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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선선한 가을밤. 지친 일상을 위로받고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뒤 보는 연극이나 뮤지컬, 오페라와 같은 라이브 공연들은 날씨만큼 기분 좋은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도 좋지만 같은 공연이라도 매번 다를 수밖에 없는 살아있는 공연무대를 나는 좋아한다.

학업을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강릉에 내려와 머물고 있는 요즘. 이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다채로운 공연들은 일상의 불안과 지루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활력소와 같은 것이었다.

창작 오페라 "달의 여인 초희" 공연 브로셔
 창작 오페라 "달의 여인 초희" 공연 브로셔
ⓒ 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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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밤, '달의 여인 초희'를 만나기로 하다

제44회 강릉예술축전이 오는 17일부터 28일까지 강릉에서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나는 스케줄러에 개막 공연인 창작오페라 <달의 여인, 초희>를 가장 먼저 적었다. 달의 여인 초희는 신사임당과 함께 강릉을 대표하는 여류 작가인 허난설헌, 허초희의 삶을 오페라의 형식으로 무대 위에 올린 것이다.

오만 원권 지폐에도 그려진 신사임당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난설헌의 생가로 소풍을 가곤 했던 내게 허난설헌의 삶은 언제나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신비로운 무엇이었다. 공연은 정식 공연을 올리기 전에 사전 제작된 것을 관객에게 평가받는 '쇼케이스' 형태였고 관람료는 무료였다.

공연 당일. 오후 7시 30분 시작인 공연 시간에 맞추어 30분 전에 강릉문화예술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공연장은 발 디딜틈 없이 많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였고, 초대권을 관람권으로 바꾸기 위한 사람들의 줄은 끝이 없었다.

줄은 매표대로부터 긴 'ㄹ'자를 이루고 있었다. 따로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 줄 끝에 서 계신 아주머니께 물었으나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일단 줄을 서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공연 10분 전,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다

줄은 줄어드는 속도가 더뎠다. 공연까지는 10분여 정도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활짝 열린 공연장의 1층 문으로 뛰기 시작했다. 좌석 지정이 더 이상 불가하니 빈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자의반 타의반 공연장 안으로 밀려들어간 나는 빈자리를 하나 찾아 앉았다.

그러나 곧이어 좌석의 진짜 주인들이 왔고 그런 일이 두 번 정도 반복된 후에는 공연장의 맨 뒤로 밀려나 서 있게 되었다. 공연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빈자리를 찾아 앉아 있던 사람과 표를 든 좌석 주인들 사이의 혼란, 서 있는 사람, 나가는 사람, 복도에 주저앉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아무런 안내 없이 암전이 되었고 공연은 시작됐다.

뒤쪽으로 밀려난 사람들 사이에 서서 발을 밟히기를 수차례. 도대체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한 시간 반 동안의 공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초대권이 있음에도 나는 왜 자리에 앉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이 가능한 공연 좌석 수와 초대권 매수가 적어도 엇비슷해야 하는 게 아닌가? 혹시 모를 인원의 초과에 대비해 최소한 간이 의자나 방석 정도는 준비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사리 밖으로 나와 담당 스태프에게 이야기 했을 때는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허탈했다.

결국 나는 공연을 보지 못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사람들 틈에 껴 발을 밟혀가며 볼 자신이 없었다. 예상 인원보다 넘쳐나는 사람들로 공연장 안은 너무 더웠고 끊임없이 출입문을 들락거리는 사람들로 집중을 할 수도 없었다.

주최측은 보통 관람 가능한 좌석수보다 20-30%정도 더 많은 초대권을 풀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초대권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다 왔을 경우에 대한 대비는 하지 않았다. 보통 무료 공연에서 초대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용만큼 중요한 것... 내용을 담는 그릇, 공연준비

비록 공연을 보지 못했기에 콘텐츠에 대한 사전 평가는 하지 못하지만 외적인 준비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감상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그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제대로 감상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은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예술의전당같은 공연장에서 오페라를 볼 때 관람객들은 많은 제약을 받는다. 아무리 표를 구매했어도 시작되고 난 후에는 하나의 막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물론 예술의전당과 강릉문화예술회관을 단적으로 비교하기에는 여러 환경적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안에서 공연 보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무료 공연이라 할지라도 미리 사이트에서 좌석을 예매하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초대권을 좌석수와 엇비슷하게 맞추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또 공연과 관계된 스태프들에게 사전에 공연 준비와 안내에 대한 충분한 사전 교육이 있었다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런 식으로 과연 새롭고 훌륭한 강릉의 공연 콘텐츠들이 시민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연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좀 더 세심하고 진정성 있는 준비와 배려가 있었으면 싶다.

나는 앞으로 강릉에 좀 더 머무는 동안 더욱 많은 공연들을 찾아보며 강릉만이 가진 독특한 콘텐츠들이 공연 예술의 힘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응원과 관심을 보탤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창작오페라 '달의 여인 초희'의 정식 공연도 꼭 보고 싶다. 작은 의견이지만 보탬이 되어 더욱 질 좋은 공연이 되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란다.


태그:#달의 여인 초희, #강릉 창작오페라, #44회 강릉예술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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