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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사진은 지난해 2월 인터뷰 당시 모습.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사진은 지난해 2월 인터뷰 당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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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이에요. 정말 문제가….(서류를 들춰보며) 뭐랄까, 한마디로 재정파탄 예산이나 다름없는 거예요."

그의 입에서 '파탄'이라는 말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지 30여 분이 훌쩍 지났을 때였다. 정부가 짜놓은 예산안을 두고 나온 말이다.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그를 지난 21일 만났다.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 들어선 그의 얼굴 표정은 환해 보였다. 기자가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하자 "요즘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라고 답한다. 스스로 20대 초반에 공직에 들어선 이후 40년 동안 정신없이 지내왔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야당 인사 가운데 세제와 재정전문가로 통한다. 옛 재무부 시절부터 조세정책을 이끌어왔고,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지냈다. 2003년 참여정부 초대 국세청장에 전격 발탁되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전 장관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는 그때까지 일면식조차 없었던 사이였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국세청 개혁을 추진했고, 청와대를 비롯해 행정자치부와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내면서 '혁신' 장관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옛 민주당 시절 정책위 의장을 지내면서 여당을 상대로 각종 경제 정책에 날선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지난 6·4 지방선거 광주시장 후보 경선을 둘러싸고 당과 맞서다가 결국 탈당까지 이르렀다. 그와 마주앉아 잠시 선거 이야기를 꺼내자, 얼굴 표정에 진한 아쉬움이 베어나왔다.

- 지난 선거 때 탈당과 함께 국회의원직까지 버리셨는데, 섭섭하셨을 것 같다.
"요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며 자성도 하고 남은 인생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도 하고…. 음, 처음엔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에게 울분과 분노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이 이렇게 풍비박산이 되고,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해서 그랬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겸손하고 소통을 했어야 하는 아쉬움도 있다."

-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심했다.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상돈 교수 영입을 둘러싸고 말들도 많았고….
"이 교수도 훌륭한 분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을 혁신할 비대위원장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버드대에 '도널드 설' 교수라는 분이 있다. 위기극복의 리더로 '인사이드-아웃사이더(inside-outsider)'를 제시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도 독립적인 인물을 말한다. 이상돈 교수는 당밖의 '아웃사이더' 아닌가. 계파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당내 사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시행착오 등 갈등을 불러오기 쉽다."

"민주당이 싫어 떠난 게 아니었다"

- 그래서 '또'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라는 이야기도 있다.
"문희상 위원장은 다양한 국정경험과 인품을 갖춘 훌륭한 분이다. 다음 전당대회까지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한 위원장으로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만 절차적 중립성에만 집착하지 말고 '인사이드-아웃사이더'가 차기대표가 될 수 있는 경선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새정치연합이 다시 중심을 잡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그의 복당 여부를 물어봤다. '언제 다시 새정치연합으로 돌아갈 것인가'라고 묻자, 의외로 그의 답은 명쾌했다. 이 전 장관은 "당이 싫어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사진은 5월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 당시 모습.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사진은 5월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 당시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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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지방선거 당시) 당 대표의 독선적인 당 운영에 동의할 수 없었다"라면서 "지난 양대 선거의 참패로 밀실공천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새로운 지도부의 정치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라고도 언급했다. 그의 복당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언제,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가 남은 채.

이야기 화제를 돌려야 했다. '정치'도 중요했지만, '경제 문제'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정부 예산안도 나왔다. 우선 예산안에 대한 평가부터 들었다. 그는 거침없었다.

"정부가 경제활성화, 안전사회 등 나름 노력한 흔적이 보여요. 그런데 문제가 많아요. 우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008년부터 8년째 적자예산이에요. 내년 적자규모는 무려 33조6000억 원에, 국가채무는 43조 원이나 증가해요. 한마디로 재정 파탄 예산인 거죠."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재정수입 내역을 보면 서민증세 예산이다. 개인소득세가 5.7% 증가하고,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담배에 대한 개별소비세는 1조 원 이상 늘어난다. 그런데 법인세는 0.7% 증가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의 세부담 적정성에 대한 논의가 하나도 없다."

