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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시티서울 2014' 개막식에 선보인 '서울 새남굿'. 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로 죽은 혼의 넋을 기리는 의례로 불교적 요소와 궁궐문화가 합쳐진 화려한 무속이다. 노랫가락, 굿거리, 타령, 당악 등의 장단과 함께 몸짓이 우아하다. 굿판을 주도하는 중요무형문화재인 '이상만' 만신(중앙)
 '미디어시티서울 2014' 개막식에 선보인 '서울 새남굿'. 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로 죽은 혼의 넋을 기리는 의례로 불교적 요소와 궁궐문화가 합쳐진 화려한 무속이다. 노랫가락, 굿거리, 타령, 당악 등의 장단과 함께 몸짓이 우아하다. 굿판을 주도하는 중요무형문화재인 '이상만' 만신(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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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4일 오후 2시 46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2000년부터 2년 마다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을 주관해왔다. 이번이 8회째다. 올해는 '아시아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춰 인문학·인류학·첨단과학을 융합한 작품이 기반이 된다. 요즘 미술관에 건축, 공예, 가구, 패션 등을 전시하는 게 유행인데 이번 개막식엔 무속인 '서울 새남굿'도 선보였다.

이번 비엔날레가 이전과 다른 점은 그동안 민간위탁으로 운영했으나 시립미술관 직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위탁으로 하다 보니, 감독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고, 또 아카이브도 남지 않는다"며 "예술 감독의 역량을 더 발휘하기 위해서 "라고 설명한다.

경계와 장르를 넘어 17개국 42명(팀)의 참가한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감독으로는 박찬경 작가가 일찍 내정돼 어느 해보다 전시 준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귀신·간첩'이 주는 미적 상상력

최민화 I '효박한 이 세상에 불고천명 하단말가 가련한 세상사람 경천순천 하였어라(동학)' 캔버스에 유화 138×290cm 1989. 동학의 천도교 경전에 실린 노래가사를 형상화하다. 민중화풍의 습작으로 도상은 '오윤' 판화를 참고하고 있다
 최민화 I '효박한 이 세상에 불고천명 하단말가 가련한 세상사람 경천순천 하였어라(동학)' 캔버스에 유화 138×290cm 1989. 동학의 천도교 경전에 실린 노래가사를 형상화하다. 민중화풍의 습작으로 도상은 '오윤' 판화를 참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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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귀신·간첩·할머니'다. 우선 '귀신과 간첩'을 한 묶음으로 생각해 보자. 이들 하면 떠오르건 알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 그래서 이야깃거리는 많으나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신하면 역시 '마을굿'이나 '풍물굿' 대사에 나오는 '독재귀신·독점귀신·독선귀신' 같은 사설이 떠오른다. 우리가 식민 시대의 연장 같은 분단 시대를 살다 보면 청산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이럴 때 귀신은 우리가 타도해야 할 공공의 적을 뜻한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해석이 좀 다르다. 자료에는 "역사의 서술에서 누락된 고독한 유령을 불러와 그들의 한 맺힌 말을 경청하는 자"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선 상당히 다원적이고 상징적이며 역사적인 의미로 부여된 셈이다.

간첩은 또 어떤가. 진짜 첩자도 있지만 우리가 경험한 냉전의 기억 속에서 간첩은 많은 경우 '최고의 지식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공부를 열심히 하면 법관이 되고,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면 감옥에 간다는, 이는 냉전 시대의 모순을 풍자한 말이다. 매년 노벨상 후보 단골인 고은 시인만 아니라 김지하, 김남주, 박노해, 천상병, 황석영 등은 한때 다 간첩이었다.

그런데 박 감독은 왜 이런 규정하기 힘들고 모순된 뜻이 담긴 용어가 예술에서 소통을 더 원활하게 하고 미적 상상력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본 건가. 위 최민화 작품에서도 보면 '귀신과 간첩'을 연상시키는 징표는 많다.

