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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Pura Ulun Danu Bratan)의 숨 막히는 호수 위 절경을 구경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유명 관광지이지만, 주변에 식당은 많지 않다. 우리는 사원 근처의 호수가 보이는 멘타리 식당(Mentari Restaurant)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경사진 식당 입구의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보니 브라딴(Bratan) 호수의 잔잔한 수면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브라딴 호수를 여행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다.
▲ 멘타리 식당 브라딴 호수를 여행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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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타리 식당은 풍경 좋고 사원과 가까워서 외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다. 뷔페식당이어서 나시고랭(nasi goreng)에 미고랭(mi goreng), 사떼(Sate) 등 인도네시아 음식은 총집합해 있다. 여행자들로 북적거리는 식당이어서 음식은 그럭저럭 먹을만하지만, 음식에 깊은 맛은 없다. 아마도 매번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아니라 한번 먹고 떠나는 여행자들을 손님으로 하는 식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은 많이 차렸지만, 맛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 아이스 티와 코코넛은 추가로 사야 한다고 해서 뷔페 음식만 가져다 먹었다.

코코넛 밀크와 팥죽은 음식으로서 환상적인 궁합을 맛보게 해준다.
▲ 코코넛 밀크 팥죽 코코넛 밀크와 팥죽은 음식으로서 환상적인 궁합을 맛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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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에서 다시 손이 간 맛난 음식은 코코넛 밀크 팥죽이다. 영어로 적힌 음식 이름을 보니'코코넛 밀크'와 '흑미죽(Black Rice Porridge)'이라고 별도로 표기되어 있는데, '흑미'는 아무리 봐도 팥인데 영어로 대충 이름을 붙여 놓은 것 같다.

흑미죽과 코코넛 밀크를 각각 가져와서 떠먹어 보았는데 이상하게 밍밍한 맛이 난다. 나를 보던 아내가 팥죽 위에 코코넛 밀크를 부어서 먹을 것이라고 했다. 따로 먹을 때는 아무 맛이 없던 두 음식을 함께 버무려 먹으니 신기하게도 감칠맛이 났다. 음식 궁합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 음식이 바로 코코넛 밀크 팥죽이다. 이 세상 모든 사물에는 궁합이 맞는 것들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브두굴 식물원을 나오면서 보았던 브두굴(Bedugul) 짠디꾸닝 시장(Pasar Candi Kuning)에 들르기로 했다. 시장을 가는 길에 이슬람 사원이 보인다. 이슬람교의 나라 인도네시아이지만, 대부분 힌두교를 믿는 발리이기에 이슬람 사원이 영 낯설다. 이곳 브두굴 지역은 발리의 다른 지역보다 이슬람 교인들이 많은 지역이다. 발리에서는 이슬람 교인의 폭탄테러 사건으로 인해 힌두교 신자와 이슬람교 신자 간에 갈등이 심한데, 힌두교를 믿는 발리 친구 아롬도 힌두교 사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을 영 불편해하는 눈치다.

지금 찾아가는 시장도 이슬람교 신자들이 운영하는 시장이다. 시장 상인의 대부분이 이슬람 교인들이다. 힌두교의 섬, 발리에서 이슬람 교인들이 운영하는 유일한 시장이기도 하다. 이슬람 교인들의 이 시장은 과일과 야채, 기념품들이 풍부하여 브두굴을 찾아가는 여행자들이 대부분 들르는 곳이다. 호수에서 언덕으로 이어지는 굽은 길을 조금 오르니 시장이 나온다. 날씨가 워낙 시원해서 발리라기보다는 동남아 고산족들이 사는 고산지대의 한 시장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나는 아내와 부담 없이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브두굴 짠디꾸닝 시장은 원래 발리 현지인들에게 생활필수품과 야채, 과일 등을 판매하는 시장이었다. 현재는 시장 주변의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과 브라딴 호수의 인기로 인하여 외국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 시장이 되었다. 발리에서도 고산지대 시골에 있는 브두굴 짠디꾸닝 시장은 발리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세계적인 향신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향신료는 맛의 근원이다.
▲ 향신료 가게 세계적인 향신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향신료는 맛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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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리시장의 진한 모습을 구석구석 둘러보기로 했다. 유명 관광지의 시장이라서 시장에서는 다양한 기념품과 수공예품, 발리 전통의상 바틱(Batik), 과일, 야채, 과자 등이 팔리고 있다. 나는 발리의 중심가인 꾸따(Kuta) 시내에서도 보았던 기념품들 외에 이곳 브두굴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산품들을 찾아보았다.

첫 번째로 들른 가게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자랑, 향신료들을 팔고 있다. 모두 발리에서 생산되고 발리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향신료들이다. 향신료는 가루로 만들어서 팔기도 하지만 대부분 말려서 작게 만든 후 봉지에 담아 팔고 있다. 향신료와 각종 기호품의 비닐봉지 위에는 친절하게 영어로 향신료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향신료가 어떤 향신료인지 궁금해 하는 외국인들에게 향신료를 팔기 위한 친절함이다.

