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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교육열이 뜨거운 곳이 없다. 그 무엇보다 민감한 반응을 보여 교육 제도 하나 바꾸기가 정말 쉽지 않다. 요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자사고(자립형 사립고) 폐지 논쟁도 마찬가지다.

최근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수월성 교육'보다는 '평등'을 강조하면서 '자사고 폐지'를 적극적으로 밀어 붙이려 하고 있다. 이미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서울 시내 25개 자사고들 중에서 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인 14곳을 검토한 끝에 8곳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단,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교육감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지정을 취소하는 경우에는 미리 교육부 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교육부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은 8곳이 자사고 기준 점수인 70점에 미달했기에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사고 평가 기준이 갑작스럽게 바뀐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5년마다 이루어지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 기준에 따라 자사고들은 기준을 넘기 위해 미리부터 준비를 하는데, 새로운 기준을 갑자기 적용한 것은 자사고 취소를 위한 의도적 움직임이라고 자사고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의 몰락이 더욱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교실 붕괴' 현상으로 많은 일반고 학생들이 수업 중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여 수업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고 한다. 자사고 학생들 중 성적이 낮은 학생들 또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일반고로 전학을 가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사고를 없애고 그 학생들을 일반고로 몰아 넣으면 괜찮아질까? 산술적으로 따지면 현재 전체 고등학교 중에서 2~3% 수준인 자사고 학생들을 일반고로 흩어 놓으면 한 반당 겨우 1명꼴로 가게 된다. 이 1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그보다는 자사고에 갈 실력이었던 학생들마저 하향 평준화될 가능성이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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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의 효과는 현재 분명하다. 서울 주요 대학 신입생들 중 30~40% 가까이가 자사고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를 원하고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최상의 선택이다(교육비가 많이 들어 '귀족학교'라는 오명은 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문제이기에 별개로 하고 싶다). 이렇게 잘 운영되고 있는 자사고를 굳이 폐지할 필요는 없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는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공부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는 환경 자체에 있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동선수에게 조차 대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비록 낮은 학력이라도 특정한 기술이 있으면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부만을 강요하는 탓에 자사고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패배 의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교사의 권위가 사라지고 선행학습이 만연한 상황도 일반고의 몰락 원인에 큰 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자사고 존재 여부와 상관 없이 일반고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성적 지상주의'인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가 발생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뿌리를 바꾸고 땅을 갈지 않은 채 이파리만 잘라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자사고 폐지'가 정말 일반고를 살리는 궁극적인 방법인지는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태그:#자사고 폐지, #교육감, #조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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