"재정 파탄 예산, 그대로 국회 통과 될지도"

-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으니.
"(물을 마시며) 안타까울 뿐이다. 아까 말한 것처럼 지금 '재정파탄, 양극화 심화, 부자감세, 서민증세' 예산인데도 정기국회는 전혀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개회한 지 20일이 지났는데, 이러다가 심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게 생겼다."

그는 "걱정이 많다"고 했다. 현행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자칫 오는 12월 2일 정부 예산안이 자동 통과될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이 전 장관은 특히 '서민증세'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가 갑자기 담뱃세 등을 올리겠다고 하면서도 증세는 아니라고 한다.
"(고개를 흔들며) 세금은 명확하고 투명해야 한다. 국민 경제 생활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 조세 정책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 지금 정책 방향을 한마디로 말하면 '부자감세-서민증세'가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에서 깎은 고소득자와 대기업 세금은 늘리지 않고, 부족한 세수입을 담뱃세·주민세·자동차세와 같은 일반 대중의 세금 부담을 늘려 메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 벌써 많은 국민들의 불만이 크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도 나오고.
"이런 식으로 가면 세금의 생명인 형평성이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 국민으로부터 조세 저항을 받아서 오히려 세금을 걷기가 어려워지고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 이러면 다시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결국 우리 성장 잠재력을 크게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 최경환 경제팀은 경기 부양을 위해 '가계소득 증대'를 내세웠는데.
"가계의 소득이 오르면 소비가 증가하고, 기업의 생산이 늘면서 경기가 살아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번 세법개정안을 보면 오히려 정반대다. 담뱃값 2000원, 주민세와 자동차세가 오르면 정부는 4조2000억 원을 추가로 거둬들인다. 그러면 중산 서민들은 그만큼 쓸 수 있는 돈(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 당연히 내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정부의 담뱃세 인상 과정에서 국민과의 소통 부족을 아쉬워했다. 또 정부가 국민건강을 위해 담배 소비를 줄이기 위한 명분을 인정하더라도 정책의 우선 순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다.

"국민 앞에 솔직하자... 증세·복지를 이야기해야 할 때"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사진은 지난해 2월 인터뷰 당시 모습.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사진은 지난해 2월 인터뷰 당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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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담뱃세를 올리면 중산·서민층에게 곧바로 부담으로 오지요.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많이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선 과거 정부에서 크게 줄어든 부자감세부터 철회하는 게 맞지요. 그리고, 담뱃세 인상 수준도 국민들 사이에서 충분히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지요.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 정부는 왜 부자감세를 철회하지 않고 이런 방식의 세금 인상안을 내놨다고 생각하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여전히 부자감세가 소비 증가와 투자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논리는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잘못된 처방이라고 결론이 난 것이다. 또 하나는 현 정부가 '증세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를 깨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 하지만 이번 세금을 올릴 경우,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약속을 어기는 셈이 된다. 또 앞으로 국회 입법과정에서도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증세 없는 복지를 얘기하는데, 이건 말장난이고 허구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규모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고, 꼴찌에서 두 번째다. 복지비는 늘려가야 하는데 현재도 8년째 재정이 적자이고 국가 채무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빚을 얻어서 복지비를 늘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적정 수준의 세금 부담과 복지 규모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 국민에게 증세 필요성을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자?
"그것이 원칙이고 정도다."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정말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 전 장관은 복지 확충과 나라살림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거둬들일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고도 했다. 또 조세 정책의 전반을 조정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의 마지막 쓴소리다.

"지금처럼 중구난방식으로 증세 방안을 내놔서는 안 됩니다. 경제부총리가 왜 있습니까. 대통령이 약속한 국민대타협위원회는 어디 있습니까.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금 문제를 일방적으로, 임기응변식으로 풀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하죠. 정부의 복지 마스터 플랜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세금을 어떻게, 얼마나 거둬들일지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죠."


태그:#이용섭 전 장관, #최경환 경제팀, #서민증세, #부자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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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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