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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모든 산을 수렵했다는 이병천 박사가 수령이 100년이 넘어 보이는 신갈나무에서 동공이 없이 깨끗한 상태의 수목은 보기 힘든 지경이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전국에 모든 산을 수렵했다는 이병천 박사가 수령이 100년이 넘어 보이는 신갈나무에서 동공이 없이 깨끗한 상태의 수목은 보기 힘든 지경이라며 사진을 찍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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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부터 가리왕산(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는 벌목이 진행되고 있다. 3일간 열릴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활강스키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경기장 공사를 앞두고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는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초하류 희귀식물을 이식할 것을 명시했다. 이식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원주지방환경청, 동계올림픽조직위, 산과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 녹색연합과 시공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23일 오전부터 공동조사가 진행됐다.

환경영향평가서의 '초본류 희귀식물 11종에 대한 이식계획'에 따르면 슬로프 조성 계획에 맞추어 산마늘, 금강제비꽃, 병풍쌈, 금강애기나리, 노랑무늬붓꽃, 강릉갈퀴, 산작약, 백작약 등을 이식해야 한다. 식물들은 가식장 내에 가적치된 후 슬로프 좌우의 유사 환경지 및 리프트 하단 훼손지에 이식될 예정이다.

조사단은 활강코스가 만들어질 7부 능선까지는 차량을 이용해 올랐고 이후 상층부는 수목을 헤치면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가 시작되기 전 관목과 초본류에 대한 리스트를 시공사에 요구했으나 시공사는 아래 사업소에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환경단체가 "자료도 없이 무슨 조사냐"라고 항의하며 한동안 실랑이가 오갔다.

산림생태를 전공한 농학박사이자 우이령사람들의 회장인 이병천 박사는 "지금 상태에서 조사를 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겠지만, 정확히 이식이 되었는지라도 확인해야겠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지난번 조사에서는 백작약, 신작약이 지천에 널렸는데 지금은 다 녹아서 없어졌다"며 "금강제비꽃은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세계적으로 강원도에만 서식하는 희귀식물이다"라고 강조했다.

짓밟힌 희귀 식물 곳곳에 눈에 띄어

일행이 조사를 시작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에 금강제비꽃과 등치 등이 발견됐다. 이병천 박사는 "희귀식물 이식이 눈가림 식으로 진행됐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여기저기에 벌목되어 널브러진 신갈나무를 끌어안으면서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거대 수목"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유전자원으로 소중한 나무인데 이렇게 베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박사는 또 "신갈나무는 보통 50년 정도면 동공(구멍)이 생기는데 여기에서 발견되는 80~100년 정도 된 나무들은 동공 하나 없이 깨끗하다"라며 "참 대단하다"고 연신 감탄했다.

곳곳에 거대한 지름의 수목들이 베어져 있다.
 곳곳에 거대한 지름의 수목들이 베어져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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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1m, 족히 20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갈나무를 발견하면서 가리왕산에 가장 거대한 신갈나무로 국내 최대직경으로 추정된다.
 폭 1m, 족히 20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갈나무를 발견하면서 가리왕산에 가장 거대한 신갈나무로 국내 최대직경으로 추정된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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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반 인천녹색연합 대표는 수령이 20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갈나무를 발견했다. 유 대표는 폭만 1m 가량 되어 보이는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가리왕산에 가장 거대한 신갈나무로 국내 최대 지름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인근에서 이식대상인 분비나무를 찾아냈다. 유 대표는 "기후변화로 사라지고 있는 나무라 환경영향평가서 상 이식 가능 수목으로 분류되어 있다"며 "이식 가능한 어린 수목은 이식하도록 되어 있는데 베어져 버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유 대표는 현장을 감시하는 정주영 자연환경복원연구원 팀장을 찾아 분비나무가 베어진 이유를 물었다. 정 팀장이 "(분비나무는) 이식 수목이 아니어서 작업자가 베어 버린 것 같다"고 답하자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조사가 끝나고 이병천 박사는 "현장에 식생 전문가와 분류 전문가가 배치되었음에도 이식 가능한 식생들이 잘려나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박사는 "올림픽 이후에는 '복원'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급하게 일을 진행하면서 복원을 위한 절차를 하나도 진행하지 않았다"며 "기초 자료가 없어서 복원에 어려움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종반 대표는 "특별법에 의해서 진행하는 사업인데 가장 중요한 상부 노른자가 뭉개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 대표는 "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는 희귀종 11종을 전량 이식하기로 되어 있다"며 "그런데 시공사 측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구역의 희귀종만 이식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이어 "서로의 의견 차이 때문에 판단이 어렵다"며 "분비나무도 이식이 되어야 하는데 (시공사는) 자신들이 정해놓은 수량만 이식하겠다고, 평가서 해석을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 대표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무너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전욱찬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직원은 "초하류 희귀종은 토양까지 한꺼번에 떠서 옮겨야 하는 만큼 어려움이 많다"며 "더 많은 이식은 주변에 살아가는 초하류의 식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대체부지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고 하소연했다.

조사단이 초하류인 금강제비꽃 이식지에서 현장을 살피고 있다.
 조사단이 초하류인 금강제비꽃 이식지에서 현장을 살피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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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리왕산, #동계올림픽,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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