도 삼랑성은 그 역사적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당시 프랑스 군은 강화에 있던 외규장각과 조선 행궁을 불태우고 고서적 등 359점의 문화재를 약탈했다. 동문 안에는 양헌수 장군을 기리는 승첩비가 세워져 있다.

이렇듯 전등사는 옛 선열의 혼을 품고 그 영령을 길이길이 달래고 있다. 그 역사를 잠깐 보면,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승려 아도화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1282년 고려 충렬왕의 왕비인 정화공주가 옥등을 시주하고 인기 스님으로 하여금 송나라에서 대장경을 인쇄하여 봉안하게 된 데서 전등사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진리의 등불은 시공의 제약 없이 꺼지지 않고 전해진다

부처가 말한다. '여보게, 저승갈 때 무얼 가지고 가는가'
 부처가 말한다. '여보게, 저승갈 때 무얼 가지고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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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않는 저 초라한 꽃에서도 그윽한 향기가 나는 이유는...
 아무도 보지 않는 저 초라한 꽃에서도 그윽한 향기가 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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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 흔히 부처님의 말씀을 '법등'이라 한다. 여기서 본을 따 전등사의 전등이란, 진리의 등불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꺼지지 않고 전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려 왕실의 원찰이었던 전등사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수량도행으로 빛을 발하며 스님들의 수행처로 발길을 머물게 한다.

전등사의 문화유산도 유명하다. 보물 178호인 대웅전과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이 그렇다. 또한 보물 179호 약사전, 보물 393호인 범종과 법화경판이 자리하고 있다. 이밖에도 거대한 청동수조와 옥등, 70여 년 이래로 은행이 한 톨도 열리지 않았다는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전등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랑성으로 오르는 길목의 켜켜이 쌓아놓은 성벽이 예술이다
 삼랑성으로 오르는 길목의 켜켜이 쌓아놓은 성벽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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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을 둘레로 중앙에 살포시 담아놓은 고즈넉한 전등사의 풍경
 삼랑성을 둘레로 중앙에 살포시 담아놓은 고즈넉한 전등사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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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삼랑성역사문화축제는 천년의 기다림, 새로운 시작을 표방하고 있다. 정족산 삼랑성과 전등사가 지켜낸 역사적 혼을 되살려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올바로 조명하는 화해와 상생의 만남을 담았다.

전등사 역대조사의 혼을 기리는 다례재와 영산대재, 사찰과 사부대중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을빛 산사음악회, 지역민과 함께하는 전통 체험마당, 온 가족이 즐기는 마당극, 그리고 예술작가들의 아름다운 전시회 등이 축제를 빛내줬다.

축제 위원장을 맡았던 전등사 주지 범우 스님은 "삼랑성 전등사는 단군신화, 고려 항몽, 조선왕조실록 보관, 병인양요 전투 승리, 구한말 의병 전투 승리 등 우리 역사와 함께 한 민족자존의 현장"이라며 "역사를 모르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했듯 이번 아시안게임에 오시는 여러 나라 선수들에게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전했다.

승무, 전등사 축제의 정점을 찍다
 승무, 전등사 축제의 정점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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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천불교신문> 공동 게재



태그:#전등사, #삼랑성, #양헌수 장군, #병인양요, #범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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