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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과 낙엽 그늘이 있어 빛은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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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어느새 우리 곁에 와있다.

조금 천천히 와도 좋으련만 가을은 조금 이른 낙엽들을 하나 둘 쌓아가고 있다. 이렇게 이른 낙엽들은 자기의 삶을 다 살지 못하고 떨어진 듯하여 슬프다. 아직은 더 나뭇가지에서 수액을 빨아올리도록 푸르러도 되는데, 무슨 까닭으로 서둘러 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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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떨어진 낙엽들이 가을햇살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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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말이 없지만, 온전히 단풍들지 못한채로 떨어진 그들을 보면서 그들의 말을 줍는다.

아팠구나.
더 살아가고 싶었는데 많이 아팠구나.

세찬 바람이거나 뜨거운 햇살이거나 제 몸을 파먹는 벌레때문이거나 상처를 입고 떨어진 것이구나. 그래도 그 아픔마져도 가을 햇살에 말려버리려는 듯, 그늘 사이 비추는 가을햇살을 즐기며 바스락거리며 웃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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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작은 나뭇잎 속의 잎맥은 그가 살아온 여정의 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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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잎맥과 작은 상처는 네가 살아온 여정의 길 같다.

누구든 삶의 흔적을 삶에 새기고 살아간다. 그것을 '길'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길의 흔적을 내 삶에 새기고 사는가 돌아본다.

모든 것을 다 놓았을 때, 가을햇살과도 같은 그 무언가에 내 삶이 투명하게 보일때, 나의 삶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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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숲은 아직 푸른 빛이 더 많다. 조금은 이른 낙엽, 상처받은 이파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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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오고감에 슬퍼할 까닭이 무엇인가 싶었는데, 이번 가을은 슬프게 다가온다.

지난 봄부터 저 나뭇잎은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을 끝자락까지, 그러니까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만 살아갈 수 있다고. 그 6개월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으나 그 삶 허투로 살지 말라고. 내 어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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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이른 낙엽이지만 단풍이 곱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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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 오면 가고야 만다는 평범한 사실을, 진리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사실을 수도없이 목도하면서도 그저 남의 일인듯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다 막상 자기의 일로 닥치고 나서야 실감하고, 또 잊어버린다.

조금 이르게 떨어진 낙엽, 그러나 어찌도 저리 곱게 단풍이 들었는가?
서둘러 떨어진 삶, 섭섭하지 않게, 슬프지 않게 하려고 그리도 곱게 물들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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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떨어진 뒤, 가을햇살에 다시한번 빛나는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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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은 언제 찬란하게 빛났을까?
새순을 내던 순간, 그리고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빛났을까?
저렇게 다 놓고는 고향 흙에 누워 빛나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시한번 빛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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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상처입은 이파리가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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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도 다 들지 못하고 떨어진 이파리.
곱게 물들지 못했어도 그 몸에 난 상처로 인해 더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애잔하다.

상처라는 것이 그런 것이구나.
그러나 저만큼, 견딜만큼이어야만 한다.
견딜 수 없는 상처, 그것은 아름답게 하기 전에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므로 늘 기도할 수밖에 없다. 상처가 없게 해달라고가 아니라, 견딜 수 있기를, 상처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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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혼자보다는 둘이 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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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이제 저 봄에 피어난 여린 순이 가을이라는 계절까지 살아갈 정도의 시간밖에는 사시지 못한다는 의학적인 판단을 받았다.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선고다.

그 시간에 차라리 감사했다.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음에 감사했고, 불효자든 아니든 어머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음에 감사했다.

그런 시간도 없이 홀연히 어머님을 떠나보낸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는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그에 비하면, 나도 어머니도 오히려 축복의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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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그렇게 햇살과 바람과 벗하여 지나다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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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보면서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음을 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죽음도 그닥 슬퍼할 것만은 아니다. 섭섭하긴 하지만, 저 낙엽이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리고 흙이 되어 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죽음도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걸어갈 것이다.

만일 영생의 존재라면, 죽음이라는 유한성을 가진 존재를 끝없이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끝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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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아직은 푸른 빛이 많지만, 머지 않아 숲은 단풍으로 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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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푸른 빛이 더 많다.

그러나 머지않아 단풍빛이 더 많아질 것이고, 이내 나뭇가지마다 이파리를 전부 놓아버리는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덤덤하게 계절을 보내고 맞이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끝이면서도 끝이 아닌 것, 그래서 또한 축복이다.

가을이되 아직은 가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지난 봄부터 가을이 되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절없이 그렇게 가을을 재촉하는 낙엽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한다.

이제 막 시작된 가을 빛, 낙엽들의 향연.
그들을 바라보면 좀 더 깊어지는 삶으로 초대된다면 멋진 가을이 되지 않을까 싶다.