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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하나마나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우리 교육이 황폐화된 가장 큰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불신'이라고 답한다. 기실 이는 우리 교육이 망가진 원인이자 그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불신이 더 큰 불신을 낳는 악순환의 연속이 바로 대한민국 공교육의 민낯이다.

말 꺼내기조차 새삼스럽지만, 어릴 적부터 무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끼리의 우정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옛 이야기가 됐고,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도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교실은 서로 소 닭 보듯 무관심한 시선만 난무한다. 나아가 교사와 학부모 사이는 차라리 적대적이다. 불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다.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에서도 신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긴 철저히 '갑'과 '을'의 관계다 보니 신뢰 따위가 무슨 필요인가 싶지만, 한 명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합격 시키려고 신뢰를 구걸하다시피 하는 고등학교의 노력은 처절하다 못해 불쌍하다. 근 한 달 가까이 교무실을 온통 떠들썩하게 한 대학별 수시모집 원서 접수기간 동안 새삼 느꼈던 바다.

드디어 원서접수가 끝났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9월까지는 교사들에겐 '별도의 업무'가 추가된다. 교사추천서를 쓰고, 아이들이 직접 쓴 자기소개서를 첨삭 지도하느라 잡무는 물론 심지어는 수업에 지장을 초래할 지경이다.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수능을 더불어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의 고통에 어찌 비할까마는, 이맘때쯤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3학년 담임교사의 경우에는 원서접수 요령을 지도하고 개인별 입시상담까지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수업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예년에 비해 많이 간소화 되었다고는 하나, 대학별 입시전형은 여전히 복잡해서 교사도, 학생도 뭐가 뭔지 몰라 헤매기 일쑤다. 차라리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고, 시간까지 여유로운 학교 밖 학부모가 '진짜 전문가'라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추천서 한 장 쓰는데 뭐 그리 큰 의미를 두나"

한 대학교 교사추천서 양식
 한 대학교 교사추천서 양식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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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두 명의 고3 아이가 교사추천서를 써달라고 찾아왔다. 이태 전 1학년 때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교사추천서는 대개 3학년 담임교사의 몫이지만, 입시 전형에 특별한 제한은 없어 학교장이든, 교과목 교사든 누구나 쓸 수 있다. 그 중 한 아이는 내가 지도하는 문화유적답사 동아리의 회장이라,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정기답사 중 그와 얽힌 에피소드도 많은 터라 이래저래 써줄 이야기가 참 많았다.

문제는 다른 한 아이였다. 무턱대고 추천서를 써줄 수 없었다.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아주 잘 한다는 것 그리고 교내 토론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것 외에는 그의 학교생활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었다. 그의 담임이었던 적도 없고, 3년 동안 오며가며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어쨌든 한 해 동안 그를 가르쳤던 교사로서, 제자의 간청을 거절하는 마음이 편할 순 없었다. 돌아서는 그도 얼굴엔 서운해 하는 빛이 역력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르는 것을 잘 아는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사실 교사추천서란 그 아이에 대해 교사의 이름을 걸고 '보증'하는 문서 아닌가.

그런데 두 아이가 같은 반이었던 탓인지, '누구는 써주고, 누구는 안 써줬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와전됐다. 아이들로부터 '편애'라는 뒷말이 들리는가 하면, 몇몇 동료교사들로부터는 '추천서 한 장 쓰는데 뭐 그리 큰 의미를 두느냐'는 말도 들었다. 그들의 오랜 경험상 교사추천서가 그 아이의 당락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 일단 성적이 몇 배수 안에는 들어야 추천서든 자소서(자기소개서)든 '읽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성급한 학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 앞에서 '적성이고 흥미고 대학 가면 바뀐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 것도 그래서다. 인정하긴 싫지만, 학교생활의 성실성은 물론 아이들마다의 적성과 특기조차 교과 성적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예컨대, 도덕 점수가 높다고 다 도덕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역사의식이 투철하다거나 동물에 관심이 많다고 쓰려면, 역사와 과학 성적이 일단 높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추천서나 자소서는 애초 '인과관계'가 뒤틀린 글이 되기 십상이다. 아이들의 3년 학교생활 전부를 담은 학교생활기록부의 세부 내용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수시 원서를 '로또'로 생각하는 고3 수험생들

