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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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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한 소년범이 소년법정에서 "판사님, 잘못했습니다!"라고 울며불며 선처를 구했다. 판사의 엄벌을 우려했는데 판사의 입에선 사과의 말이 나왔다. 소년범들의 비행 이면에는 '문제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판사는 부모와 사회의 잘못을 대신해서 "어른인 우리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죄는 밉지만 그 아이들의 아픔을 안아주면 소년범들도 진심으로 뉘우친다.

천종호(50)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성인 못지않게 그악한 소년범들은 엄벌에 처한다. 자식들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그들을 문제아로 만든 부모들은 무섭게 호통 친다. 그래서 '호통판사'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별칭은 '소년범의 아빠'다. 그는 훈계와 처벌에 그치는 응보적 방식보다는 회복적 정의 즉,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료하고, 대변하는 것을 추구한다. 세상을 향해 "아이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안아주면 아이들은 회복되고, 세상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호소한다.

소년범의 70%는 결손가정과 저소득 빈곤가정 출신이며 부모는 사망했거나 행방불명, 이혼과 별거,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 등에 처한 경우가 많다. 부모의 양육과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소년들은 흡연, 음주, 가출, 도벽, 폭력 등의 문제행동을 보인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 몰려다니며 비행을 일삼고, 분노의 폭력을 휘두르다 범죄에 노출된 소년들….

소년범들은 죄를 잘 뉘우치지 않는다. 강자 중심의 세상에서 일방적인 편파 판정에 당했다는 억울함 때문이다. 이 아이들도 원래는 꽃이었다. 하지만 하도 당하면서 칼이 됐다. 자기 자식만을 끔찍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는 비행청소년과 소년범들을 위험인물로 낙인찍어 추방시켰다. 소년범, 이 아이들은 추방된 투명인간이다. 세상에 존재치 않는 아이들이 주목받는 것은 끔찍한 범죄로 뉴스에 등장할 때이다.

빈민가 출신의 판사, 그는 왜 부귀영화를 포기했나

 천종호 부장판사
 천종호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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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부장판사는 1997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해 올해로 18년째 판사생활을 하고 있다. 2010년 2월 창원지법에 부임하면서 소년재판을 시작했으니 소년재판 전담판사로만 5년째다. 천 판사처럼 소년판사를 오래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개는 1년~2년가량 맡다가 이동한다.

소년재판은 인기가 없다. 퇴임 후에 변호사로서 전관예우의 특혜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식이 재판에 넘겨져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부모들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다. 그러니 소년재판 전담판사 경력은 퇴임 후의 수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왜 그는 판사들이 꺼리는 소년재판 전담판사를 고집할까.

경남 산청이 고향인 그의 가족은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산의 대표적 빈민가였던 아미동으로 이주했다. 7남매 중 4번째로 장남인 그는 단칸방에서 아홉 식구와 비좁게 살았고, 육성회비를 못 내 학교에서 쫓겨난 적도 많았다.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서 점심 때면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가난과 절망의 수렁에 빠진 빈민가 아이들은 비행청소년이 될 확률이 높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 나온 주인공 조폭 중 한 명이 실제로 그의 동네친구다. 그에게 꿈이 없었다면 그 또한 비행청소년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의 꿈은 판사였다. 극빈을 벗기 위한 꿈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부모는 등록금을 대줄 형편이 못 됐다. 가족이 다 잠든 뒤에 일어나 밤샘 공부를 하며 가난을 벗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대학 진학도, 판사의 꿈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친구의 도움으로 입학원서 접수 마감 1시간 전에 부산대 법대에 원서를 접수하며 대학생이 됐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휴학해야 했기에 억척 같이 공부했지만 판사의 꿈은 멀었다. 사법고시에 다섯 번 떨어지고, 여섯 번 만에 합격했다.

동기에 비해 늦깎이 판사가 된 그는 부모의 당부처럼 가난한 형제들을 돕고 싶었다. 위로 누님 세 분은 아직도 가난하고, 동생은 자신 때문에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중졸의 학력으로 가난하게 산다. 7남매 중에 대학을 나온 사람은 천 판사, 자신이 유일하다. 부모형제를 가난에서 구할 책임이 있는 그는 퇴임 이후 능력 있는 변호사가 되려고 사법연수원에서부터 술로 인맥을 쌓았다. 이대로만 하면 능력 있는 변호사가 되어 형제들의 가난을 덜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가 제동을 걸었다. 이렇게 살기 위해 판사가 됐냐고, 명예와 부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아내의 항의와 간청을 받아들인 그는 10년간의 노력을 수포로 돌렸다. 술을 끊고, 인맥 쌓기를 중단하자 주변에 끓던 사람들이 서서히 떠났고, 소년재판 판사의 길을 걷자 전화조차 오지 않았다. 빈민가 출신의 판사, 그는 개천에서 난 용이지만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아닌 약자 편에 서야만 했다.

그는 지금 '욕망의 절정기'인 50대다. 그런데 부장판사인 그는 집 한 채 겨우 장만했다. 작년에 주택할부금을 다 갚으면서 비로소 '내 집'이 됐다. 그는 빈민가에 금의환향할 수도 없고, 부모형제를 돕는 금력의 판사도 될 수 없다. 이젠 소년범의 대부로서 살아가야 한다.

