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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중국 충칭시 량장신구의 전경.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으며 일부 건물들은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1년 중국 충칭시 량장신구의 전경.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으며 일부 건물들은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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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라고 설계를 안 하는 학생이 있다. 출석 점수라도 받으려고 수업은 꼬박꼬박 들어온다. 다른 학생들이 발표와 토론을 할 때면 멀찍이 뒷자리에 숨는다. 얼마 못가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한쪽 다리를 산만하게 떨어댄다.

매 학기마다 이런 학생이 한 명씩은 있었다. 대개 성적에 맞춰서 건축학과에 오거나 부모에게 떠밀려 온 학생이었다. 어느 전공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 공포가 된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까지 주입식 교육을 받은 신입생들이 설계수업을 들으면 건축이 도대체 공학인지, 인문학인지, 미술인지, 그 영역조차 아득할 때가 많다.

나도 그랬다. 대학교 설계수업 발표시간마다 집요하게 쏟아지는 질문을 받다 보면 답도 없고 끝도 없는 설계과정이 그저 막막했다. 졸업 후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참여했던 작품이 드디어 건물로 세워졌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츰 그 건물의 디자인 한계가 보이고, 설계자의 의도와 달리 사용자가 불편해하거나, 건축의 의미가 개발과 투자가치의 잣대로 폄하될 때, 좌절했다. 한국 사회에서 규정된 건축가의 역할에 실망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건축이 답도 없고 끝도 없어서 재미있었고 부딪쳐야 할 일이 많아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한때는, 건축가란 사람과 사회를 건축의 언어로 해석하는 소설가이면서 공간의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라고까지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 대책 없는 낭만이나 이상이 없었다면,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건축가의 현실, 박봉에 밥 먹듯이 하던 야근과 철야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건축은 공부든 실무든, 하면 할수록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하물며 뭐가 뭔지 모르고 덜컥 건축학과에 들어온 학생들에겐 설계수업이 고민거리가 아니라 고문거리가 될 수도 있다. 건축설계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판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남다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하여 머리를 쥐어짜야 하고, 도면과 모형을 만들기 위하여 몸을 부지런히 써야 하며, 그 둘을 위하여 밤을 새워야 한다.

3학년 학생의 멀티컴플렉스 설계안
 3학년 학생의 멀티컴플렉스 설계안
ⓒ Liu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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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나 흥미가 없으면 잘 하기는커녕 버텨내기도 힘들다. 버티다 못해 자신의 적성을 찾아 건축학과를 떠나면 차라리 낫다. 그렇지도 못한 학생은 졸업장 하나만 바라보고 무기력하게 학교를 다닌다. 건축학과에 수석으로 입학을 하고서도, 설계시간만 되면 몸을 배배 꼬거나 다리를 떨다가 겨우겨우 졸업한 중국 학생도 있었다.

설계 수업은 잔머리만 잘 굴리면 요령껏 때울 수가 있고 시험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학점이라도 받으려면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도면과 모형을 제출해야 한다. 그것들은 한 학기 동안 노력한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한 학기 내내 눈치껏 얼렁뚱땅 과제물을 해온 학생이라도 그것만큼은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간혹 막판에 가서 급조된 짝퉁 설계를 내미는 학생이 있었다. 그런 학생은 베끼더라도 해외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아닌, 내가 알지 못할 중국 설계 사무소의 작품을 선택했다.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서, 그래야 들통이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학생은 체면 따지고 한국 학생은 실속 따진다