길다란 줄기같이 생긴 스틱 형태의 갈색 향신료는 우리나라에서 계피(桂皮)라고 불리는 시나몬(Cinnamon)이다. 시나몬은 잘 알려진 대로 세계 3대 향신료 중의 하나이다. 계피 향이 코끝으로 퍼질 것만 같은 이 향신료는 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향신료이기도 하다.

발리 친구 아롬의 설명을 들으니 시나몬은 이 시장에서 개미 퇴치용 식물로도 팔리고 있었다. 후추는 가루로도 팔지만 콩보다 작은 후추 열매를 말려서 봉지에 담아 팔고 있다. 우윳빛 정통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바닐라는 갈색의 길쭉하게 생긴 열매였다. 바닐라가 이렇게 생긴 식물인지 전혀 몰랐는데, 말린 이 열매의 향기를 맡아보니 신기하게도 바닐라의 향이 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붉은 고추와 찻잎도 잘 말려서 팔고 있고, 군침 나는 커피 열매와 땅콩도 가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열대의 육지가 바다 위에 동서로 길게 이어진 인도네시아의 국토는 과거부터 향신료와 기호식품이 풍부했다. 세계 역사에서 향신료의 원산지로서 서양 열강을 끌어들였던 인도네시아답게 이 시장의 향신료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향신료는 진정 인도네시아와 발리 음식 맛의 근원이며, 동서양 간 교류의 역사를 발전시킨 한 축이었다.

옥수수 가루를 반죽한 후 튀긴 과자이다.
▲ 옥수수 과자 옥수수 가루를 반죽한 후 튀긴 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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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연두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상의 덩어리 큰 튀김 과자가 큰 봉지에 싸여서 팔리고 있다. 발리 친구 아롬에게 물어보니 브두굴의 특산품인 옥수수 과자다. 옥수수 가루를 반죽하고 튀긴 후에 달콤한 초콜릿 같은 갈색 시럽을 뿌려서 판다.

과자의 색깔이 다 다른 만큼 맛도 조금씩 다르다. 맛이 달달하게 맛있는 옥수수 과자는 가격이 싸서 여행길의 간식거리로 좋다. 옥수수 과자 옆에는 찐 옥수수도 팔고 삶은 땅콩도 봉지에 넣어서 판다. 우리나라같이 큰 길 옆에 휴게소가 따로 없는 발리에서는 이런 전통시장에서 여행길의 간식거리를 마련한다.

라마야나에 나오는 선과 악의 신의 탈이 험상궂다.
▲ 전통공연 탈 라마야나에 나오는 선과 악의 신의 탈이 험상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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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열매와 대나무로 만든 발리 전통 악기가 가게의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대나무 악기는 손가락으로 치면 나무통 속이 통통거리며 울리는 재미있는 소리가 난다. 악기 옆에는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에 등장하는 비슈누의 화신, 라마(Rama)와 악귀 라바나(Ravana)의 익살스러우면서도 험상궂은 탈이 걸려 있다. 송곳니와 앞니를 모두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듯한 이 탈들은 모두 라마야나의 민속공연에 사용되는 탈들이다. 기념품으로 사기에는 인상들이 험하고 탈의 머리카락도 너무나 길다.

가게 주인과 한참동안 흥정을 하다가 샀다.
▲ 자개 그릇 가게 주인과 한참동안 흥정을 하다가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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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중에서는 자개로 만들어진 발리 전통의 접시와 그릇들이 인기가 높다. 검은 옻칠을 한 나무 접시 위에 동심원 모양으로 박힌 자개의 속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아내는 이미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예쁜 자개 접시들을 만지며 가격을 물어보고 있다. 아내가 이 자개 접시를 산다고 해서 나는 다시 접시의 가격을 물어보았다. 이곳은 브두굴의 현지 시장이지만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어서 가격은 그리 착하지 않다.

보기에는 평범한 발리의 시골시장같이 보이지만, 시장상인들이 부르는 제품 가격에는 3배 정도의 거품이 끼여 있다. 발리에서는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 가격이 많은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격 흥정을 해보기로 하고 가게 주인들이 부르는 접시 가격의 1/3의 가격을 불렀다. 가게 주인이 가지고 있는 계산기를 직접 두드려가며 몇 번의 가격 흥정이 오고 갔다. 그 가격에는 절대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가게 아주머니도 내가 가게를 떠나려 하자 내가 제시한 가격에 자개 접시를 팔았다.

크기도 큰 왕망고가 과일가게에 가득 쌓여 있다.
▲ 왕망고 크기도 큰 왕망고가 과일가게에 가득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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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의 열대과일을 맛볼 수 있는 발리답게 시장에는 과일가게가 많다. 열대과일들이니만큼 색상이 먹음직스럽게 화려하고 크기도 크다. 딸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일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커다란 왕망고가 주종을 이루는데 과일 가게마다 왕망고가 탐스럽게 가득 쌓여 있다.