SBS <학교의 눈물>과 KBS <두드림> 등에 출연하면서 그는 소년범의 대부로 알려졌고, 이제는 비행청소년을 처벌하고 격리하는 응보주의 방식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회복적 정의사회가 되어 버려진 아이들을 안아주면 아이도 살고 사회도 산다고 호소한다. 그는 좁고 힘든 이 길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이 길을 가게 된 것은 아내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엄격한 파수꾼이다. 소년범의 아픔을 다룬 그의 첫 번째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가 제법 팔렸다. 그래서 인세(3500만 원) 중의 일부로 형제를 돕고 싶었으나 아내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의 아픔을 알리려고 쓴 책이니 우리에겐 그 돈을 사용할 권리가 없어요. 그러니 인세 중에서 1원이라도 손대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인세 전액을 '사법형그룹홈' 운영진들에게 기부했다.

소년범을 살리는 대안가정 '사법형그룹홈'

 보호소년을 돕는 단체 '어게인' 창립행사에 참석한 천종호 부장판사(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보호소년을 돕는 단체 '어게인' 창립행사에 참석한 천종호 부장판사(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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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직무에 충실하란 말이지만 금과옥조는 아니다. 창원지법에 부임해 소년재판을 맡은 천 판사는 고민에 빠졌다. 재비행하고, 재판받고, 소년원 갔다가 또 다시 재비행해서 잡혀오고, 또 재판받고, 또 소년원 가고…. 한 소년범을 다섯 번이나 재판한 경우도 있었다. 보호자가 없는 소년들은 소년원을 마치고 사회에 복귀해도 돌아갈 가정이 없기에 재비행의 늪에 빠진다.

그 또한 판결로 말하는 판사다. 판결로만 말하면 판사의 안락함과 권위는 자동으로 보장된다. 하지만 소년재판은 달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소년법의 덕목은 관용과 용서에 있고 그래서 처벌보다는 회복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라며 "피해소년이든 비행소년이든 모두 건강하고 건전하게 육성되어야 우리의 장래가 밝다"고 강조한다. 소년범의 구조적인 악순환을 파악한 그는 판결과 권위 뒤로 숨지 않고 소년범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해답은 따뜻한 가정이었다. 부모와 사회에 버림받고 떠돌면서 아이들은 비행청소년이 된 것이다. 그는 소년범을 따듯하게 돌볼 사람들을 찾아 법정 밖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창원과 부산지역 종교계 인사와 사회복지 관계자들에게 대안가정 '사범형그룹홈'(일명 청소년회복센터)을 만들어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처음으로 '사법형그룹홈'이 창원에 만들어졌다.

사법형그룹홈은 법원으로부터 위촉된 신병인수위원이 자비로 집을 마련해 공동생활가정을 만들면, 판사가 소년범들을 위탁하고, 신병인수위원은 부모를 대신해 소년범들을 돌보는 대안가정이다. 하지만 일반 그룹홈(공동생활가정)과 달리 '사법형그룹홈'은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지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헌신과 희생이 아니면 운영할 수 없는 구조다. 천 판사에 의해 만들어진 '사법형그룹홈'은 9월 현재 창원 6곳, 부산 6곳, 서울 1곳 등 전국에 모두 13곳이 있다.

'사법형그룹홈' 운영 결과, 소년원에 보낸 경우 70%대의 재비행률을 보인 반면 사법형그룹홈에 보낸 경우엔 20%대 재비행률로 낮게 나타났다. UN은 아동권리협약을 통해 소년들의 인권보호와 정서안정 그리고 사회 안정을 위해서는 소년원 등의 대규모 시설보다는 가정위탁(그룹홈)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사회복지 선진국들은 지역사회에 설치한 가정(그룹홈)에서 소년범들을 돌보면서 소년범죄를 줄이고 있다.

천종호 판사는 "소년원 등의 대규모 시설에서는 소년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어렵고, 상처가 낫지 않은 아이들은 사회에 복귀하면 재비행하게 된다"면서 "그룹홈이 재비행을 막는 데 가장 적합한 시설임이 나타났지만 사법형그룹홈 운영자의 희생과 헌신에 의해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에필로그, 천종호 판사의 편에 서고 싶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 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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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과 7월 그리고, 9월 19일까지 천종호 판사를 세 차례 만났다. 그리고 여러 차례 통화를 하면서 보호소년에 대한 아픔과 사법형그룹홈 지원을 위한 법률개정 등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다. 국가와 사회는 물론이고 종교계까지 소년범을 외면하고 있기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이 길을 가는 것이다. 아무도, 그 누구도 소년범을 돌보지 않기에 더욱 무거운 책임감으로….

대한민국 판사는 상위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위 인생인 비행청소년의 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판사인 그에게서 법복의 권위가 아닌 사랑의 진정성을 느꼈다. 그는 법정의 판사이기도 하지만 소년범과 사회를 치유하려는 세상의 판사이다.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소년범의 편에 서겠다는 대한민국 부장판사 천종호, 내 가슴을 울린 그의 말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그이처럼 소년범 편에 서련다.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 편에 서서 살아갑니다. 그래야 이익이 커지니까요. 그 누구도 우리 아이들(소년범) 편에 서지 않으려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외롭고 상처 입은 우리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트립니다. 그러니 저라도 아이들 편에 서야하지 않을까요. 그 아이들 편에 아무도 없는 사회는 망하는 사회입니다. 비행청소년들도 대한민국의 희망이고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조호진 기자는 보호소년과 함께하는 '어게인' 대표이며 사법형그룹홈인 '어게인그룹홈'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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