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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가을이다. 흔히들 가을은 '조락(凋落)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이는 풀이나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짐을 말한다. 나도 이제 초목으로 치면 가을을 맞았다. 그래서 이즈음은 언저리를 하나하나 정리해 간다. 얼마 전 명함 집과 편지함을 정리하면서 끝내 버리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주로 교단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 준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 '가연(佳緣)'은 사제(師弟)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와 문화는 사제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는 제자들의 초청을 극도로 자제해 왔는데, 이나마 건강할 때 극히 자연스럽게 만나 차담을 나누는 것은 한 훈장으로서 큰 기쁨이요, 아름다운 마무리이리라.
 - 기자의 말

"청춘은 희망에 살고, 백발은 추억에 산다"고 한다. 나는 백발을 지나 삭발이다. 어린 시절처럼 까까머리로 산다. 그러다 보니, 앞날에 대한 희망보다 지난날을 되새김질하는 때가 더 많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난 인생을 성능 좋은 지우개로 지우고 싶지만, 그게 어디 지워질 일인가.

이 시점, 내 지난 인생역정 가운데 가장 잘 한 점은 33년 꼬박 교단생활을 한 점이다. 나의 인생황금시절 전반기는 학교에서 배웠고, 후반기는 배우며 가르쳤다. 하지만 끝내 가슴 아프게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강원도 산골로 내려와 얼치기 농사꾼으로 살다가 요즘에는 병원이 가까운 원주에서 살고 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사회자가 나를 소개하는데, 서울의 한 고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다고 소개하기에 손을 저었더니, 교감 선생님으로 정정 소개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마이크를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평교사로 지냈다"고 고쳐 말했다.

몇 해 전 겨울, 아내와 같이 남설악 오색의 한 숙소에서 머물면서 주전골로 이른 아침 산책을 하는데 한 주민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교장 선생님, 잘 주무셨습니까?"
"네, 잘 잤습니다만 교장 선생님은 아닙니다."

그 무렵 남설악 오색에는 사학연금공단에서 운영하는 '오색그린야드' 숙소로 전 현직 교육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래서 그 주민은 나에게 '교장'이라는 호칭을 붙인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친지들도 으레 내가 교장이나 최소한 교감은 하고 교단에서 물러난 줄 알고 있다. 처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내가 못난 듯하여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요새는 평생 평교사로 지낸 게 오히려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늙으면 스팸메일도 줄어든다

정말 나는 교단생활 처음부터 끝까지 평교사였다. 수업도 엄청 많이 했다. 재직 중 한 번도 특혜를 받아본 적이 없다. 매년마다 주당 20시간 이상, 30시간 가까이 수업을 했다. 국어는 중요과목이라고 하여 방학 때도 등교해서 수업했다. 한때 보직(교무부장)도 맡았지만, 나 때문에 동료의 수업 부담이 많아지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자청하여 수업시간을 더 들어갔다. 학급담임도 20여 년 맡았다.

그런 탓인지 아직도 나를 기억해 주고 시시때때로 문안인사를 보내주는 제자들이 더러 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수업시간에 들려준 얘기로, 담임교사로, 문예반 또는 교지편집지도교사로 만났던 일화를 말한다. 그 때문에 인연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결국 인간관계란 지위 고하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상대를 배려하였는가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현직에서 물러나자 전화도, 편지도 날로 줄어들고 있다"며 "심지어 스팸메일이나 전화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런 세상인심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상 좋다고 답했다. 흔히들 고위직에 있었던 이들이 은퇴한 뒤 느끼는 공허감일 것이다.

나에게 해가 바뀌거나, 계절이 바뀌거나, 무슨 날에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문자 인사를 빠트리지 않는 몇몇 제자가 있다.

사실 입장을 바꿔도 그렇게 하기 힘든 일이다. 내가 사는 곳으로 일부러 찾아오거나 자기가 사는 곳으로 초대하는 제자도 더러 있다. 얼마 전 한 제자가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서울 오시는 날 연락주세요."

