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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등장하는 소년범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 기자 말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의 대부'로 불린다. 하지만 '호통판사' 혹은 '천10호'로 불릴 정도로 엄한 판사이기도 하다.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의 대부'로 불린다. 하지만 '호통판사' 혹은 '천10호'로 불릴 정도로 엄한 판사이기도 하다.
ⓒ 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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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잘사는 것 같지만 우리 아이들(보호소년)은 몹시 배고파한다. 2010년 송년회 때, 아이들에게 삼겹살을 사주었는데 50명이 207인분을 먹고도 모자라 밥을 3~4그릇 먹는 걸 보고 놀랐다. 배가 고프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허기가 심하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보다는 따뜻한 말이다. 아이들의 죄만 보지 말고, 아이들의 가슴 아픈 사정을 들어주고 다독거려주면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소년범의 대부' 천종호(50)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의 부탁이다. 소년재판만 5년째 맡고 있는 천 판사는 처벌과 격리, 낙인과 비난으로는 비행청소년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천종호 판사를 '아빠'라 부르는 것은 자신들의 아픔을 헤아려주고 감싸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고기를 사주고 용돈을 주느라 청빈한 부장판사의 주머니는 더 가벼워지지만 마음만 행복하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사는 한 소년범. 그 아이는 죄를 청산하고 나오겠다며 소년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천 판사는 그 요청을 가슴 아프게 들어주면서 "소년원에서 나오면 연락하라"고 말하며 소년과 할아버지를 위로했다. 그러자 위로받은 적이 없었던 소년과 할아버지가 눈물을 쏟았고, 법정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소년원에 간 소년이 감사편지를 보내오자 천 판사는 아이에게 자신의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와 용돈을 보내주었다.

전국의 소년원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범들도 천종호 판사의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를 읽고 편지를 보내온다. 민지는 꽃 편지를 다섯 번이나 보냈다. 민지는 2013년 5월 천 판사에게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6개월 이상 2년 이내 장기 소년원 송치)을 받고 소년원에 넘겨졌다. 소녀는 천 판사를 처음엔 원망했지만 천 판사가 책을 선물하고 소년원까지 찾아와주자 아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여기서 아이들끼리 어떤 판사님이 10호 처분을 했는지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는 거 같아요. 판사님은 저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예요~ 아이들에게 제 판사님은 천종호 판사님이라 하면 모두들 하나 같이 부러워해요. 그만큼 인기쟁이란 거겠죠? ㅎㅎ 아무튼, 판사님 잘 지내세요. 우리가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빵, 제과, 검정고시까지 다 따고 찾아갈 테니 따듯하게 맞아주세요. 제가 기도할 때마다 판사님 기도도 빠지지 않고 해드릴게요.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2014. 3. 31.

민지는 천 판사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회복되고 있다. 거친 욕을 하던 입에선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라는 고운 말이 나온다. 가장 큰 소득은 가족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민지는 편지에서 "(소년원에) 보내주셔서 제일 감사한 것이 있다면 친구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안 것이고, 꿈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민지가 천 판사의 책을 읽고 쓴 '시간은 흐른다'라는 제목의 시는 소년원 백일장 대회에서 우수작으로 뽑혔다.

오늘도 한 아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재판에 참석했다
지난날의 후회 그칠 줄 모르는 눈물
진심어린 고백을 눈물로 말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오늘도 부모님은
찢어지는 마음으로
재판에 참석했다
밀려오는 후회 깊어지는 한숨
지난날을 가슴에 묻고 고개를 떨군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오늘도 판사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재판장에 섰다
때로는 호통으로 때로는 다정하게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김없이 달린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그 아이들은 왜 소년범이 됐을까?

 소년원 아이들이 천종호 판사에게 보내온 편지.
 소년원 아이들이 천종호 판사에게 보내온 편지.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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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성현이는 천 판사에게 9호 처분(6개월 이내 단기 소년원 송치)을 받았다. 성현이는 초등 4학년 때 전교생 중에서 유일하게 PELT(국가공인 민간자격 실용영어시험) 1급을 취득했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없다고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고, 중학교에 가선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그리고 알바로 어렵게 장만한 MP3를 친구가 훔쳐가서 망가뜨렸는데도 그 아이는 처벌받지 않았다.

