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원 귀농귀촌학교의 흙집 짓기 교육이 진행중인 귀정사
 남원 귀농귀촌학교의 흙집 짓기 교육이 진행중인 귀정사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전북 남원의 만행산 귀정사에 다다르니 '영차'하는 여럿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울림이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돌아가니 황토(黃土)를 양파포대에 담아 차곡차곡 쌓아올린 흙부대 집 한 채가 소박한 모습을 드러냈다. '쐐앵' 소리를 내는 톱으로 나무를 켜고 망치로 못을 때리며 작업하는 사람들의 얼굴 위로 흐르는 땀방울에 가을햇볕이 반짝거렸다.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직접 짓기 위해서 흙집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장현규(42)씨를 만나러 지난 20일, 흙집 만들기 교육이 진행중인 귀정사를 찾았다. 그는 지난 5월 달에 아내 강인숙(38)씨의 친정인 남원시 산동면으로 귀농했다. 

가족들과 친척들이 고향에 남아 있음에도 지금의 살림집을 구하기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부부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더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는 그동안의 뜨내기 도시 사람들에 대한 못미더움도 마을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생태적 가치의 삶에 눈을 뜨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선·후배로 만나 연인이 된 둘은 <녹색평론>독서모임을 통해 생태적 가치의 삶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1997년 IMF의 직격탄을 맞은 저주받은 92, 96학번인 두 사람은 취업이 쉽지 않은 것에 대한 고민과 올바른 삶에 대한 번민속에서 이 사회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단순소박한 삶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농사라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끊임없이 소비만 하며 사는 것이 단순히 나의 욕구와 욕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따른 희생과 불합리한 것들이 많은데, 그 속에서 나도 그렇게 살 것인지 다르게 살 것인지 고민했다. 이런 삶은 나에게 맞지도 않고 옳은 삶은 아니라고 봤다." -인숙-

대학을 졸업하고 경남 창녕의 농사공동체에서 1년간 농사를 배운 현규씨는 다시, 주거지 성남으로 돌아와 2002년에 결혼했다. 출판사 일을 하려고 했으나 쉽게 일자리가 없었고 결국, 전공을 살려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가 되었다.

그 사이에 딸 미르(8)와 아들 라온(6)이 태어났고, 아이들이 도시에서의 기억을 남기기 전에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부부는, 미르가 네 살때인 2010년에 산동면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남원시내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귀농인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기위해서는 (시장에서 요구하는) 상품으로 먹을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경작 규모가 커야하고, 크고 때깔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약도 쳐야 한다. 그것이 (건강에)해롭다는 것을 알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규-

그동안 농촌경험을 통해 현규씨는 귀농이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농촌과 가까운 도시에 먼저 자리를 마련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프리랜서 강사를 하면서도 농사의 끈은 놓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자급하고도 남을 만한 벼농사를 4년간 해오고 있다. 밭농사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고등학교까지 고향인 산동면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부인 인숙씨가 극구 반대했고,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지금은 집근처의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며 자급하고 있다.

지칠줄 모르고 활기차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지칠줄 모르고 활기차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자식은 낳지 않겠다고 했는데...

7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인숙씨는 고향에서 농사에 대한 힘든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산과 들로 냇가에서 뛰놀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고 자란 추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결혼할 때, 인숙씨는 아이를 낳지 않는것으로 현규씨와 합의를 했었다. 그러나 몇 년을 지나면서 주변의 아이들을 볼 때면 너무 좋아하는 남편을 보고는 아이를 낳기로 했다. 그리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자연건강법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부는 공부를 시작했다.

"생활단식 5일하고 생채식을 100일 했다. 술 좋아하는 남편은 금주를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산부인과는 다녔지만 조산원에서 자연분만으로 둘째까지 출산을 했다. 병원에 대한 거부감은 아니었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도 (아이들)스스로 이길수 있는 힘을 길러주자는 생각이었다." -인숙-

미르와 라온은 조산원에서 출산했지만, 남원에서 태어난 막내 한울(4)이는 조산원이 너무 멀어서 집에서 남편 현규씨가 직접 막내 한울이를 받았다. 그 자리에는 동생의 탄생을 지켜보는 미르와 라온도 함께 있었다.

막내 한울이는 하늘님의 뜻을 가진 한글이름이다.
 막내 한울이는 하늘님의 뜻을 가진 한글이름이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학벌이 아니라 행복한 삶이 중요해

올해 여덟살 미르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홈스쿨링을 한다.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배움의 의지가 생기는 시기(10살)가 될 때까지는 놀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 부부의 교육철학이다.

"홈스쿨링한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교육이 있을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특별히 해주는 것은 없다. 홀스쿨링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삶에서 실천하는 모습들이 굉장히 (우리와)많이 일치한다. 우리가 살고자 하는 삶의 모습은 자본의 예속을 벗어나 자립, 자치를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것 중의 하나가 교육이다. 내 자식만 괴물이 된 공교육의 수렁에 넣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다. 궁극적인 삶의 모습으로 의료, 교육, 먹거리 등등 많은것중에서 가능한것 부터 하나씩 실행해가는 삶의 실천이다." -인숙-

주변에서는 '왜 학교에 안 보내, 불안하지 않아.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 수 있어. 학교 안보내는 것은 학대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것들에 부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인숙씨는 '성공이나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며, 학벌이 아니라 하고싶은 일,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다고 말한다.

장현규,강인숙 부부와 왼쪽부터 한울(4),미르(8),라온(6)
 장현규,강인숙 부부와 왼쪽부터 한울(4),미르(8),라온(6)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농사, 천천히 내 몸을 감싸는 느낌

현규씨는 농촌으로 들어온 지금도 시내에서 과외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수입원이다. 자식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모순적이지만, 그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급자족의 삶이 목적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모순이지만 과외를 하는것은 그래야 길게 갈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삶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귀농을 포기하고 (도시로)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현규-

농사를 지을 때 몸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새벽에 논에 들어가서 일 하다가 허리를 펴면 해는 떠오르고 이슬이 깨어난다. 나 혼자만 일하는 것 같은 시간이 천천히 가고, 적막함이 나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 무척 좋다. 그 느낌 때문에 지금까지 풀을 뽑는 김매기 농사를 하고 있다." -현규-

뭔가를 돌보고 키우며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부부. 사람은 좋은 먹거리를 먹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오염된 먹거리, 상품이 된 먹거리가 아닌 우리가 노력해서 키우는 농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부부.

가족이 오순도순 살 수 있는 흙집이 마련될 쯤, 세상에 죄를 덜 짓고 온전하게 땅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참된 농부가 되겠다는 처음의 결심대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태그:#녹색평론, #귀정사, #남원, #귀농, #김매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