당락에 영향이 없다는 생각에 교사들 스스로 추천서의 비중을 얕본 탓일까. 아이들 중에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교사추천서를 자기가 직접 써오겠다는 경우도 더러 있다.
 당락에 영향이 없다는 생각에 교사들 스스로 추천서의 비중을 얕본 탓일까. 아이들 중에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교사추천서를 자기가 직접 써오겠다는 경우도 더러 있다.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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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대학이 고등학교의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용을 믿지 않는다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아이들마다 내용이 천편일률적인 데다 '과대포장'이 돼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계량화되어 서열이 매겨진 성적이 기댈 만한 '유일하다시피 한' 잣대이며, 나머지 비교과 영역은 그것을 돋보이게 만들어 줄 '옷에 그려진 무늬' 정도라고 인식한다.

대학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들이 온갖 미사여구로 '떡잎'을 감추고 있다고 불평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이 애초 '될 성 부른 나무'를 알아보고 키워낼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렇듯 불신이 켜켜이 쌓여있으니, 거의 해마다 새로운 대학입시안이 나와도 결국엔 돌고 돌아 계량화된 점수에 우선 의존하게 된다. 그것도 '공정하고 객관적이다'는 이름으로.

당락에 영향이 없다는 생각에 교사들 스스로 추천서의 비중을 얕본 탓일까. 아이들 중에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교사추천서를 자기가 직접 써오겠다는 경우도 더러 있다. 말이야 '입시 상담에 시달리는 선생님의 수고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글의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곧, 교사의 명의를 빌려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조차 '자기'가 잘 드러나지 않으니 그런 추천서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진학하려는 학과와 대학은 달라도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는 무슨 공식에 대입해 쓴 것처럼 천편일률적이다. 학업에 관한 건 어김없이 책의 감동이나 선생님의 '결정적' 조언이 등장하고, 새로 조직했다거나 회장으로 일했다는 동아리 활동은 '약방의 감초'다. 왕따를 당하는 친구나 장애인을 도왔다는 이야기는 훈훈하기는커녕 식상할 정도다.

더욱이 첨삭 지도의 과정을 수차례 거치면 내용은 물론, 문장의 형식조차 비슷해진다. 읽다 보면 마치 남의 것을 그대로 복사해 가져다 붙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자기소개서를 통해 아이들의 잠재성을 파악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여러 장의 자기소개서를 뒤섞어 놓으면, 낳고 키운 부모조차 자기 자녀의 것을 못 찾아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추천서든, 자기소개서든, 대학 입시에서 어차피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지적이 타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처음 도입할 때야 이러지 않았겠지만 또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 때 되면 으레 대학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같은 게 됐다. 고등학교의 입장에서야 아이들을 어떻게든 대학엘 보내자면 수시고 정시고 가릴 처지가 못 되니, 그들의 요구대로 뭐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교사로서 이게 뭐하자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한숨 쉬어가며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눈이 빠져라 읽고 있는데, 한 고3 아이가 고생하신다며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그는 여느 친구들과는 달리 고1때부터 가고 싶어 한 대학 단 한 곳에만 수시 원서를 넣었다면서, 여기저기 원서를 쓰는 건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수시 원서를 복권에 비유하며 이렇게 비판했다.

"친구들끼리 수시원서를 '로또'라고 불러요. 하나같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배짱 지원이니까요. 정시로 갈 수 있는 대학에 굳이 수시원서를 낼 리 없잖아요. 붙으면 '대박'이지만, 수시에 떨어졌다고 충격 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요행을 바란 셈이니 떨어져도 덤덤한 거죠. 대학 6곳에 수시원서를 내는 건 마치 6장의 '로또'를 사는 것과 비슷한 셈이죠.

그래선지 친구들 사이에서는 수시모집이 대학들 좋아라고 만든 제도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해요. 듣자니까 서울 소재의 웬만한 대학들은 수시원서 수익만 수십억 원이라면서요. 그들이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수요가 넘쳐나는, 말하자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잖아요. 우리와 선생님들은 '호갱님'이고, 대학은 '슈퍼 갑'인 거죠."


태그:#대학별 수시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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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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