'아니 왜 벌을 주지 않지? 그럼 나도 벌을 안 받겠지'라는 생각으로 휴대폰 대리점 가판대에서 스마트폰을 훔쳤다가 보호처분을 받았다. '왜 나만 처분을 받나'라는 반감이 생긴 소년은 상해와 사기사건 등을 저지르다 천종호 판사에게 재판을 받았다. 성현이는 부산소년원에서 생활하던 지난 3월에 편지를 썼다. 소년의 편지엔 분노 대신에 꿈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천종호 판사님을 본 순간, 너무 기뻤습니다. 이제 엄마만 오면 나도 '엄마, 죄송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저도 (엄마에게) '아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계속 울었어요. 20년 소원이 엄마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엄마에게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건데 그게 무너졌으니 아무 말도 못하겠던 거예요.(중략)

'아, 우리 가족은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그저 웃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끝장을 볼 요량으로 9호 담임 선생님께 집에 전화 좀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전화를 받고는 '성현아, 엄마가 가지 못해 미안하다. 남동생이 몸이 안 좋아져서 가지 못했어. 우리아들, 엄마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에 눈물이 쏟아지려 했지만 참았습니다. (엄마의) 그 말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판사님, 저를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에 9호를 받았을 때는 판사님을 엄청나게 욕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거랑 틀리다, 제대로 심리도 안 한다 등등 엄청난 험담을 했는데, 처음부터 돌아보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도 판사님처럼 만사소년의 정신을 본받아서 멋진 검사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 검사신분증을 목에 걸고 가정법원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제 저의 이탈은 끝이 났습니다."

열아홉 살 태웅이는 중범죄를 저질렀다. 강간치상과 상해, 특수절도 등의 범죄로 4년8개월을 선고받았다. 방송을 통해 천 판사를 알게 된 태웅이는 접견 온 엄마에게 천 판사의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넣어달라고 해서 읽고, 눈물 흘리고, 뉘우쳤다. 그리고는 난생 처음으로 11장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천 판사만큼은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폭행과 사랑의 매의 차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의 폭행을 사회에서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위장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의 매라는 말이 가증스러운 단어, 사랑의 매=폭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판사님은 재판을 통해 벌을 주시기보다는 치유와 회복을 목적으로 하시고, 소년들과 소통하시려는 모습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고 감동스러웠고, 존경스러웠습니다.

판사님을 TV로 잠깐 봤을 때, '겉으로는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범죄자에 대해 혐오하고 분노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판사님의 책을 읽으며 판사님의 마음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우리 같은 범죄소년들에게 이토록 관심을 가질까?' 하는 의문과 동시에 너무 감사하고, '세상에 이런 분도 있구나! 아직 세상은 아름답다, 나도 커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감격과 동시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소년은 아픈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소년은 아버지의 잦은 폭행에 반발해 가출했다가 특수절도죄로 보호처분 등을 받았다. 아버지에게 더 혼난 소년은 새 출발을 하려고 검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사건에 휘말리면서 또 가출했다. 경찰에 쫓기던 태웅은 술과 유흥에 빠져 지내다 중범죄자가 됐다고 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면회 온 아빠의 눈물을 보면서 미움은 사라지고 미용사라는 꿈이 생겼다고 했다. 태웅이의 편지는 이렇게 이어졌다.

"워낙 강인한 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면회 하시면서 눈물 흘리는 것을 봤는데, 태어나서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행동과 방법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서툰 것뿐이지 그것도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걸 이곳에서 뒤늦게 깨우쳤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많이 사랑합니다.

가끔 꿈에서 가족들과 외식하는 꿈을 꾸다가 아침 기상음악에 잠에서 깨면 '아, 여기는 구치소였지' 하곤 합니다. 판사님, 저의 꿈은 미용사입니다.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훌륭한 미용사가 되어 부모님의 머리도 잘라드리고 예전의 저같이 방황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면 살아가겠습니다. 판사님의 책으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달았고,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판사님께 대단히 감사합니다."