1980년 중간고사, 그 때의 교통사고

정선영 씨
 정선영 씨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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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40년째 다니는 서울 목동의 한 단골 치과에 가는 길에 그를 만나기로 했다. 청량리행 열차를 타고 가는데 문득 1980년 10월 초순, 어느 날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이대부고 2학년 2반을 담임했는데, 문과반이었다. 그 시절에는 학생들이 문과로 많이 쏠려 반 학생만 70여 명이었다. 그러다보니 교실 빈 공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좋은 학생들을 만나 참 즐겁고, 수월하게 넘긴 1980년이었다.

1980학년도 2학기 중간고사 날이었다. 10월 초순 어느 날, 1교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끝내 세 학생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다른 교실 감독을 가면서 시험도중에는 등교하겠지 여기고 교실을 떠났다. 1교시 감독을 마치고 학급 교실로 갔지만 여전히 세 자리는 비어 있었다. 2교시 감독을 마치고 교실로 가도 그들의 자리는 똑같이 비어 있었다.

곧장 교무실로 가자 교감 선생님이 전화를 받다가 나에게 넘겨주었다. 전화를 받고 보니 한 학생의 어머니로, 세 학생이 아침 등굣길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4중 추돌사고를 일으켜 강남시립병원 응급실에서 가료중이라고 했다.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세 학생은 함께 시험공부를 하겠다며 시험 전 날, 잠실에 있는 한 학생의 집으로 갔다. 그들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 시험공부를 했다고 한다. 잠시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등교시간이 늦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달리 택시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다가 4중 추돌사고를 당했다. 세 학생 가운데 두 학생은 중상으로 4주 정도 입원 치료했고, 한 학생은 다소 경상으로 2주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 와중에도 딸이 "자기는 미스코리아에 나갈 터인데 의사 선생님에게 흉터가 나지 않게 치료해 달라"고 말했다며 웃었다. 얼마 후 그 학생 어머니가 나에게 "딸이 턱뼈 교정수술을 받아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학급친구들의 잦은 문병으로 치료에 애로가 있다"며 면회 자제를 부탁했다. 그 정도로 학급의 급우애가 유난스러웠다.

이대부고 2-2 수학여행 중 기념촬영(설악산 비룡폭포, 1980. 8.)
 이대부고 2-2 수학여행 중 기념촬영(설악산 비룡폭포, 1980. 8.)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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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용기를 주시게

그 학생과 나는 한 밥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당시 이야기로 추억을 되새겼다. 대학 졸업 후 곧 결혼하여 지금은 25세의 아들과 23세의 딸을 둔 52세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동안 순탄하게 살았는데 이즈음은 좀 힘들다고, 몇 해 전 중소기업을 하던 남편의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네. 아무쪼록 신랑이 좌절치 않도록 자네가 곁에서 용기 많이 북돋워 주게나. 요즘 대한민국 남자들, 특히 50~60대 남자들 너무 힘들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 남편이 꼭 재기하여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날을 기다리겠네."

그는 커피 맛과 분위기가 좋다는 가까운 커피숍으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그의 고교 재학시절 얘기와 국내외 여러 동창들의 근황 얘기를 나눴다. 나는 치과진료 예약시간이 다 되었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선생님 말씀은 저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을 제 인생에 터닝 포인트로 삼을 게요."
"다시 강조하네만 자네 남편에게 용기를 주는 아내가 되시게. 남자들에게는 아내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가장 큰 힘이 되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남은 날이 더 중요하네. 경우에 따라서는 자네가 앞장서기도 하고."

나는 마치 친정아버지라도 되는 양 거듭 당부했다. 그날 볼 일을 모두 마치고 청량리역에서 밤늦게 원주행 열차를 탔다. 그 때 문자가 왔다.

"샘, 잘 들어가셨어요? 정말 오랜만에 옛날 기억 떠올리며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요. 선영 올림"


태그:#가연, #스승과 제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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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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