하지만 짝퉁 설계자의 작전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왜 그럴까? 건축의 형태만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지의 조건이나 특성, 기능,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건물 껍데기만 베낀다. 예를 들어, 칭다오 바닷가 근처 개발구에 가전 업체 하이얼(海尔) 본사를 설계한다고 치자. 이때 북경 시내에 있는 고층 임대형 오피스 빌딩을 베낀다면? 물론 기본적으로 업무시설이라는 공통점은 있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가까운 건물은 주변 건물의 조망권과 자연경관을 고려해야 한다. 무턱대고 건물의 층수를 높일 수도, 옆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뚱뚱한 건물을 지어서도 안 된다. 게다가 한 회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사옥과 불특정 다수의 회사가 세를 드는 임대형 사무실은 형태뿐 아니라 실내 공간 계획도 다르다. 설계 내용도 그렇지만, 발표하는 태도를 봐도 티가 난다. 발표 내용이 충실하지 않고, 중간에 질문을 받으면 횡설수설한다. 본인이 뭘 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3학년 학생의 리조트호텔 설계안
 3학년 학생의 리조트호텔 설계안
ⓒ Xu 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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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낀 사실이 다 드러났을 때 중국학생이 대응하는 방식은 한국학생과 달랐다. 한국학생이라면 보통 몇 번 변명을 하다가 다시 하겠으니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을 한다. 반면 중국학생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베껴도 너무 엉성하게 베껴서 도면끼리 치수가 안 맞아도 자기가 했다고 우겼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서, 불현듯 이것도 문화의 차이일까? 중국에서는 시인을 하지 않으면 잘못이 성립되지 않는 이상한 문화라도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중국에도 범법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정상참작이 되어 형량이 경감되기도 한다. 그럼 왜지? 그런 일을 몇 번 겪은 후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곧 죽어도 체면'이라는 중국인 특유의 체면의식이었다. 공개적인 발표시간에 훤히 들통이 난 상황에서 체면의식으로 똘똘 뭉친 아이가 당장 내세울 카드는 오리발밖에 더 있을까 싶어서였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오리발을 내밀어도 내가 F 학점을 주면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하긴 성적은 비공개적으로 처리되니까. 그럴 때면 예전에 한국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이 또 떠올랐다. 한국 학생이라면 이런 저런 사정을 설명하고 한 번만 봐주면 앞으로는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장문의 메일을 보냈을 텐데. 중국 학생은 체면을 따지고 한국 학생은 실속을 따지는 걸까, 싶어서 픽 웃음이 나왔다.

사실 디자인 베끼기는 중국이든 한국이든 학생뿐만 아니라 설계사무소에서도 한다. 차이가 있긴 하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중국은 대놓고 통째로 베끼지만, 한국은 요령껏 짜깁기를 한다. 그게 들통이 나면 중국인은 배를 딱 내밀고 '절대로 안 했다!' 잡아떼지만, 한국인은 '응용'이니 '차용'이니 '재해석'이니 늘어놓는다.

그렇게 '응용'된 디자인은 해당 대지와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고 외국의 특정 건축가를 연상 시키곤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설계사무소 신입이었을 때만 해도, 소장이 건축잡지에 소개된 어느 건축가의 근작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어허, 이 양반, 이번엔 좀 심했네!"

마침 수업시간에 짝퉁 설계가 나온 김에, 나는 학생들에게 짝퉁 산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의외로 학생들은 그 문제점과 폐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문화선진국이 되려면 짝퉁 산업은 없어져야 하고 저작권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했다. 남의 이야기랄 것도 없이, 자신들이 장차 건축가가 되었을 때 애써 만든 작품을 누군가 도용을 한다면 곤란하다고 했다.

중국에서 짝퉁산업이 필요악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럼에도 중국에서 짝퉁산업이 필요악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들을 학생들은 짚어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짝퉁산업'은 개발도상국이 기술 습득을 해 나가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을 때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상태에서 선진국의 기술을 익히려면 베끼고 모방하는 것부터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삼성이나 현대도 예전에는 일본 제품을 베끼면서 성장하지 않았나, 그런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기술력과 자신감이 생기면 짝퉁문제는 차츰 해결될 것이다.

그들은 또 이런 지적도 했다.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짝퉁산업은 특히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14억이나 되는 인구에 극심한 빈부격차로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중국에서 짝퉁 제품의 주요 소비자는 도시빈민과 농민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비싼 정품을 살 수 있겠나, 그렇다고 아무 것도 사지 않고 생활할 수도 없다, 농민공은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짝퉁 핸드폰이 필요하고, 돈이 없는 학생은 값싼 짝퉁이 아니면 컴퓨터를 살 수가 없다, 그렇게 짝퉁 제품을 사서 공부를 하고 돈을 번다.

짝퉁 제품이 사회적 약자에게 생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이미 학생들도 알고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의 미래에 대하여 말했다.

"여러분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자신의 설계를 하기 시작할 때가 언제일까?"
"대략 10년쯤 후?"

학생들이 대답했다.

"그럼, 그때에도 중국은 짝퉁을 만들고 있을까? 그때에도 중요한 디자인은 엄청난 돈을 들여 외국 건축가에게 사고, 한쪽에서는 그걸 또 베끼고 있을까?"
"당연히 아니죠. 건설 회사들은 벌써 해외로 진출한 걸요."

