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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기초노령연금, 무상보육, 증세 없는 복지 증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쏟아낸 공약들 중 일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지 1년 6개월여가 지난 현재 각 분야의 공약들이 어느 정도 이행됐으며 체감 지수는 어느 정도인지 세대별, 관심별로 나누어 알아봤다. [편집자말]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 A씨는 휴일 모처럼 집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쉬고 있었다. 남편의 밥을 차리며 부인은 짜증을 부렸고 중학생 아들은 누워 있는 A씨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아빠 왜 일 안 가? 아빠 특근하면 노스페이스 점퍼 하나 살 수 있는데…."

지난해 '현대차의 주간2교대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이 전한 현대차 노동자 가정의 씁쓸한 주말 풍경이다. 대한민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92시간(2012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와 칠레에 이어 3번째로 길다. 가장의 장시간 노동으로 지탱되는 가정의 풍요가 위태롭기 그지없다.

장시간 노동체제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2008년 '커리어'라는 취업포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근무시간'을 가정사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주범으로 꼽았다. 또한 이 때문에 가족 간에 마찰이 증가(64.9%)하고, 주말을 수면으로 낭비(52.7%)하며, 가족과의 대화가 급감(50.5%)했다고 답했다.

비정규 노동자 돕겠다던 강렬한 박근혜의 메시지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대선 당시 노동공약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대선 당시 노동공약
ⓒ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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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노동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휴일 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다.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할 수 있는 현재의 근로시간 특례업종도 축소시켜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했다.

대기업과 공기업이 근로시간을 줄여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약속도 빠뜨리지 않았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고, 청년들을 위해 경찰과 소방관 등 사회안전∙복지 분야 일자리 확대도 약속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가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의 큰 줄기라면,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 보호, 정리해고 요건 강화, 최저임금 인상과 최저임금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강화는 튼튼한 가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존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 상시∙지속적인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차별받는 비정규직에게도 사회보험을 지원하겠다는 대목에서는 세심함이 돋보였고, 불법파견을 엄단하고 비정규직 차별에 징벌적 배상을 물리겠다는 대목에서는 결기마저 느껴졌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종합하여 '늘·지·오(새 일자리 늘리고, 정년을 지키고, 삶의 질 올려)' 정책이라 이름 붙였다. 늘·지·오를 통해 고용율 70%를 달성하여 1997년 이후 무너진 중산층을 70%까지 회복시키겠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 노동정책의 얼개였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기존 새누리당의 입장을 생각하면 커다란 방향전환이었다. 노동으로 주름진 손을 부여잡고 '일하는 당신을 새누리당이 돕겠다'는 정책 홍보지의 메시지는 그만큼 강렬했다.

"대부분의 노동공약이 축소∙폐지 변질"

집권 2년차 박근혜 정부의 노동공약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결과적으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취임 후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의 무게중심은 근로시간 단축보다는 '일자리 늘리기'로 이동했다. "휴일근로를 인위적으로 연장근로에 포함시킬 경우 노사갈등을 촉발하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 시킬 것"(전국경제인연합)이라는 경제계의 반발 때문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역시 기존 낮은 근로조건을 유지한 채 이름만 무기계약직으로 바꿨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 지원은 기존 100%에서 50%로 축소됐고, 비정규직 차별 사업장에 징벌적 배상금을 물리겠다는 공약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정부는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처벌해달라는 노동계의 목소리에도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2013년 11월 26일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2013년 11월 26일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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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차 떼고 포 떼고 '고용율 70% 달성'이라는 구호만 남아 앙상하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공약을 평가한 참여연대는 "정년 60세 연장안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공약이 축소∙폐지되거나 변질되어 이행 중"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 남은 노동공약인 '고용율 70%' 달성을 위해 박근혜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는 비장의 무기를 내놨다. 전일제가 1주 40시간의 풀타임 근로형태라면 시간선택제는 근로자가 사업주와 협의하여 근로시간,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각 등 근로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말한다. 정부는 육아를 해야 하는 여성, 공부를 병행하는 청년, 그리고 점진적으로 퇴직을 준비하는 장년층에게 좋은 제도라며 이를 장려하는 중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고용율 70% 달성? 싸늘한 현장 반응

"전일제 정규직이 아니면 거의 기피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시간선택제, 시간제근로자에 대해 선호하는 사람이 적어요. 어떤 병원에서 저희가 컨설팅을 했는데 '종전에 같이 근무하던 간호사들이 시간제 근로자에 대해서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이라고 지칭을 해서 자기가 그만뒀다'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문형남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솔직했다.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사업의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새누리당 서용교 의원(부산 남구을)의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노사발전재단'은 2013년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사업을 담당했다. 기업이 시간선택제로 신규채용을 하도록 기업을 독려하고 인건비를 지원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취임 초기부터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사업은 삐걱거렸다.

물론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여성 노동자의 경력단절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 스타벅스와 CJ그룹, IBK기업은행 등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신규채용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년 이후 무기계약직을 시간제로 전환하려다 격렬한 반발에 직면했던 이마트의 사례에서 보듯 노동현장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싸늘했다.

더욱이 기존의 기업들 역시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에 소극적이다. 전경련이 지난 8월 국내 3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리서치&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한 206개 기업 중 60.7%가 채용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업무의 연속성과 숙련도가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부는 최근 '시간선택제 시즌2'의 실시를 예고했다. 이번에는 전일제 근로자를 시간선택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핵심내용이었다. 신규채용형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성과가 시원치 않은 탓이었다.

기획재정부가 9월 18일에 발표한 '경제·안전·희망을 위한 2015년 예산안'을 보면 정부는 전일제 근로자를 시간선택제로 전환하는 기업에 대해 월 150만 원 한도의 인건비와 월 20만 원의 노무관리비 등을 지원하기로 정했다.

고용노동부 시간선택제일자 홍보
 고용노동부 시간선택제일자 홍보
ⓒ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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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택제로 줄어드는 퇴직금 어떻게 하나

"공공기관에 다니는 정규직입니다. 회사에서 시간제로 전환을 하라고 하네요. 생각보다 월급도 적고 업무강도는 비슷할 듯합니다. 시간제로 퇴직하면 퇴직금도 줄잖아요. 어쩌죠?"

최근 전일제 노동자가 시간선택제로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피해사례에 대한 노동 상담이 부쩍 늘었다. 해당 노동자는 "말이 시간제선택제지 주어지는 업무량은 같은데 시간이 줄었다고 나만 퇴근할 수 있겠느냐"며 하소연했다. 결과적으로 '업무강도만 세지고 월급만 줄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다.

퇴직금은 퇴직 전 3개월의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해당 노동자의 경우, 사업주와 시간제 근로계약에서 퇴직금 산정 시 시간제 이전 전일제 당시의 임금수준을 배려해주기로 약속하지 않는 이상 불이익을 피할 방법은 없다.

그래도 설마 정부의 정책에 따라 시행되는 시간제 전환인데 방법이 없을까 너무 걱정말라며, 대책을 확인해보고 연락을 주겠노라 답했다. 고용노동부에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 후 퇴직금이 줄어드는 불이익 발생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없겠느냐 물었다. 고용노동부 시간선택제 일자리창출팀 관계자는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답변했다.

결과적으로 상담을 의뢰한 노동자에게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 중이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고 답했다. 미안하고 멋쩍었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에서 일합니다.



태그:#시간선택제 일자리, #박근혜 노동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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