희망을 품은 소년원 아이들... 판사님 사랑해유

 천종호 판사에게 보낸 소녀의 편지
 천종호 판사에게 보낸 소녀의 편지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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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판사는 자신이 처분한 아이들과 편지를 보내온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과 창원소년원뿐 아니라 안양소년원까지 찾아간다. 그의 발길이 닿으면 세상과 어른을 지독하게 원망하던 아이들의 분노가 희망으로 바뀐다. 안양소년원 생활 중에 자격증 여러 개를 딴 은지는 대학진학을 꿈꾸게 됐다.

"판사님, 부산에서 안양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때 판사님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웃고 그러니 정말 좋더라고요. 판사님 말씀대로 (소년원에 보내서) 저를 살리신 것 같아요. 밖에 있었더라면 아직도 방황하고 있었겠죠. 여기 온 게 잘됐다고 생각해요. 밖에서 따기 어려운 자격증도 다 따고! 헤헤 저 이제 나가려면 두 달 정도 남았어요. 그때까지 또 따야 할 자격증이 4개 정도 되는데 꼭 따고 밖으로 나가 바로 연락드릴게요. 제 연락 꼭 받으셔야 해요 ㅎㅎ 제가 밥 사드릴게요! 그럼 판사님 사랑해유." - 2014. 6. 9.

천수는 소년원에 갔다 와서 또 다시 사고를 치면서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천수는 한 일간지에 실린 천 판사 기사를 읽고 편지를 썼다. 부모는 물론이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혐오 대상자였던 소년은 천 판사를 통해 용서를 경험하면서 짓밟힌 존엄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천수는 천 판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저희 비행청소년의 범죄를 묻기 전에 저희들의 상처를 물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는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라는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가족이 저를 위해 울어주고, 아파했던 것들을 잊고 살았습니다. 저희의 상처를 알아주시는 판사님, 판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판사님이 저희의 입장이 되어 주시려 하기에 저희는 힘이 납니다." 2013. 2. 22.

비행청소년 문제 해법은 '처벌'보다 '관용'

 창원의 한 학부모가 보내온 편지. 이 어머니는 꿀에 재운 레몬티를 보내면서 "판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했다.
 창원의 한 학부모가 보내온 편지. 이 어머니는 꿀에 재운 레몬티를 보내면서 "판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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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셨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놈의 새끼야, 돈 안 가져 왔는데 뭐하러 학교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 <신창원 907일의 고백> 중에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지난해 3월 천 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 판사의 책을 읽고는 <신창원 907일의 고백>에 나오는 글이 떠올랐다고 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며 품어주었다면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우 교육감은 2011년 말부터 학교폭력과 청소년범죄가 심각해지자 무관용의 원칙으로 학교폭력근절대책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천 판사의 책을 읽고서 가해학생들이 낙인 받지 않도록 관용정책으로 바꾸었다면서 "재범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교에서부터 따뜻하게 품어주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비행청소년도 대한민국의 아들딸임을 알고 존중해야 한다"고 천 판사의 생각에 동조했다.

직장맘인 우주 엄마(38)는 지난 1월 천 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지만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다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차피 세상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니까요"라면서 "결혼해서 애만 낳으면 부모가 되는 현실 속에서 성숙하지 못한 부모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 주면서 살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한국 사람들은 남에게 기죽지 말라고 가르친다"면서 "아이들 학원 보낼 시간과 돈으로, 부모들이 책도 읽고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주면 참 좋겠다"고 바라면서 보호소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판사가 꿈인 중학교 1학년 현중이는 지난해 10월 편지를 보내왔다. 대개 그렇듯이 소년 또한 판사를 꿈꾼 것은 부모 때문이다. 강요받은 꿈으로 인해 소년은 막연하고 불안했다. '과연 내가 판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다 꿈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진로 수업 중에 천 판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희망이 생겼다. 나도 천 판사처럼 되고 싶은 희망, 그래서 직접 만나고 싶어졌다.

"많은 판사님들이 계시지만 저는 청소년 판사 중에 꼭 천종호 판사님과 같은 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인격적 롤모델이시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청소년 법정 판사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청소년들의 멘토가 될 수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가능하시면 꼭 연락해주세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 2013. 10. 9.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 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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