학생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여러분이 지향하는 설계는?"
"... 창의적인 설계?"

학생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눈치를 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배우는 동안에도 남의 것을 베끼면 여러분의 창의력은 언제 어떻게 길러질까?"
"....."

대답이 없었다. 그것은 수긍의 의미였다.

"여러분에게 그때가 오면 뭘 해. 창의력이 없는데!"

나는 못을 박았다.

"....."

그들은 이미 꼬리를 내렸다.

"어때, 미래의 건축가들, 이제부터라도 10년, 20년 후를 생각하면서 공부를 해보는 건?"
"하오!"

학생들의 씩씩한 목소리가 설계실을 울렸다.

지난 3월 21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세워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DDP는 자하 하디드의 3차원 설계로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6만2천692㎡ 부지에 총면적 8만6천574㎡, 최고높이 29m, 지하 3층과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지난 3월 21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세워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DDP는 자하 하디드의 3차원 설계로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6만2천692㎡ 부지에 총면적 8만6천574㎡, 최고높이 29m, 지하 3층과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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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 후 충칭(重慶) 메이콴 빌딩이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을 베낀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충칭에서 베낀 건물이 먼 나라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베이징에 짓고 있는 39층짜리 '왕징 소호'였다. 자하 하디드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건축가로 중국에서도 많이 소개되었다.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도 그녀의 작품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볼 수 있듯이, 유선형의 비정형적인 형태를 구사하는 그녀의 디자인은 기존 건축이 가진 고체의 물성이 해체되고 촉감적인 느낌마저 준다. 그만큼 누가 설계한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그렇게 눈에 확 튀는 건축가의 작품을, 그것도 자국의 베이징에 곧 세워질 건물을 베꼈다. 베낀 충칭 회사의 배포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허가해준 충칭시도 대단하다. 해당 건축회사는 강력하게 부인하며 오리발을 내밀다가, 나중에야 "베낀 게 아니라 능가하고 싶었다"는 변명을 했단다.

충칭의 짝퉁설계가 한국 언론에 나왔을 때, 기사마다 '짝퉁왕국', '창의력 부재'란 말이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만약 내가 중국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했더라도 10년 전이었다면, 나는 그 기사만으로 오래 전에 들었던 세계의 공장 이미지를 떠올리며 중국의 현대 건축은 죄다 짝퉁이려니 하는 선입견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활하면서 본 중국 건축의 흐름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설계실의 학생들이 그렇듯이, 건축계도 뒤에서 남의 것을 베끼는 그룹, 앞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그룹, 그 중간쯤에서 현실의 속도를 맞추는 그룹이 있다.

각 그룹들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건축문화 수준이 나온다. 중국의 경우 최소한 베이징 올림픽 이후부터 그 비율 구성이 제법 달라지고 있다. 중국에서 불쑥불쑥 세워지는 새 건물들을 볼 때마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 건축가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을 한 도시에서 보려면 베를린으로 가라! 이제는 그 말에서 도시 대신 국가, 베를린 대신 중국을 넣으면 딱 맞다.

많은 국가들이 경기침체로 건설 경기가 엉망인데도 중국은 어딜 가든 공사현장으로 시끌벅적하다. 엄청난 자본력에다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를 알아보는 개발회사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 건축가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 건축가의 작품을 두고 전통 단절과 지역성 파괴라고 비판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건축이라며 환영을 한다. 한쪽에서는 베이징 서민들의 삶터인 사합원과 후통을 몰아낸 자리에 외국의 건축가들이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을 디자인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젊은 중국인 건축가들이 전통 공간을 현대적으로 살려낼 디자인을 내놓는다.

그렇게 도시개발과 건축에 대한 다양한 논쟁과 대안이 보글보글 일어나는 과정이 학생들에겐 의미가 있다. 거기에 경제력과 과감한 추진 주체, 무엇보다 건축의 내수시장이 넓어서 중국의 건축학과 학생들은 볼거리, 들을 거리, 할 거리가 많아진다. 그러니 기성세대와 다른 건축 환경에서 성장하는 그들의 10년 후는 분명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태그:#칭다오이공대, #왕징소호, #중국대학건축과, #자하 하디드, #짝퉁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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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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