망고 덩치가 워낙 커서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듯 하다. 동그란 감같이 생긴 붉은 망고스틴(mangosteen)과 붉은 몸통에 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람부탄(rambutan)도 가게마다 가득하다. 과일가게 앞을 지나가니 가게 주인들이 시식해 보라고 과일을 한 조각씩 칼로 잘라주는데 특히 망고스틴의 맛이 달콤하다.

겉모양이 노란 귤같이 생긴 패션 푸르츠(passion fruit)는 발리에서 마르키사(markisa)라고 불린다. 노란 껍질을 가르니 연녹색의 새콤한 젤리 속에 개구리알 같이 생긴 과즙이 다닥다닥 겹쳐서 들어있다. 젤리 같은 과즙이 씹히는 맛도 있고 달고 부드러워서 입을 대고 빨아먹을 만 하다. 과일이 풍성하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풍성해 보인다.

우리나라 대관령에서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것처럼 브두굴도 고산지대의 시원한 날씨 덕에 채소 재배가 유명하다. 고산지대의 채소는 발리 평야 지대 동네 가게의 채소들보다 싱싱하고 싸서 발리 현지 주민들도 이 시장을 단골로 찾고, 이곳 브두굴에서 재배된 야채들이 발리의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지인들도 과일과 채소를 사기 위해 이 시장을 찾는다.
▲ 브두굴 시장 현지인들도 과일과 채소를 사기 위해 이 시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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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시장에서는 배추, 당근, 토마토, 청경채, 무가 팔리고 있다. 우리나라와 발리 사람들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듯이 같은 채소도 생긴 모양이 다르다. 브두굴의 배추는 아주 작고 날씬하게 생겨서 평소의 배추 이미지를 생각하면 영 어색하다.

발리 친구 아롬에게 물으니, 발리 사람들은 다른 야채들과 함께 배추를 섞어서 식용유에 볶아 먹거나 배추를 삶거나 데친 후 반찬으로 먹는다고 한다. 아마도 발리에 사는 한국인들은 모양이 다른 저 배추를 가지고 김장을 담가 먹을 것이다. 브두굴 지역에서는 당근도 많이 재배하는데 당근이 얇고 길며 뿌리도 많다. 발리 사람들도 당근은 통통하고 맛 좋은 한국 당근을 수입해서 먹는다고 한다.

시장에는 뜬금없이 토끼들을 작은 우리에 가두어 파는 가게가 있다. 친구 아롬에게 확인해 보니 브두굴은 토끼 고기를 먹는 걸로 유명하다고 한다. 시장 입구 쪽에 있던 이름 없는 작은 식당도 토끼 고기를 먹는 가게였다. 토끼 고기를 사떼로 만들어 소스를 발라 먹으면 아주 부드럽다고 하는데 우리에 갇힌 토끼들이 너무 작고 귀여워서 먹을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민망하게 생긴 병따개가 가게 입구에 걸려 있다.
▲ 성기 병따개 민망하게 생긴 병따개가 가게 입구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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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남자 성기 조각 병따개가 한 가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게마다 걸려 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남자 성기에 온갖 다양한 색상과 문양을 그려 넣었다. 남자들과 아줌마들은 대부분 픽 웃고 지나가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이 보면 난감할 노릇이다. 신들의 섬, 발리는 신성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세속적이기도 하다.

시장을 나오다 보니 노란색 바나나를 길게 잘라서 말린 과자를 팔고 있다. 먹을 만 해 보여서 사 먹기로 하고 가게 주인이 부르는 가격에서 몇 차례 흥정했다. 가게 주인이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에 바나나 과자를 샀지만, 가게 주인이 과자를 파는 것을 보면 그 가격에 팔아도 이윤이 남는다는 뜻이다. 과자 봉지 안에 바나나 여러 개를 잘라서 넣었기 때문에 과자 봉지는 두툼하다.

여행의 간식거리가 되어줄 바나나 과자는 봉지에 한 가득 들어있다.
▲ 바나나 과자 사기 여행의 간식거리가 되어줄 바나나 과자는 봉지에 한 가득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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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아내는 말린 바나나 과자 2봉지를 더 사자고 했다. 우리의 여행을 도운 차량의 기사 아저씨와 발리 친구 아롬에게 주자는 것이었다. 차에 오른 후 이 친구들에게 바나나 과자를 건네주자 표정이 너무나 환해진다. 그동안의 여행자 중에서 이 시장의 과자를 사서 건네주었던 여행자들이 없었던 모양이다. 

열대과일로 만든 간식거리를 사서 차에 오르니 마음이 왠지 든든하다. 열대의 나라 현지 과육이 100%인 과자이니 출출할 때 먹기에는 제격이다. 나와 아내가 탄 버스는 이제 발리의 고산지대를 내려가 평야 지대를 달리기 시작했다. 섬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넓은 논이 야자수와 함께 아스라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말린 바나나를 먹으며 차 안의 에어컨 바람을 더 강하게 조절했다. 창 밖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평야 지대로 내려선 발리의 날씨는 다시 더워졌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36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브두굴, #짠디꾸닝 시장, #브두굴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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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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