한국여성잔혹사를 대변하는 '할머니'

미카일 카리키스(M. Karikis) I '해녀(Sea Women)' HD 비디오, 스테레오사운드, 16분(HD video, stereo sound, 16min) 2012
 미카일 카리키스(M. Karikis) I '해녀(Sea Women)' HD 비디오, 스테레오사운드, 16분(HD video, stereo sound, 16mi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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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또 어떤가. 박찬경 감독은 할머니를 "귀신과 간첩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겪은 증인이며 권력에 무력한 존재이나 인내와 연민으로 그 어떤 권력도 윤리적으로 능가하는 능동적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풀었는데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가부장사회인 한국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귀신과 간첩보다도 더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들이야말로 눈에 안 보이게 이 나라를 지킨 애국전사 아닌가. 난리와 전쟁 통에 가족의 생명을 지키며, 수많은 아리랑 고개를 넘던 꼬부랑 할머니의 실제 삶은 잔혹했다. 그뿐인가. 식민 시대에는 위안부(성노예)로 또 빈궁 시대 제주 할머니들은 생존하기 위해 바다에 온 몸을 던지지 않았나.

이들은 지난 가부장사회에서 죽이는 역할이 아닌 살리는 역할 즉 '살림'을 도맡은 며느리들이었다. 없는 가계에 밥 지어 시부모를 봉양하고 학교와 직장에서 돌아온 자식과 남편을 살려낸 생명운동가임에도 그들에겐 '부엌데기'라는 꼬리표만 붙였다.

그런데 마침 이런 60대~80대 제주도 해녀할머니를 작품의 소재로 삼은 그리스 작가가 있다. 이름은 미카일 카리키스(M. Karikis). 그는 제주에 3개월간 머물면서 발굴한 '숨비소리'와 '노동요'을 활용해 해녀들의 생생한 몸짓과 소리와 현장을 녹음과 영상에 담은 애틋하고 정감 어린 작품을 만들었다.

'숨비소리'란 물속에 숨 쉬면서 오래 잠수하는 기술이다. 그들은 8살부터 이 기술을 익혀 대를 이어 전수해 왔다. 이 소리는 때로 새 소리나 돌고래 울음소리와 혼돈되어 들리기도 한단다. 격한 파도를 헤치며 살아가는 해녀 할머니들의 고된 일상 속에서는 신음소리마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놋쇠방물로 빚어낸 애니미즘 미학

양혜규 I '소리 나는 춤(Sonic Dances)' Performative sculptures, metal structure, bells, metal rings, dimensions variable 2013. 박찬경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근대 자연과학의 기계론적 결정주의를 부지런히 소진시키거나 새로운 질서를 위해 간절히 주문을 외우는 것만 같다"고 평했다
 양혜규 I '소리 나는 춤(Sonic Dances)' Performative sculptures, metal structure, bells, metal rings, dimensions variable 2013. 박찬경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근대 자연과학의 기계론적 결정주의를 부지런히 소진시키거나 새로운 질서를 위해 간절히 주문을 외우는 것만 같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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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언급할 순 없지만 그 중 몇몇 중요 작품을 감상해보자.

우선 1층 전시장 중앙에 관객의 눈을 확 사로잡는 게 있다. 굿할 때 쓰는 놋쇠방울과 사방팔방으로 돌면서 바람과 소리의 진동주기를 주는 선풍기로 만든 양혜규 작가이다. 빛·색보다는 소리·움직임이 주가 되는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이다.

그는 우리가 흔히 버리기 쉬운 하찮은 것에 예술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그 생명력을 살려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여기서도 선풍기 바람에 스치면 일어나는 방울 쇳소리로 관객을 은근히 홀리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령한 기운을 일으킨다.

양혜규는 베니스비엔날레(2009), 카셀도쿠멘타(2012)에 참여해 한국미술의 국제적 명성을 높인 작가로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요안나 롬바르드(Joanna Lombard) I '궤도상의 재연(Orbital Re-enactments)' 연작 중 하나, 4채널 비디오 설치 2010. 어린 시절 공동체체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요안나 롬바르드(Joanna Lombard) I '궤도상의 재연(Orbital Re-enactments)' 연작 중 하나, 4채널 비디오 설치 2010. 어린 시절 공동체체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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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스톡홀름 출생의 스웨덴 작가인 요안나 롬바르드를 보자. 그녀는 1960년대 급진적 반문화운동의 하나인 류스바켄(Ljusbacken) 공동체생활에서 영감을 받아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3개의 키워드가 말하려고 하는 게 결국은 '공유하는 공동체의 희망'인데 같은 맥락에서 이 작품은 '공동체적 유토피아'를 그렸다.

이 작품의 주제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온 첫 마디는 "자연으로 돌아가자"이다. 문명의 떼를 벗고 '야생의 사고'로 회귀하자는 뜻인가. 정신적으로 억압된 현대인의 감정을 걷어냄으로 진정한 정신적 해방을 찾아보자는 것이리라.

이 작품은 비디오카메라를 회전시키며 찍은 것으로 4개의 큰 화면으로 구성돼 있다. 친밀한 공동체를 통해 얻어지는 '자유와 치유'를 공유하면서 사회제도와 위계질서의 틀과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선과 악도 아니고 현실도 판타지도 아닌 그 중간지점에 서보려고 무단히 노력한다.

'에코 페미니즘'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원시사회에서 보는 것 같은 어린이의 천진함과 여성의 순수함을 시각화했다. 이상적 공산주의와 비슷한 공동체적 공상주의를 추구한다. 작가가 꿈꾸는 세상의 구현하기 위해 날로 새롭게 삶을 궤도수정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남녀의 누드가 자주 등장해선가 등급이 '19금'이다.

사회 터부를 깨는 작품과 영화 페스티벌

쑤 위시엔(SU Yu-Hsien) I '화산치앙(花山牆)' 영상작품을 민속공예품으로 만든 설치작품 2013. 영혼 속에 도사리는 귀신의 정령마저 사라져 형식화된 대만의 장례의식과 그 속에 깔린 대만인의 정치·문화적 식민근성을 풍자하고 있다
 쑤 위시엔(SU Yu-Hsien) I '화산치앙(花山牆)' 영상작품을 민속공예품으로 만든 설치작품 2013. 영혼 속에 도사리는 귀신의 정령마저 사라져 형식화된 대만의 장례의식과 그 속에 깔린 대만인의 정치·문화적 식민근성을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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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일본의 적군파 연대기와 북한에서 낸 서적과 사전을 선보인 작품, 베트남 전에서 미국을 이길 수 있었던 게릴라 터널, 아프리카에 세워진 북한 만수대창작사의 주체예술 형식의 건축물을 찍은 작품 등 사회적 터부를 깨는 내용이 많다.

또한 김수남의 굿 사진과 대만 장례 의식마저도 신령한 귀신을 내쫓는다고 비판한 쑤 위시엔(위 사진) 작품과 '의심'을 찬양하는 브레히트의 시, 김금화의 굿 사설, 또한 이번 주제에 독창적 해석을 단 장영혜 중공업의 텍스트 아트 또한 멋지다.

그리고 작가이면서 영화감독인 박찬경 전시감독은 서울시립미술관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전시와 함께 '영매(미디어)' 등을 주제로 한 42편의 국내외 영화도 상영한다.


조해진·이경수 I '도깨비 이야기' 등 서울시립미술관 3층 올라가는 계단 벽에 한국사회의 아픈 집단기억을 다큐멘터리만화(드로잉)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조해진·이경수 I '도깨비 이야기' 등 서울시립미술관 3층 올라가는 계단 벽에 한국사회의 아픈 집단기억을 다큐멘터리만화(드로잉)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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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몇몇 관전평을 인용하면서 이번 전시에 대한 기사를 맺고자 한다.

먼저 와우북 문화예술센터 이채관 대표는 개막식에 대해 "미술관에서 제대로 된 굿판은 처음인 것 같다. 억압된 자의 귀환, 지워진 자의 소환, 상처받은 자의 위안을 준 굿판이다. 그리고 정은영 작가가 각색한 '판소리 춘향전'은 성별·계급의 모순과 갈등을 부각시키며 전시장 분위기를 띄웠다"고 페이스 북에 평을 올렸다.

또한 경기문화재단 학예팀장 백기영씨는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사회적이고 예술적인 문제의 통로가 될 만한 세 단어를 미술관에 진입시킨 건 예리했으나 이를 감당할 정도로 영감을 주는 작업은 내지 못했고 그런 주제를 가지고 작가들 사이에서 씨름만 벌이다 만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하여간 이번 전시는 박 감독의 노력에도 담론의 주제가 커 그 내용을 작품에 담기엔 벅차보였다. 작품을 보고 '귀신·간첩·할머니' 중 어느 테마에 속할지 자기 나름 점쳐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일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 상징적이지만 미술과 동떨어진 이들을 미술관 주빈으로 초대한 건 미술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대사건이었다.

덧붙이는 글 | 입장무료. 이번 전시 공식 웹사이트 전시에 대한 상세한 안내 www.mediacityseoul.kr



태그:#박찬경, #'서울새남굿', #양혜규, # '귀신·간첩·할머니', #'미디어시티서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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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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